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담과 이브, 만개하다

 

 어두컴컴한 경찰 호송차 안에서 숙희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손바닥에서 솟아나온 습기가 서로의 손바닥을 눅눅하게 적셨다. 누구의 습기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녀가 얼마나 두려움에 떠는지는 충분히 가늠되었다. 침침한 호송차 미등 앞에서도 파랗게 질려 변색된 입술색이 확연히 보였다. 숙희의 입술은 경련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맞은편의 술 취한 사내가 곧 시비라도 걸어올 분위기로 몸을 꼬고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바닥을 뒹굴다 끌려온 듯 구토한 내용물과 먼지가 옷자락에 덕지덕지 붙어있어 구역질이 났지만 애써 참았다. 소란을 피워서 득 될 일도 없고 술 취한 자의 주정을 이길 수도 없을 테니 참고 가기로 했다.

  활주로처럼 곧게 뻗은 16차선 도로에서 잠시 내 세상인 듯 흥분에 휩싸였었다. 마치 그녀와 나를 위하여 비행장이라도 준비해 둔 것처럼 통행금지가 가져다 준 흥분은 실로 탁월했다. 그 흥분에 도취되어 노래를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다가오는 단속원의 손전등 불빛조차 온전히 축복으로 받아 호흡했다. 그러나 그 끝은 우리의 고조된 감정과는 달리 통행금지 위반이었다. 통금 단속원에게 통사정을 했지만 통하지가 않았다.

  통행금지 위반 문제는 두 번째고 피 묻은 옷가지를 소지하고 있는 것이 큰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 리처드와 있었던 일을 해명했지만 사실 여부가 명확하게 입증되어야 한다고 했다. 조사과정에서 리처드와 맞대면을 해야 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리처드가 처벌을 원하면 영락없이 철창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 참으로 끈질긴 리처드와의 인연이었다. 그러나 리처드를 한 방 먹인 것은 잘한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유정숙을 대신해 항변조차 하지 않았다. 비록 유정숙이 자살했다고는 하지만 자살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한데 모두들 비겁하게 침묵하지 않았던가!

  불안해하는 숙희를 끌어당겨 어깨 가까이로 밀착시켰다. 그녀는 소스라치듯 몸을 떨면서 내 왜소한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맞은편 사내의 눈이 시실시실 초승달이 되었다.

 “히야, 그림 좋다아!”

  그러나 침묵했다. 두려움에 떠는 숙희 앞에서 그 따위 빈정거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었다. 혹여 주먹다짐으로 번진다면 리처드의 사건과 겹쳐 대책 없는 벼랑으로 치달을 것이 당연했다.

  “히힛, 아예 비비구 있네. 비비구 있어!”

  사내는 더 노골적으로 빈정대기 시작했다. 숙희가 소리 없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얼굴을  묻고 훌쩍이는 울림이 어깨에서 가슴으로 아리게 전해졌다. 숙희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싫었지만, 숙희가 능욕당하는 꼴을 보니 다시 눈에 핏발이 솟구쳤다.

  “에이, 염병할…….”

  나는 순간적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용수철처럼 일어섰다. 내 머리가 차량 지붕에서 북치는 소리를 냈고 숙희가 어깨에서 튕겨져 나가 좁은 의자에 벌렁 나동그라졌다. 사내는 더욱 키득거렸다.

 “히히힛, 꼴 보기 좋다아.”

  숙희가 나동그라지리라곤 차마 예상하지 못했었다. 울화통은 송곳처럼 머리 위로 삐져나왔다. 나는 마침내 공을 차듯 사내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가슴을 맞은 사내가 욱, 하는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단박에 사내의 목울대가 쿨럭쿨럭 오르내리기를 반복하였다. 검붉은 액체덩어리가 토악질과 함께 튀어나와 금방 바닥에 흩어졌다. 구역질날 정도의 퀴퀴한 알코올 냄새로 좁은 호송차 안이 순식간에 오염되었다.

  숙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소스라치게 몸을 떨었다. 나는 금방 후회했다. 싸늘한 공포감이 등줄기에 손톱자국을 내며 엉덩이까지 미끄러졌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상황은 더욱더 꼬이고 있었다.

 “이 새끼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때마침 뒷문을 연 단속원이 소리를 질렀다. 한바탕 벌어질지도 모르는 싸움이 그 상태에서 멈춰졌다. 단속원은 바닥에 흩어진 핏덩이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소리쳤다.

 “이게 뭐야? 피야 뭐야?”

  그는 손가락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거칠게 씹어뱉었다. 덜 소화된 음식찌꺼기가 핏덩이와 함께 바닥에 질펀하게 흩어져 흘렀다.

 “우욱! 뭘 처먹은 거야! 씨펄.”

  단속원은 내리라는 말 대신 연신 손짓을 보냈다.

  숙희를 먼저 내려 보내고 나도 따라 내렸다. 술 취한 사내가 내리자 단속원이 나와 사내의 엉덩이를 번갈아 걷어찼다. 단속원은 마치 똥개를 대하듯 나를 윽박질렀다.

 “새끼들아, 핥아서라도 깨끗이 치우고 있어. 조금 있다가 검사하러 올 테니까!”

  이번에는 단속원의 주먹이 내 머리와 이어서 가슴을 내질렀다. 숙희가 비명을 지르며 경악했지만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미 파출소 안으로 끌려온 다수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공포에 질려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내와 나는 양동이로 물을 떠다가 호송차 안을 정신없이 청소했다. 얼마 후 단속원에게 통과검사를 받고 파출소 안으로 인계되었다. 사내와 나는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사람들 옆에 나란히 무릎꿇림을 당했다. 다행히 숙희는 의자에 앉도록 배려해 주었다.

  파출소 근무자들은 돌아가며 사람들의 머리를 때리고 정강이를 걷어찼다. 굴욕적이고 치욕스러운 조사가 이어졌다. 다행히 사내가 먼저 시비를 건 사실을 시인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여 합의를 할 수 있었다. 더욱 다행스러운 일은 사내가 토해낸 붉은 덩어리는 충격에 의하여 역류한 포도주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별다른 상처가 아닌 사실이었다. 하지만 숙희와의 관계를 꼬치꼬치 캐묻는 경찰의 눈가에는 진실 여부를 알려는 것보다 숙희를 탐하는 음흉스러움이 드러났다. 차라리 숙희가 그 음탕한 눈빛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통행금지가 해제되어야 피 묻은 옷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며 진술 그대로만 조서가 꾸며졌다. 숙희는 새벽이 되면 훈방 조치될 것이고 나는 수사를 더 해서 형이 확정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조사가 마무리되고 본서로 이송되었다. 10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50여 명은 족히 수용된 듯 보였다. 유리창은 깨져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술 취한 사람들이 토하고 뭉갠 흔적이 곳곳에 얼룩져 있는 상태였다. 퀴퀴하고 시큼털털한 냄새에 숨쉬기조차 거북했다.

  새우처럼 몸을 움츠렸다. 시멘트 바닥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냉기가 엉덩이를 핥았다. 그다지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시멘트바닥의 냉기는 심장을 오그라뜨렸다. 어쩌면 꼽추처럼 휘어지기만 하는 몸과 오그라드는 마음 때문에 느껴지는 감각일  터였다. 유치된 사람은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장발 단속에 걸렸고, 통행금지에 걸렸고, 패싸움에 걸렸고, 노상방뇨에 술주정과 기물파괴에 걸렸고……. 시위대에 가담했다가  잡혀온 학생들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근래 들어 격렬해지는 데모와 강력해지는 억압으로 학생과 정부의 충돌 횟수가 부쩍 늘고 있는 상황이었다. 숙희의 남동생이 불쑥 떠올랐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남동생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데모의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젊음을 바쳐 싸우는 것을 보면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소속된 단체는 의로운 목표를 가지고 있을까? 의로운 일이라면 목숨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할까?’

  숙희의 동생을 떠올리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휘저었다.

  숙희가 떠올랐다.

 ‘숙희는 어찌하고 있을까?’

 낙천적인 성격의 그녀지만 처음 겪는 일 앞에서 당황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괜한 치기에 숙희를 힘들게 한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참으로 대책 없고 속수무책인 불안이 머릿속을 핥으며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한숨도 잘 수 없는 밤이 속절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침 일찍 구내식당 종업원이 보호실에 나타나 식사주문을 받았다. 메뉴와 가격을 이야기하면서 주문을 받았고 밖에 있는 연고자에게 경찰서에 잡혀있다는 전화를 해준다는 대가로 심부름 값까지 받아갔다. 몇몇은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주문했고 절박한 나머지 전화까지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숙희도 파출소에 유치된 입장이었으므로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식사를 주문하지 않은 내게는 꽁보리밥 도시락에 단무지가 주어졌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한 사람들은 철창 밖으로 나가 당직근무자와 겸상을 하는  특혜가 주어졌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고 그대로 밀쳐버렸다. 동태를 살피던 후줄근한 영감이 다가와 슬금슬금 내 도시락을 가져갔다.

  즉심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10여 명씩 줄지어 세워놓고 한꺼번에 판결을 했다. 변론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벌금을 내지 못하면 벌금 액수만큼 4일을 살아야 했다. 경범만 즉심에서 판결했고 피 묻은 옷에 대한 진위는 유보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풀 죽은 얼굴로 다시 유치되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이름을 호명 받고 보호소에서 나왔다. 경찰서를 나오자 벌금을 마련하여 지불한 숙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애교스럽게  팔짱을 끼며 밀착해 왔다. 잔뜩 기죽어 있을 나의 기를 살려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그런 숙희가 눈물겨워 그녀의 어깨를 말없이 감싸 안았다.

 “숙희 씨는 어떻게 나왔어?”

 “훈방으로 나왔어. 나오면서 노수 씨가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는지 미리 알아놨거든!”

  그녀는 한숨도 못자고 꼬박 밤을 새운 듯했다. 거문도를 가려다가 실패하여 이미 수척했던 얼굴이 하루 사이에 부쩍 더 야위어 보였다. 생기 있던 얼굴도 푸석푸석 빛을 잃었고 밤새 모진 마음고생을 겪었는지 눈은 퀭해 있었다.

 “노수 씨, 미안해하지 마! 어디 가서 아침부터 먹자!”

  숙희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날카로운 송곳이 코끝을 찔렀다. 코끝을 찡하게 찔렀던 송곳은 이어서 눈동자를 찔렀고 눈물을 밖으로 밀어내었다.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떨어뜨리고 애꿎은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허름한 식당에서 순두부백반을 주문한 숙희는 내가 풀려나온 이유를 궁금해 하는 눈치를  알아채고는 경위를 설명했다

 “아침 일찍 태평양기획 임 실장을 찾아갔어. 임 실장에게 자초지종을 알리고는 사정했지. 임 실장이 리처드를 끈질기게 설득해서 우호적으로 매듭지어 줬어. 하지만 회사는 퇴사하겠다는 조건이 붙었어.”

  숙희가 태평양기획을 찾아가 얻어낸 결과는 실로 감동적이었다. 된통 얻어맞은 리처드가 그 정도까지 양보한 것도 의외였다. 어쩌면 유정숙과의  관계를 의식하였는지도 모를 일리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되지도 않는 영어지만 리처드에게 퇴사 의사를 밝힌 마당에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숙희와 아침을 함께하면서 고향을 다녀오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민기의 송별회도 송별회지만 아버지 산소며 벽돌공장을 한다던 정 씨도 찾아볼 참이었다. 어머니와 유 씨 사이에 있을지 모를 비밀을 마지막으로 정 씨에게 확인해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회사도 그만두는 입장에서 더 이상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거문도 귤 밭의 문제를 해결하고 숙희와의 결혼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선 우리 집으로 가. 옷 빨아놨어. 갈아입어야 하잖아.”

  내 모습은 하룻밤 사이에 부쩍 꼬질꼬질해지고 볼품없어 보였다. 구겨진 옷처럼 구겨진 내 마음을 숙희는 사랑스럽게 보듬으며 펴주려 애쓰고 있었다.

  깔깔한 아침을 대충 마친 후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내내 달게 졸았다. 한꺼번에 밀려온 피로 때문이기도 했지만 숙희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졸음은 여름햇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몇 번씩 고개가 꺾어지는 것에 놀라 머리를 털고 곧추세워 보았지만 끝내 헛수고였다. 결국 나는 그녀의 어깨에 아예 머리를 맡겨버리고 말았다.

  숙희가 어깨를 툭툭 쳐서 내려야  할 곳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눈을 부비고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버스에서 내려 여동생과 생활하고 있는 그녀의 연립주택 2층, 그녀가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그곳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여동생은 직장을 나가고 없었다. 여자 둘이 사는 자그마한  공간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화장품 향내가 온화하게 스며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의 향기였다. 그것은 언젠가 어머니 품에서 풍겨 나오던 향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되도록 많이 그 향내를 흡입하였다. 숙희의 향내가 머릿속 깊숙이 박하사탕처럼‘화’하게 번졌다. 향기는 온몸으로 날아다니며 몸과 마음을 봄꽃처럼 피어나게 하였다. 진달래처럼 벚꽃처럼 온몸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숙희의 화장대 위에는 월미도에서 그렸던 초상화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마치 주인에게 왜 이제 왔냐는 듯 초상화는 나를 힐책했다. 초상화가 화장대 앞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숙희는 유정숙의 사건으로 진정한 결별을 원하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옹졸한 내가 미련스럽게도 숱한 세월을 허비했을 뿐이었다.

  등 뒤에서 살며시 숙희를 안았다. 뭉클한 그녀의 가슴이 손바닥에 닿았다. 갓 만들어낸 인절미 같은 몰랑몰랑한 가슴에서 전해지는 촉감은 손바닥을 타고 머리끝을 전율시켰다. 손바닥에서 시작된 촉감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불꽃을 일으키던 스파크가 실핏줄을 타고 뒤통수를 찔렀다. 얼굴은 달아올랐고 땀구멍마다 전율이 송곳으로 돋아났다. 치명적인 짜릿함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안에 내가 있었다. 내 눈동자에도 그녀가 있을 터였다.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의 입술에서는 여전히 포도향이 느껴졌고 또  개화되었다. 개화된 꽃샘에서 묻어나는 향기가 나의 혀끝으로 옮겨졌다. 혀끝에 물씬 풍기는 내음은 파릇한 봄내음 같았다.

  그녀를 조심스럽게 뉘였다. 한 겹 두 겹 소담스런 꽃잎을 따서 가지런히 옆에다 놓았다.  내 몸을 에워싸고 있던 껍질도 한 겹 두 겹 탈피를 했다. 그녀의 속살은 순백이었다. 유리창 틈을 살짝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속살을 훔쳐보려는 햇살이 민망했다. 커튼을 쳐 햇살을 쫓아버렸다. 그녀의 뽀얀 복숭아 두 개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밀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봉곳한 수밀도처럼 탄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곳에 얼굴을 묻었다. 수밀도의 감촉은 순백의 순수함보다 고요했다. 그녀의 숨결은 깊고 맑았다. 얻기 어려워 남겨 놓았던 사랑이었다. 얻기 어려웠기에 차마 어찌하기가 부끄러운 소담스러운 사랑이었다.

  그녀의 손이 등을 타고 붓끝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붓끝의 놀림은 조심스러웠다. 소름이 돋았다. 숨이 막혔다. 온몸의 뼈마디가 이완되며 녹아내리고 몸속에 흐르는 피가 덩어리로 곤두섰다. 

  눈물이 났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안았다. 입술을 안았고 가슴을 안았고 온몸을 안았다. 내 몸이 그녀 안에 있었다. 그녀의 몸이 내 안에 있었다. 숭고한 나눔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두를 주고 나누는 인고의 성인식이었다. 나를 버리고 숙희가 되었고 숙희를 버리고 내가 되었다. 나는 아담으로 태어났고 그녀는 이브로 태어났다.

 

 

 나는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 산소를 먼저 찾았다. 끝섬에서부터 태풍을 타고 날아온 어머니의 빗물을 머금고 아버지는 동그랗게 파릇이 다시 태어나 있었다. 어머니의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봉분에 늦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절을 하고 술잔을 채우고 잡풀을 뽑고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 민기를 만나기 위해 산을 내려왔다.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민기는 소몰이 일을 접은 상태였다. 어머니의 소식을 알려주었던 국밥집에서 민기와 나는 몹시 취했다. 취기가 높아질수록 서로의 설움에 복받쳤다. 민기는  제대 후 외가에 가서 정착하겠다고 했다. 나는 끝섬의 어머니와 귤 밭, 광주가 고향인 숙희와의 결혼계획을 이야기했다. 귤 밭과 숙희의 이야기에 민기는 무척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새벽녘에 민기도 나도 토했다. 연탄처럼 검은 선지가 배 속에서부터 조각이 되어 튀어나와 피처럼 흩어졌다. 나라의 부름에 청춘을 묻어야 하는 혈기가 몸속에 정착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사방에 버려졌다. 우리는 국밥집에서 꼬꾸라진 채 밤을 보냈다. 지독한 울분의 송별회였다. 민기는 물론 나 또한 오후가 되어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주인아주머니가 끓여준 콩나물국으로 끼니를 때우고 민기와 헤어졌다.

  정 씨를 만나기 위해 하천을 훑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정 씨를 찾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정 씨는 소전에서 가볍게 떠벌렸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별반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알려고 공연히 어머니와 유 씨의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말이 말을 만들어 화근이 될 뻔했다. 정 씨는 어머니와 유 씨의 사연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다만 자신을 변명하는 넋두리만을 들었다. 노름으로 사기를 당해 몇몇 소장수의 돈을 가로채 야반도주했지만 또 실패를 해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하천에서 벽돌 공장을 하며 숨어 살았는데, 하천 모래를 사용하다 보니 원자재를 공짜로 취하게 되어 많은 이득을 보고 이제는 소전에서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빚을 갚으며 산다는 이야기. 오래 걸릴 거라 예상했던 고향에서의 일이 단 이틀 만에 끝나버렸다. 고향에서는 더 할 일도 없고 출근할 직장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유도 모를 불안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금단현상이었다. 

  숙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다르게 할 말은 없었지만 고향에서의 일을 다 보았으니 올라가겠노라는 말을 전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집에 없었고 함께 산다는 여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숙희 씨 여동생인 모양이군요. 언니한테 전화 왔었다고만 전해줘요.”

 “그걸 왜 제가 전해 주어야 하는데요?”

  매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여동생은 나로 인해 힘들어 하는 언니를 지켜보다가 악감정이 쌓였던 모양이었다. 그동안의 일들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감정이 그다지 좋지는 않으리라 짐작했지만, 싸늘한 말투에 일순간 주춤해졌다. 숙희는 물론 여동생에게까지 부끄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서둘러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굳이 숙희의 직장 인근에 도착해 그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저녁을 함께 했다. 으레 그랬듯 저녁을 먹고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줄 참이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숙희에게 주말에 거문도에 동행할 것을 부탁했다. 어머니가 태어난 고향 신추와 귤 밭을 둘러보고, 결혼 후 정착할 계획을 의논하고자 함이었다.

  더불어 상경하는 길에 숙희의 고향 광주에 들러 그녀의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인사도 여쭐 요량이었다.숙희는 순순히 내 의견에 동의했다.

 

 

 숙희와 거문도행 여정에 몸을 실었다. 오랜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소식을 접하고 혼자 서둘러 내려가던 조급했던 길과는 달리 사뭇 흥분되었다. 급행열차가 출발하자 마냥 재잘거리던 그녀는 대전을 지나고부터 내 어깨에 기대어 피곤한 잠을 달랬다. 간헐적으로 덜컹거리는 울림이 심해질 때면 깜짝 놀라 실눈을 뜨며 나를 훔쳐보고는 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웃옷을 벗어 그녀를 감싸주고 내 어깨를 그녀에게 편안한 각도에 정지시켰다. 그녀가 되도록 포근하게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려는 의도였다.

  창밖을 응시했다. 추수하고 난 볏짚 더미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겨울잠에  들어간 우렁이 흔적을 찾는지, 아이들 서넛이 논을 뒤지는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논바닥에서 공을 차는 한 무리가 스쳤고, 밭두렁을 태우는 쥐불연기가 차창에 부딪혔다 사라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나 또한 그녀에게로 기울어지는 머리를 몇 번씩 도리질했다. 하지만 결국 나 역시 떨어진 고개를 그녀에게서 거두어들이지 못했다.

  단꿈을 꾸며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철길은 여수에 닿았다. 부두에 도착해 끝섬의 표를 구입했다. 자칫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배를 놓쳐버릴 듯 촉박하여 여객터미널 안에서 가볍게 끼니를 해결했다. 드디어 여객선이 닻을 올리고 출발을 알리는 고동소리를 뿜어 올렸다.  그토록 꿈꿔오던 끝섬의 길을 비로소 숙희와 함께 출발하는 심정이란, 그 어떤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진즉에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감격이 파도처럼 밀려와 순간을 정지시키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녀를 앞세워 갑판으로 올랐다. 뱃머리부터 갈라지는 하얀 포말은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길게 꼬리를 물었다. 가까운 섬과 먼 섬, 섬은 섬끼리 꼬리를 물었다. 분주히 들고나는 고깃배들의 흐름도 역시 섬처럼 꼬리를 물었다. 숙희와 함께 명화를 찍었다. 이제는 홀로 갑판에 앉아 짝을 이룬 연인들이 찍어내던 관광엽서의 그림을 바라만 보던 때가 아니었다. 그녀와 내가 곧 엽서의 주인공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작약도에서처럼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올올이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는 손가락에 머리칼이 정리된 것도 잠시,  숙희의 머리칼은 작약도보다 거센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날렸다. 바다를  만끽하는 그녀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무구하기만 했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 나도 덩달아 무구해졌다.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섬들의 끝자락이 점점 바다 속에 묻혀 사라져갔다. 사라진 섬들은 이내 점처럼 작아졌다. 마침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광활한 수평선이 드러나고 끝섬이 뿌옇고 희미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나로도를  지나고 초도를 지날 때  광주리 아주머니들에게서 주전부리를 샀다. 숙희에게 주전부리 아주머니들과 어머니의 관계를 설명했다. 나는 목이 메어 주전부리를 먹을 수가 없었다.

  거문도에 내려 어머니의 고향 신추로 향했다. 혼자 찾아가던 길을 둘이 가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자살을 꿈꾸며 오르던 산등성이, 다시는 밟지 못할 줄로만 알았었다. 어머니가 수없이 넘어 다녔을 구불구불한 길을 더듬으며 내내 어머니를 떠올리고 훌쩍이던 길이었다. 마침내 간첩 침투라는 고통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잔해를 보고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던 신추에 도착했다. 끝 모를 하늘처럼 트인 신추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숙희와 나란히 바위에 걸터앉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쏜살같이 뛰어와 얼굴에 달라붙었다. 출렁이는 바다 위를 어린 어머니가 까르르 웃으며 온통 뛰어다녔다.

  나는 숙희의 어깨를 가만히 얼싸안았다. 힘주어 껴안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안고 바위처럼 앉아있었다. 그녀는 거문도로 내려오는 동안 내 마음 가는 대로 맡기려는 듯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겹쳐진 수평선에 낙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낙조로 떨어지는 태양의 언저리가 붉게 물들었다. 낙조는 붉었고 바다로 떨어진 낙조는 더욱 아름다운 빛으로 출렁거렸다. 붉은 해가 빠르게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 숙희의 얼굴에도 낙조가 있었다. 붉은 노을이 그녀의 동그란 눈동자에, 발그레한 볼에, 어깨 위에서 까르르 웃으며 온통 뛰어다녔다. 수평선 끝자락에 고깃배의 불빛들이 별빛처럼 듬성듬성 떠오르 시작했다. 불빛은 아득히 출렁이는 너울에 가라앉아 사라졌다가 다시 떠오르며 나타나곤  했다. 붉은 해가 바다 속으로 숨어버리자 어둠은 순식간에 수평선을 덮었다. 서둘러 산을 넘어 마을로 가지 않으면 칠흑같이 캄캄한 밤길이 될 일이었다.

 우리는 신추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산 정상에 이르자 이미 어둠이 끝섬을 집어삼켰으나 발아래의 항구는 오히려 한낮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배 속과도 같은 명당이었던 항구는 여전히 물위에도 바다에도 똑같은 크기의 불빛을 잉태시키고 영롱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끝섬의 항구는 아득한 아름다움뿐 어둠이 결코 두렵지 않았다. 산꼭대기정상에 당당히 서서 벅찬 감격으로 끝섬을 호흡하는 그녀를 나는 한동안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마을로 내려와 활어와 매운탕으로 저녁을 했다. 약간의 술도 곁들였다. 그녀는 더없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제라도 그녀에게 나에 대한 믿음을 각인시켜 주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홀로 끝섬에 내려와 자살에 실패하고 죽기를  작정하고 술에 꼬꾸라지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그녀를  잃지 않으려 염원했던 것이 진정 다행스러웠다.

  이제 귤 밭으로 가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 산소에 올릴 술과 간단한 포와 과일을 준비했다. 그녀와 나눌 작은 샴페인도 마련했다. 손을 잡고  귤 밭으로 향했다. 산등성이를 넘을 때는 없던 달빛이 어느 결에 둥실 떠올라 수평선을 밝히고 있었다. 어느 순간 별들도 하늘과 바다에 떠올라 반짝였다. 앙증한  해수욕장에는 달빛과 별빛이 쏟아져 내려와 파도에 반짝였다. 띠를 이루며 어깨동무를 하고 해안으로 달려오는 하얀 포말에 달빛도 별빛도 일순간 묻혔다. 하얀 영원을 품에 안고 내처 달려온 파도는 해안을 탐하고 되돌아가기를 수억 년은 즐겼을 터였지만, 어제도 그랬듯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을 것이다. 아아, 숙희와 나의 끝섬이, 어머니의 끝섬이 별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마침내 산소에 도착했다. 준비해 온 과일과 포를 정중히 배치했다. 어머니 산소에 엎드려 숙희를 인사시키기에 달빛은 손색없이 그윽하였다. 숙희가 먼저 내게 술을 따라주었다. 어머니에게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는 어머니 무덤에 올렸다. 이어서 숙희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숙희는 예를 갖추어 어머니에게 큰절을 했다. 정성스런 몸짓으로 예를 올리는 그녀가 더없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숙희가 있는 한 이제는 어머니 앞에서 더는 울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귤 밭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또 다시 어머니의 체취를 더듬었다. 초라한 부엌이며, 흙 때 묻은 손잡이와 썩은 귤 조각이 뒹굴던 헛간 창고, 작은 바람에도 요란하게 흔들리는 창문을 어루만지며 다시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훌쩍이지 않았다.

  숙희가 방 정리를 끝내고 가볍게 술자리를 마련했다. 어머니에게 드렸던 과일과 포와 샴페인으로 바닥에 마련한 술자리는 보잘것없었으나 둘만의 신혼여행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샴페인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알싸한 향긋함이 입안을 맴돌다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퍼져나간 샴페인은 그녀의 얼굴을 붉혔고 나의 눈에 사랑을 갈구하도록 유혹하였다.

  촛불이 운치를 더해 주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불꽃을 젖혔다가 일으켜 세우며 그녀와 나를 소중하게 밝혀주었다. 그 살랑거리는 촛불 속의 숙희는 더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오늘 내내 단 한순간마저 잊고 싶지 않으리만치 사랑스러웠다. 그녀를 안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샴페인 향이 났다. 향긋하고 순백한 입술이었다. 그녀의 꽃잎 속 살내음 또한 순백이었다. 봉곳한 복숭아 사이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숨결을 애무했다. 숨결은 깊고 맑았으며 따뜻했다. 어느 순간 작은 돌기가 입안에 살짝 들어왔다. 치아를 움직거려  잘근거려 보았다. 그것은 어머니의 돌기를 통하여 생명을 싹틔우던 기억할 수 없는 동물의 타고난 습성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몸에서 작은 경련이 감지되었다. 나의 모두가 일깨워져 거룩하게 솟아났다.

  그녀는 봄꽃이었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었다. 내 몸 안에 그녀의 몸 안에 서로가 있었다. 다시 아담이었고 이브였다.

 

 

  아침 일찍 눈을 뜨니 그녀가 옆에서 어린아이처럼 곤하게 새근거렸다.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천년은 함께 살아온 여인 같은 착각이 일었다. 연인의 행복이 이럴진대 부부의 행복은 얼마나  깊을까 생각하니 그녀의 소중함이 더욱 새로웠다. 그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다가 또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숙희는 이미  가벼운 화장을 끝내고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채비를 해야만 했다.  숙희에게 왜 깨우지 않았느냐며 통박을 부리려다가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듯싶어 속내를 감췄다.

  우리는 귤 밭을 나와 먼저 교회에 들렸다. 목사를 만나고 싶었으나 만나지 못했고 여신도를 만나 자초지종과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여신도는 신도가 더 늘어나는 것에 고무된 듯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녀와 나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를 했고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아침을 해결하고 여수행 여객선에 승선했다. 하지만 선실은 평소보다 적은 인원에다가 문득 낯선 분위기의 냉기마저 감돌았다. 태풍주의보가 발령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술렁거렸다. 소곤소곤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승객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완연했다. 나는 슬그머니 그들 가까이로 다가가서 대화를 엿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신경을 더욱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지난밤 대통령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였다. 아침 일찍 짤막하게 서거 방송만이 있었다고 했다. 때가 때이니만큼 비상계엄령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건의 진위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대통령의 죽음은 18년간 이어져 온 장기 집권의 붕괴를 의미했다.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오게 되었다고 침을 튀기며 열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며칠 전 부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반독재투쟁을 벌였다. 야당 총재의 제명에 자극받아 분노한 사람들이 부산시청 앞에서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경찰력이 무너져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공수부대가 투입되었다. 공수부대의 무력진압에 시위는 마산으로 번졌고 대학생과 시민은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마침내 학생과 시민은 물론 노동자까지 합세하였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이어 위수령이 선포되었다. 시위는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그 불씨가 단초가 되었다고 했다.

  한동안 나라가 어수선해질 것 아니냐며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행여 북에서 어떤 징후라도 보인다면 나는 곧바로 징집될 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결혼이나 거문도에서의 정착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나갈 것이 자명했다.

  불안한 마음에 갑판으로 올라간 숙희를 불러 내렸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녀는 남동생을 걱정하는 듯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손을 잡고 힘을 주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더욱 불안해하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멈춰 있었다. 종착부두인 여수항에 내렸으나 사람들의 부산함도 전 같지 않았다. 배를 타거나 내리는 사람들도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서성이는 사람들도 하나 없이 모두 바쁘고 잰 걸음이었다. 개찰구를 빠져나오자 경악할 소식이 전해졌다. 대통령은 총탄에 맞아 암살된 것이고 범인이 대통령과 최측근인 부하라는 것이었다.

  광주로 향하는 길이 더없이 멀게 느껴졌다. 광주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왠지 모를 불안함도 가중되었다. 숙희가 서울에서 미리 연락을 해두었던 터라 서울에 있는 여동생을 빼고 모든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큰딸이 애인과 함께 온다고 한 것은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와 의논하여 정종과 고기, 그 밖의 선물을 샀다. 초면임을 의식해 좀 더 과한 선물을 사려는 나와 약한 선물을 고집하는 알뜰한 숙희와의 언쟁에 결국 내가 양보하고 말았다. 직장도 없는 주제에 마음만 앞세웠던 욕심이 그녀의 알뜰함에 민망해졌다.

  도청에서 10분 거리인 숙희의 집은 그다지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평범한 분위기였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 언저리에는 탱자나무 울타리로 옆집과의 경계가 이루어져 있었다. 겨울철이어서 말라비틀어진 탱자나무 가시가 어지럽게 엉켜 서로를 찔렀다.

  먼저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렸다. 이어서 순서대로 오빠와 올케에게 인사를 했고 남동생과는 악수를 했다. 아버지는 왜소했지만 오빠나 남동생은 제법 몸집이 튼실했다. 남동생의 엄지손가락 끝은 돌덩이 같이 느껴졌는데 탄탄한 힘이 감지되었다. 어린 조카들은 종합선물세트를 들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서울로 일찍 상경하여 사투리를 쓴다고 못 느꼈던 숙희도 가족들과는 광주 사투리를 감칠 나게 썼다.

  숙희 아버지의 의례적인 물음에 솔직하게 답변했지만 보잘것없는 내 처지가 공개되면서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숙희 아버지의 말수가 점점 줄었고, 그럴 때마다 숙희는 나를 변론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 숙희가 몹시 안쓰러웠다. 숙희의 오빠는 아버지가 물었던 일상적인 물음 외에는 더 물어볼 것 없다는 듯, 데워진 정종만을 말없이 마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정종을 가득 채워주었다. 나는 침이 마르는 갈증을 느끼던 터라 정종을 한숨에 들이켰다. 따뜻한 온기가 식도를 타고 온몸의 핏줄로 내달렸다.

 “사내라카믄 그 정도는 해야쟤!”

 술 마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는지 숙희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려 숙희를 바라보았다. 유일한 응원군인 숙희 앞에서 내 초라함을 감추려는 보잘 것 없는 위장술이었다.

  그녀가 울먹이며 털어놓았던 바람피운 아버지의 얼굴, 그녀를 몰아붙여 타향의 식모생활로 내몰았던 얼굴, 그 얼굴은 아버지에게 없었다. 왜곡되고 맹목적인 신앙생활로 형제간의 불화를 촉발시킨 올케, 그것을 방관한 오빠, 그들에게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들도 변한 것일까? 숙희가 제일 안타까워하는 막내 남동생만이 진즉부터 나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정종의 따스함이 몸속에 자리 잡으면서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긴장이 다소 풀어졌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처음의 긴장을 바닥에 스르르 내려놓고 말았다.

 “거시기, 혹시 앞으로의 계획은 머시여?”

  숙희 아버지의 물음에 거문도 귤 밭의 내역과 미래의 계획을 설명했다. 갑자기 아버지의 표정에 생기가 돌고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비록 섬이라고는 하지만 적지 않은 면적의 땅과 귤 밭이 형편없던 체면을 살려준 셈이었다. 그것은 재산에 연연한다기보다 오로지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당연한 마음일 뿐이려니 생각되었다.

 잠깐 방심한 사이 정종이 서너 잔씩 빠르게 옮겨 다녔다. 아버지가 마시고 내게 따라주었고 오빠가 마시고는 또 내게 따라주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정종이 신기하게도 착착 달라붙고 감칠맛이 입안을 녹였다. 정종을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마다할 수도 없어 멈추지 못하고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장시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술잔이 돌수록 별반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음소리가 커졌다. 대통령의 암살사건과 앞으로 전개될 정국에 대해 격론도 벌였다. 북한의 돌발 행동을 걱정하는 아버지와 공무원의 파워를 잃게 될 것을 염려하는 오빠, 투쟁으로 비로소 민주화의 봄을 얻어냈다는 남동생 사이에서 나는 정종만 마셨다. 정치나 시국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술에 무너졌다. 술이 무너뜨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이미지나 기대조차 모두 무너뜨렸다. 정종은 뼈마디마저 낙지처럼 흐물흐물 무너뜨려 나를 팽개쳐 놓아버렸다. 그들의 논쟁이 어느 틈에 가물가물 들리다가 사라졌고 혼미하게 증발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술주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마비된 혀가 발음을 비틀며 헛소리를 밖으로 밀어내었다.

 “아버님, 숙희 씨 불쌍합니다! 따님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꺼억.”

  어디서부터 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주정이었다. 점수를 따도 시원찮을 판에 난데없이 벌어진 객기였다. 그러나 이미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술이란 놈이 오로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아버님, 숙희 씨 고생시키지 마십시오. 눈물 납니다!”

  무엇보다 숙희가 소스라치게 놀랐고 격론을 벌이던 가족들도 일순 조용해졌다. 부모가 자식을 고생시킨다는 항변은 대관절 어느 근거로 비롯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숙희가 자신의 집안사정을 이야기하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내 마음속에도 은연중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설령 내재되어 있던 불만이라고 치더라도 첫인사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럴 자리가 결코 아니었다. 남동생은 어이없어 하며 실소를 지었다. 오빠는 그의 아버지가 능욕하는 것을 보며 얼굴색이 검붉게 변해 버렸다. 그러나 나는 가족들의 가느다란 자부심인 치부마저도 땅바닥에 팽개쳐 곤두박질시켰다.

 “숙희 씨, 하고 싶은 말 많잖아. 불만이 뭔지 속 시원히 말해 봐요.”

  나의 주책에 남동생이 쌩하고 찬바람을 휘둘렀다.

 “형핀없는 사람이고만! 누나는 이 사람이 뭐가 좋다그 데꼬온 거여?”

 “영호야, 너 손님한테 그게 뭔 소리니?”

  숙희가 두둔하고 나섰다. 방 안 공기는 점점 싸늘하게 냉각되어 얼어버렸다.

 “근게 데끄올 사람이 없어서 이런 사람을 데꼬온 거여! 초면에 술도 지대로 조절하지 못함시롱 이거시 뭐당께?”

  가뜩이나 숙희를 믿고 따르던 남동생  영호의 불만이 제일 컸다. 그만큼 나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활발한 저항운동을 한다던 동생의 열정적인 성격이 그대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나는 절제하지 못하고 형편없이 취해 계속 주책을 부렸다. 끝내는 미처 숙희가 제지하기도 전에 그녀의 올케와 오빠에 대한 불만도 내뱉고 말았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올바로 믿어야지. 혼자만 잘난 체하면 다 용서됩니까?”

  오빠의 반응은 더욱 거셌다. 올케의 신앙생활을 들먹인 것이 화근이었다. 오빠가 벌떡 일어나 나의 멱살을 잡으며 언성을 높였다.

 “대체 무신 억하심정이 있는 짓거리여 시방. 잘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숙희 넌 으디서 이밖에 안 되는 넘을 사웃감이라고 데꼬온 게여!”

 숙희가 울음을 터뜨렸다. 꼴이 우습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조차도 자각하지 못하고 비틀댔다. 도대체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측정할 수가 없었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족족 시비를 걸게 되고 불만을 쏟아내고 문제를 일으켰다. 그 행동이 점점 과격해지고 잦아지는 것이 거의 병적이었다. 술이 깨면 곧 후회할 잘못을 서슴없이 되풀이하는 작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내 안의 또 다른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술만 마시면 내 속에 통제할 수 없는 악마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숙희가 흐느끼면서 나를 변론했다.

 “선호오빠, 제발 이러지 마! 이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아직 서러워서 그래. 우리한테 기대고 싶어서 투정부리는 거야. 오빠가 이해해.”

  그러나 오빠는 숙희의 만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소리쳤다.

 “영호야, 네가 이 사람 좀 안고 밖으로 나와. 우선 근처 여관에 데리고 가서 재워야겠어!”

  숙희의 요청에 영호가 양팔을 당차게 쥐어틀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영호의 힘은 굵고 매서웠다. 아마도 소리치며 눈물로 만류하는 숙희의 말을 영호가 따르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더욱 곤혹스럽게 전개될 뻔했다.

  나는 영호에게 맥없이 질질 끌려 나와 인근 여관에 집어넣어졌다. 말귀라고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 같은 신세였다. 그런 내 꼴을 나는 알아보지 못했다. 토했다. 언제부터인가 술만 마시면 토했다. 리처드에게 주먹을 휘두를 때도 토했고 민기의 입대 송별 술자리에서도 토했다. 마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버려야 하듯 술과 함께 버려졌다. 숙희에 의해 토한 옷이 벗겨지고 웃통이 벌거숭이가 되었다. 내 옷을 벗기며 숙희는 훌쩍였다. 수건에 물을 적셔 나의 얼굴과 웃통을 닦아주며 그녀는 훌쩍였다. 선호가 여관으로 찾아왔다. 부끄러웠다. 한없이 부끄러웠다. 토하고 나서 다소 정신이 돌아온 나는 숙희의 오빠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 친구야. 시방도 이란디 어케 자네를 믿고 동상을 맡기것능가!”

  숙희의 말대로 온전히 기대고 싶었던 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피붙이 하나 없이 외로웠던 것이 그녀의 가족 앞에 환희로 벅차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족끼리의 격론은 기대할 수 없어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던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녀의 오빠 앞에서, 가족 앞에서 열 번 백 번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었다. 왜소하게 말라서 보잘것없는, 차라리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초라한 웃통이 부끄러워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겨울이 되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민주화의 봄이 온다며 모두들 흥분하고 들떠 있어 여느 겨울보다 사뭇 따듯한 겨울이었다. 휴교령이 해제되고 대통령이 다시 선출되었으며 긴급조치 또한 해제되었다. 정국이 빠르게 안정되어 가는 것과 때를 같이해 나의 귤 밭 소유권 또한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그동안 귤 밭을 재배해야 하는 앞날을 위해 틈틈이 공부를 했다. 우선 귤과 관련된 기술서적을 보면서 생면부지의 지식을 습득해 두는 것이 급선무였다. 또한 거문도와 광주를 오가며 목사를 만나고 귤 밭 이전에 필요한 관할부서를 다녔다. 거문도를 다녀올 때면 어김없이 광주에 들렀다. 술주정으로 실추되었던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하는 강박감도 있었지만, 마음 놓고 찾아뵐 수 있는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좋았다.

  방문 횟수가 늘수록 나의 이미지도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첫 방문 때의 술주정이 왜 그랬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 서서히 그녀의 가족에게 이미 결혼한 것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게 되었다. 특히 나에게 실망하고 불만을 품었던 남동생 영호도 나를 우호적으로 대했다.

  숙희는 귤 밭에 정착할 예정인 봄에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직장을 계속 다녔다. 그녀에게 먼저 그만둘 것을 종용했으나, 미리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싫다고 하여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휘문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로 밤을 새울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숙희를 만나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12월 12일, 휘문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단행본 한 권을 편집해야 했으므로 밤을 꼬박 새우고 다락에서 잠깐 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 숙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수 씨, 나 할 말이 있는데 저녁에 잠깐 좀 만나줘!”

  전화기 속의 그녀 목소리는 다소 가라앉아 힘없어 보였다. 약속 장소를 경양식으로 잡는 것을 보니 그녀가 긴히 할 말이 있으려나보다 생각하며 충무로로 나갔다. 그녀는 스파게티를 주문했고 나는 볶음밥을 시켰다. 그러나 식사를 모두 마칠 때까지도 숙희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녀를 재촉하면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그녀가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렸다. 숙희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노수 씨…… 나, 아이 생겼어.”

 잠시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숙희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오물오물 스파게티의 마지막을 음미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어깨를 껴안았다. 그녀의 심장소리가 어깨를 타고 내 가슴으로 빠르게 흘러들었다. 그녀가  머리를 살며시 어깨에 기대어 왔다.

 “노수 씨,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축하할 일이잖아! 걱정하지 말고 낳자.”

 “미안해. 결혼 전까지는 집에다 말하지 않기로 해.”

 “알았어. 신비롭다! 우리한테 아이가 생기고…….”

  그녀는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어깨에 몸을 의지한 채 눈을 감고 잠이 든 듯 한참을 기대어 있었다. 숙희는 여자로서의 온전한 행복을 호흡하고 있는 듯 보였다.

  행복했다. 벅찬 감격이 울컥 복받쳤다. 사랑하는 여인의 몸 안에 또 사랑해야 할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니 경이로울 뿐이었다. 녀석이 세상에 나오면 적어도 내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힘들어 목 놓아 울고 싶을 때 내 앞에서 울게 하고,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무작정 펑펑 때려줄 수 있는 아버지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녀석이 쉴 수 있는 그늘이 되고, 그래서 녀석이 뛰어놀 수 있는 언덕이 되고, 그래서 녀석이 날아갈 수 있는 하늘이 될 것이다. 녀석보다는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리할 것임을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휘문인쇄소 아르바이트 일은 늦은 밤으로  미루어야 했다.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도 숙희는 내 어깨에 기대어 내내 다소곳하였다. 얼마쯤 가던 버스가 한강다리에 못 미쳐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무슨 큰 사고가 있었는지 다리 앞은 한강을 건너려고 기다리는 차량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앞좌석에 앉은 승객들이 갑자기 웅성거리며 소란을 떨었다. 뒤이어 총을 든 군인이 버스에 올라탔다. 승객들은 물론 숙희와 나는 적잖이 놀라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혹시 탈영한 군인이라도 잡기 위해 검문을 하려나 싶었다. 그러나 다리 앞에는 육중한 탱크가 가로막고 있었고 무장한 군인들이 트럭에 실려 분주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띠였다.

  결국 버스는 그녀의 집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한강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숙희와 나는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야만 했다. 통행금지가 밤 10시로 앞당겨졌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통행금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과 함께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우리는 여관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휘문인쇄소의 아르바이트는 양해를 구했다. 이미 특수 상황이 벌어진 것을 알고 있던 사장은 납기를 다음으로 미루어 놓았다고 전했다.

  그녀의 입술은 여전히 향기롭게 개화되었고, 봉긋한 앞섶은 숨 막히는 갈증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녀의 온몸을 사랑했고 그녀는 나의 온몸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녀와 나의 육체적 나눔은 서로를 탐하고 받아들이기 이전에 숭고한 사랑이 동반되었다. 그녀와 나는 태초의 아담과 이브로서의 거룩한 사랑을 주고받았다. 사랑의 씨앗이 그녀의 몸속에 착상되어 자라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 또한 새록새록 자라나고 있었다.<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꽃잎 떨어지다

 
 숙희의 남동생 영호가 그토록 투쟁하며 기다리던 민주화의 봄은 점점 안개 속으로 치달았다. 군인이 중앙정보부장서리로 임명되었고 계엄사령관의 지휘 아래 학원 데모가 강력하게 엄단 조치되었다. 신학기가 되면서 각 대학의 학생회와 평교수회가 부활되고 해직교수와 제적학생들이 복귀함으로써 민주화 열풍이 일기 시작한 것에 대한 정부의 대응조치였다. 

  시위 열기에 힘입어 노동자들도 근로조건개선과 민주화를 위하여 전열을 가다듬었고 곳곳에서 민주화시위가 벌어졌다. 광주에서는 대학생 1만여 명이 가두행진을 전개하였다. 그곳에 영호도 있다고 했다. 영호는 늘 스크럼을 짠 맨 앞에서 열정적으로 구호를 목청껏 토한다고 했다.

  광화문과 종로는 물론 서울역에서는 수만 명이 운집하여 계엄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했다. 군중의 흐름은 마치 파도와도 같았다. 서울역 광장 앞은 물론 퇴계로까지 이어진 서울역 고가는 군중의 함성에 춤추며 출렁거렸다.

  숙희와 나의 불안은 증폭되었다. 귤 밭의 이전문제가 까다로운 상속 절차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고 그녀의 배도 점점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나의 비밀을 지키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서둘러 결혼 날짜를 잡아야 했지만 확실한 정착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 수도 없었고, 참으로 애매하고 답답한 나날이 이어졌다. 게다가 시위에 늘 앞장선다는 영호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감은 더해갔다. 광주에 전화를 걸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계절은 봄이 왔는가 싶더니 어느새 5월이었다.

 “노수 씨, 나랑 광주에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 영호가 소식이 끊어졌대!”

  숙희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나는 광주행을 결정했다. 비상계엄령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후 영호와 소식이 끊어졌다는 다급한 아버지의 호소 때문이었다.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하여 학생들을 연행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영호가 계엄군에 연행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소식이었다. 우리는 새벽기차를 이용해 급히 광주로 내려갔다. 선호는 이미 출근하여 없었고  아버지는 불안해하며 조바심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 들었으나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숙희와 나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간단하게 해결하고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영호가 다니는 대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학교 교문  앞에는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숙희와 나는 감히 접근조차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교문은 굳게 닫힌 채 학생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계엄군에 의해 통제된 상황이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계엄군과 학교로 들어가려는 학생들 사이에 일촉즉발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학생들이 구호를 외쳤다.

 “계엄군 물러가라!”

 “휴교령 철폐하라!”

  학생들의 항의시위는 저돌적이고 격렬했다. 학생들과 계엄군 사이의 감정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계엄군이 진압봉을 휘둘렀고 마구잡이로 휘젓는 진압봉에 학생들은 머리를 맞았다. 머리를 맞은 학생의 울부짖음이 또 다른 학생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몇몇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꼬꾸라졌고 바닥 여기저기에 핏물이 튀어 시멘트 위를 방울방울 물들이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바닥이 점점 늘어갔다. 마침내 돌멩이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투석전이 일어났다. 돌멩이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들고 진압봉이 마구잡이로 학생들에게 내리꽂혔다. 교문 앞은 순식간에 아비규환 아수라장이 되었다.

 “자아, 금남로로 가블자!”

  누군가의 우렁찬 구호에 학생들이 금남로 방향으로 흩어져 이동하기 시작했다.

  숙희와 나는 예기치 않은 참담한 광경을 보고 넋이 빠진 채 돌처럼 굳어버렸다. 온몸이 얼어붙어 단 한 발자국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학교로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흥분한 학생들을 붙잡고 영호의 소식을 묻는다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놀란 숙희를 진정시키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방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숙희 손을 꼭 잡아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영호에 대한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자꾸 도리질을 쳤다. 저녁 무렵 직장에서 돌아온 숙희의 오빠는 금남로로 이동한 시위대와 계엄군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동생 영호의 소식이 끊어진 탓인지 선호는 몹시 분노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식구들이 놀라지 않도록 흥분한 기색을 감추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학생들은 학교 정문에서 발생한 계엄군의 만행을 낱낱이 폭로하며 시위를 벌였다. 곳곳에서 격렬한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연좌시위를 벌이고, 파출소에 투석했다. 페퍼포그차가  불타고, 매캐한 최루탄 가스가 광주의 하늘을 뒤덮었다.

  오후가 되어 계엄군이 시내까지 투입되었고 거친 진압이 시작되었다. 진압봉에 맞아 피 흘리는 학생들을 보다 못한 시민들이 계엄군의 진압을 만류했다. 그러나 계엄군은 진압을 만류하는 사람에게조차 무자비하게 진압봉을 휘둘렀다. 젊은이는 말할 것도 없었으며 노인이나 아주머니, 아이들의 몸에서도 피가 튀었다. 성난 광주 시민들이 삽시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계엄군과 대치하며 스크럼을 짜고 방어막을 만들었다. 밀고 밀리는 충돌이 하루 종일 빚어졌다.

  계엄군의 진압봉 앞에 시위대는 치열한 육박전도 불사했다. 수많은 시위군중이 계엄군에게 체포되어 끌려갔고, 경찰이 시위대의 포로가 되어 잡히기도 했다.

 “아배는 물론이고 당신이나 숙희 니도 당분간 싸다니지 말그라. 거시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혀잉. 영호 소식은 나가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응께 곧 알 수 있것쟤. 통행금지가 9시로 앞댕겨졌으니께 조심들 허구.”

  숙희의 오빠는 담배를 꺼내 물며 몇 번이고 길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모든 이야기를 숨죽여 듣기만 했던 가족들은 정작 선호보다 더 불안에 떨었다. 나는 숙희의 손을 더욱 세차게 움켜쥐었다. 숙희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깊이 배어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미열이 느껴졌다.

  밤늦게 숙희는 신음소리를 내며 몹시 앓았다. 나는 물수건으로 손과 이마를 연신 닦아주며 자리를 지켰다. 아버지가 약국에서 약을 지어왔지만 약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그녀의 임신소식을 말하지 못했던 터라 약을 먹었다고 거짓으로 변명하고 슬쩍 감춰버리고 말았다.

  나는 밤새 한 숨도 못 자고 꼬박 밤을 밝혔다. 그녀가 아픈 것보다 내 마음이 더 아리고 아팠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아픈 그녀를 보고 있는 것보다 나을 성싶은 불안한 밤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5월 19일, 꽃잎 떨어지다】 

 아침 일찍 올케에 의해 숙희의 임신 사실이 발각되었다. 이미 두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있던 올케는 평소와 다른 숙희의 몸집과 행동만 봐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가씨, 멧 달 되었으라?”

  앞뒤 가리지 않고 대뜸 임신 몇 개월이냐며 묻는 올케의 질문에 숙희는 당황하여 모든 사실

을 실토했다. 결국 아버지는 물론 오빠에게도 숙희의 임신 사실이 알려졌다. 모두들 놀란 눈치였으나 그래도 별 탈 없이 받아들여주었다. 더군다나 영호의 행방이 묘연하니 숙희의 임신 사실이 가족들에게 주는 충격은 덜한 듯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결혼을 언제 할 것인지 계획을 물어왔다. 하지만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나로서는 죄스러워 잔뜩 쪼그라들었다.

 “거시기, 귤 밭이 결정나기 전까정 우선  광주에 방 얻어서 둘이 함께 지내브러. 결혼식은 좀 더 기둘렸다가 생각해 봄세. 시방 나라가 복잡허고 집안도 어수선한께 당분간은 여서 머물러 생활허게나!”

  충분히 성을 낼 법도 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량을 베풀어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 씀씀이에 더욱 초라하고 작아졌다. 대관절 숙희 아버지의 무엇이 아픈 부인이 누워있는 동안 딴 여자와 외도를 하게 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임신한 숙희에게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보살펴주는 올케의 태도였다. 밤새 앓기만 했던 그녀에게 흰 죽을 끓여 먹이며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해먹여야겠다고 했다. 그런 올케가 더없이 고맙고 신뢰가 쌓였다.

  오후 늦게 직장에서 돌아온 오빠는 영호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가져오지 못했다. 다만 시청에 근무하는 관계로 더욱 거세진 계엄군과 군중들의 충돌상황만을 낱낱이 듣고 이야기를 전할 따름이었다. 선호는 가족들에게 경각심을 세워주려는 듯 비교적 상세하게 사건이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했다.

 “새복에 광주역으로 계엄군이 증파되브렀다. 금남로럴 딱하니 막아불고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쟤. 속옷 차림으로 원산폭격을 한 학상들이 군홧발에 꼬꾸라지고 총을 멘 군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걸 봤당께. 오늘 고등학상까정 교과서를 팽개치고 학교운동장에 집결해서 밖으로 나오려다 실패했쟤. 국민학교는 수업을 중단하고 귀가 조치시켰다야. 성난 시민들이 모여들어 군중이 어마어마해브러. 시민들이 몽둥이와 각목을 들었쟤. 거시기, 분위기가 안 좋아야. 계엄군이 닥치는 대로 사람덜을 잡아가. 오늘은 시위현장 주변건물을 샅샅이 뒤지며 진압을 했다는디. 아가씨가 대검에 가슴이 찔리고, 말 못하는 벙어리를 때려 끌고 갔다는 거여. 벌써 시외버스터미널 주차장에 여러 구의 시체가 목격되었다는 소문도 있당께.”

  선호에게서 상황을 전해 들으니 시위는 점점 더 격렬하게 확대되는 모양이었다. 영호가 다니던 대학교 앞에서 목격했던 충격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나는 숙희를 밖에 있는 화장실에 보내는 것조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화장실을 가겠다는 숙희를 따라 마당으로 나왔다. 멀리서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것이 목격되었다. 시내 어딘가가 불타고 있는지 검은 연기는 봉홧불과도 같이 하늘을 향해 춤추며 승천하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지척지척 봄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요란한 헬기 소리가 하늘을 덮었다. 프로펠러 소리와 뒤섞인 헬기의 마이크에서는 시민들의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이 밀가루처럼 살포되어 지상의 산지사방으로 낙하했다.




 【5월 20일, 꽃잎 떨어지다】 

 선호는 시청에 출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운행하던 시청 트럭을 몰고 영호를 찾아 나서겠다고 아침부터 서둘렀다. 나는 숙희에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신신당부를 하고 선호를 따라 트럭에 탑승했다. 숙희는 오빠의 트럭에 합승하는 것을 극구 말렸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내 의지를 고마워하는 눈빛이었다.

  거리에는 여전히 계엄군에 붙잡힌 학생들이 기합을 받는 것이 목격되었다. 남자들은 팬티 바람이었고 여자들은 팬티와 브래지어만 남겨지고 자존심이 유린당하고 있었다.‘투사회보’가 시내 곳곳에 뿌려져 나뭇잎처럼 바람에 흩날렸다. 계엄군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하자는 투사회보의 영향력보다는 불의에 분노하는 시민들이 시시각각 노도와도 같이 커져갔다. 트럭은 군중 속에 묻혀 좀처럼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중 속에는 장사를 집어치운 시장의 상인들은 물론 영업을 해야 하는 택시까지 가세해 있었다. 수많은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도로에서 시위를 벌였다.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경적은 출정을 알리는 나팔소리처럼 우렁차게 하늘로 솟구치며 메아리쳤다.

  계엄군과 시민의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시민들은 계엄군과 대치한 채로 밀고 밀리며 폭풍처럼 공방전을 몰아쳤다. 머리 위로 최루탄이 폭죽처럼 터져 뽀얀 연기로 자욱해지고 계엄군의 화학탄에 화염병으로 맞섰다. 분사된 화염방사기에 장렬하게 산화되면서도 태극기를 휘날리며 계엄군 앞에 보무당당하였다. 곳곳에서 군중에 포위되고, 고립되고, 퇴각을 당한 것은 오히려 계엄군이었다.

 “거시기, 안 되겄다. 돌아가 불자! 앞으로는 차덜 끌고 댕길 생각을 아예 하덜 말아야긋다.”

  트럭이 후진했다. 광주는 벌써 어둠이 내려깔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불이 났고 방송국  건물도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검은 어둠으로 빨려 올라갔다. 행불된 영호의 소식은 여전히 듣지 못했다. 밤새도록 시위가 계속되는지 콩 볶는 총소리 또한 아련하게 계속되었다. 어둠 속의 총소리에 묻혀 거룩하게 떨어지는 피지 못한 꽃잎들이 감은 눈 안에 아른거렸다. 한낮에 보았던 참혹함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 새벽녘까지 오랫동안 뒤척였다.




 【5월 21일, 꽃잎 떨어지다】

 숙희는 서울에 있는 여동생과 통화조차 불가능하다며 불안에 떨었다. 시외전화가 계엄군에 의해 차단되어 광주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우리는 광주에 완전히 갇힌 신세였다.

  오빠는 트럭을 버리고 영호를 찾아 아침 일찍 나갈 채비를  했다. 평소 영호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학교를 다시 찾아가 소식을 알아보고, 이도 안 되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라도 찾아야겠다고 했다. 나도 함께 가고 싶었으나 숙희는 물론 아버지의 만류로 일단 집에 있기로 했다.

  점심나절 선호는 영호를 찾은 것만큼이나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 영호의 소식을 찾았는가 싶어 모인 가족에게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세무서가 오밤중에 몽땅 타버려 잿더미가 되불었단다. KBS건물도 새복부터 불타고 있어야. 시체가 2.5톤 트럭으로 까득이고 시민들이 니아까에 시체를 싣고 금남로에 모였당께. 시민덜이 장갑차는 물론 버스, 트럭꺼정 도청광장에 배치해브렸다. 멧 십만 명도 더 되는  것 같아야. 어마어마하디. 참혹해서 못 볼 지경이쟤. 거시기, 이건 아닌 것 같아야. 나도 그 대열에 가불란다. 지금까정 무신 연락도 없고 오리무중인 영호도 계엄군에 잡힌 것이 틀림없당께!”

  그는 울분을 삭히며 열변을 토했다. 그의 얼굴색은 흥분과 분노로 벌겋게 달아있었다.

 “여보, 당신이 잘못 되블면 우리 애덜은 어떻게 하라꼬 당신까정 나선다요?”

 “요로코롬 보고만 있을 순 없잖여. 이러다간 광주사람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허긋는디!”

 결국 오빠는 올케의 눈물 섞인 애원을 뿌리치고 시위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는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다가 끝내 고개를 돌려 올케를 외면했다.

  집에 남은 사람들은 온종일 좌불안석이었다. 선호가 시위대에 합류했으니 영호 소식도 일단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소식이 끊긴 영호보다 시위대에 합류한 선호가 당장의 걱정이었다. 그나마 저녁 무렵 그가 가족들 앞에 잠깐 나타나 가족들의 한숨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선호는 한층 더해진 울분을 폭발했다. 그는 한낮에 발포현장을 목격했다고 했다. 참혹한 학살 장면을 보고 온 선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한낮 광주의 날씨는 높았다. 갑자기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계엄군도 시위대도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숙연하게 함께 불러야 할 애국가가 처연하게 광장에 울려 퍼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계엄군의 애국가와 시위대의 애국가가 다를 리 없었다.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아름다운 강산에서 하나가 되어 살아가야 할 너와 나였다. 사격이 시작되고 총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분노하며 돌진하던 시민의 각목은 계엄군의 무기 앞에 너무도 애처로웠다. 시민들은 총알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무작위로 날아온 총탄 앞에 시민들은 꽃잎처럼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꽃잎을 구하려던 시민 또한 흩날리는 꽃잎이 되었다. 러닝셔츠만 입고 장갑차 위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던 청년은 쓰러졌어도 쓰러지지 않은 꽃잎이었다. 대의명분 앞에 목숨을 건 아름다운 희생의 시작이었다. 누가 종용해서도 아니었고 누가 원해서도  아니었으며 누구에게 떠밀리거나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쓰러져가는 꽃잎들을 보면서 당연히 그래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부끄러울 뿐이었다. 광주의 석가탄신일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금남로, 도청은 물론 광주 전역에서 전쟁 중이쟤. 근디 요로코롬 맥없이 목숨을  강탈당할 수는 읍다고 아우성들이다야!”

  선호는 가족들이 피해입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고는 마침내 전쟁터로 나갔다. 그의 비장한 각오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차마 감내할 수 없는 일이기에 부끄럽기만 했다. 숙희의 오빠 선호, 대학생 영호 앞에 나는 한낱 비굴하고 형편없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5월 22일, 꽃잎 떨어지다】 

 시민군의 일원으로서 한바탕 전쟁을 치른 선호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들어와 가족의 안위를 확인하고 곧바로 되돌아갔다. 광주의 상황을 마치 보고라도 하듯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계엄군의 발포에 성난 시민들은 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군용트럭을 탈취했고 장갑차를 획득했다. 경찰과 예비군의 탄약고에서 총과 실탄도 입수했다. 그리고 대학병원 옥상에 기관총을 설치하여 계엄군과 맞섰다.

  시가전이 시작되었다. 시민군은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계엄군의 신무기를 마침내  밀어냈다. 계엄군은 조선대학교로, 주남마을로, 외곽으로 철수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꽃잎이 되었다. 도청 옥상에는 검은 리본을 동여맨 조기가 계양되었다. 맑은 하늘, 바람에 흩날리는 태극기는 차라리 의롭고 거룩했다. 꽃잎들 위에 태극기가 덮여지고 엄숙한 추도식이 눈물로 승화되었다.

  살아남은 시민들은 수습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켜 슬기로운 수습을 하고자 원했다. 수습대책위원회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물론 차량통제에서부터 의료반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병원차와 지프차로 시내를 돌며 절박하게 헌혈을 호소하는 방송을 보냈고, 자체적으로 치안을 담당했으며, 부상자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일부 무기를 회수하면서 대표로 선출된 사람들은 계엄군을 만나 논의된 수습 안을 전달했다.

  소식을 들은 광주 인근에서 항의시위는 들불처럼 번져갔다. 경찰서가 피습되어 점거되고 또 파괴되었다. 무기고는 습격당했고 광주의 참상을 전해들은 외곽의 시민들은 무장을 갖추고 광주로 속속 응원군으로 들어와 합류했다. 계엄군은 광주 외곽을 봉쇄했고 광주로 진입하는 차량에 무조건 발포했다.




 【5월 23일, 꽃잎 떨어지다】 

 고립된 시민들은 광주의 안정과 회복을 간절히 원했다. 수백의 남녀 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내를 청소하자 시청 직원과 시민들이 합세했다. 숙희의 오빠도 그 대열에 앞장섰다. 광주는 범시민궐기대회를 통해 안정을 되찾고자 노력했다. 질서회복과 평소 생활로의 복귀를 호소하는 민주시민강령이 선포되고, 장례반과 차량통제반이 구성되었고, 총기회수반은  무기를 자발적으로 회수했다. 부녀자들은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식사를 제공했다.

  분수대에 운집한 수만의 시민들은 장렬하게 산화한 이들을 가슴에 묻고 하늘로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꽃잎으로 떨어지는 피해자는 속출했다. 고립된 광주보다 광주를 고립시키려는 계엄군과 시민군이 외곽에서 충돌이 잦았다. 해남에서 교전 중 산화했고, 주남마을의 양민도 희생되었다. 하물며 버스를 타고 가던 승객조차도 아무런 이유 없이 총격을 받아 그대로 희생되었다.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를 알리는 벽보가 붙었다. 그러나 행불된 영호의 이름과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영호가 벽보에 없는 것은 어쩌면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반증이었으므로 오히려 다행이라고 식구들은 위안을 삼아야 했다.




 【5월 24일, 꽃잎 떨어지다】

 숙희가 또 앓아누워서 나는 온종일 집에 있어야 했다. 서울에 있는 여동생과 통화할 수도 없었고 영호의 소식은 점점 희미해져 갔으며 선호의 살얼음판 같은 행보는 숙희를 더욱 아프게 하였다.

  광주는 생필품조차도 동이 나 버렸다. 선호는 직장을 나간다며 밖으로 나갔고, 틈틈이 영호의 소식을 수소문하고, 저녁마다 그날그날 돌아가는 상황을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은 없었다.

  시민들은 여전히 궐기대회를 통하여 민주수호를 외쳤다. 수습대책위원회에서는 미확인된 사망자까지 합쳐 산화한 주검이 6백여 명이며, 중경상자는 무려 2천여 명이라고 발표했다.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비를 맞으며 꽃들은 여전히 속절없이 억울하게 떨어졌다.




 【5월 25일, 꽃잎 떨어지다】 

 온종일 비가 왔다. 광주의 눈물일 터였다.

  추기경의 메시지와 구호대책비가 전달되고, 교파를 초월한 종교단체와 재야인사들, 신부를 주축으로 수습 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는 등 광주는 서서히 안정의 실마리가 잡혀가고 있었다. 학생 수습대책위원들은 범죄발생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 등을 논의하며 신속하게  수습에 참여했다.

 저녁 늦게 선호가 영호의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어렵게 수소문한 결과 영호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고 했다. 영호는 시위 첫날 학교에서 시위를 하다가 계엄군에 붙잡혀 상무대로 끌려갔다는 것이었다. 그곳 연병장의 비좁은 막사에 임시 수용되어 재판을 위한 수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상무대에 끌려간 학생들 대부분은 굶주림은 물론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고문까지 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선호는 물론 그 누구의 힘으로도 당장은 면회조차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단지 영호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족들은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5월 26일, 꽃잎 떨어지다】

 먼동이 트면서 근 이틀 동안 내리던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잦아들고 있었다. 선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영호를 찾아가겠다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최소한 얼굴이라도 보고 오겠노라며 일단 한번 부딪혀보겠다는 돈키호테 식 발상이었다. 애당초 누가 만류한다고 들을 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가족들도 영호가 걱정되어 적극적으로 말리도 못하는 처지였다.

  나는 숙희의 근심에도 불구하고 선호의 트럭에 동승했다. 비록 아무런 힘이 되어줄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 혼자 보내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광주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는 느낌도 들어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트럭을 모는 속도로 봐서 그의 마음은 동생을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다소 들떠 있는 듯 보였다. 골목골목을 빠져 곡예를 하는 행동이 마치 영호를 이미 만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계엄군은 탱크와 중화기를 앞세우고 광주 외곽으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먼저 탱크를 발견한 그가 트럭을 갑자기 정지시켰다. 그는 계엄군에게 트럭이 발각된 것을 이미 알고 잠시 망설였다. 뒤돌아 도망쳤다가는 오히려 집중사격을 받을 수 있었기에 상황은 절박했다. 그는 탱크를 우회하여 샛길로 가는 척하며 슬금슬금 트럭을 접근시켰다. 계엄군의 눈을 피해 은근슬쩍 목적지로 이동하려는 심산이었다. 선호는 본능적으로 더 큰 화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임을 직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 뭐하는 새끼들이야!”

  철모에 띠를 두른 다수의 계엄군이 총부리를 겨누었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에 절어 잔뜩 눈치를 살피며 긴장하고 있었는데 삽시간에 소름이 돋는 공포에 휩싸였다. 싸늘한 전율이 하늘로 솟구쳐 모든 생각을 정지시켰다.

 “야, 내려! 씨벌 새끼들!”

  계엄군은 대뜸 욕지거리부터 해대며 거칠게 윽박질렀다. 총부리를 들이대며 내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계엄군의 기세에 눌려 나는 어떻게 차에서 뛰어내렸는지도 모른다.

 “꿇어!”

  엉거주춤 망설이는 선호를 향해 계엄군이 소리쳤다. 선호는 양팔을 머리에 대고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나도 그를 따라 지체 없이 무릎을 꿇었다. 차마 계엄군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눈동자를 깔았다. 계엄군이 가까이 다가오는 군홧발 소리가 공포스럽게 들려왔다. 하사 계급장을 단 놈이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 겁도 없어. 지금이 어느 땐지 알고 쏘다녀?”

 “어머니가 위독해서 급히 가는 길입니다!”

  선호가 순간의 기지를 발휘했다. 그리고 뒤이어 실낱같은 희망을 찾고자 곧바로 군 경력을 들먹이며 표준말을 썼다.

 “시청 직원입니다. 사실, 나도 공수부대 나왔습니다!”

 “뻥 까고 있네. 몇 공수?”

 “…7공수.”

 계엄군은 선호의 군 경력을 듣고는 조금 주춤거리는 듯했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기미가 보였다. 선호는 이미 계엄군이 공수부대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 옆에 있는 이놈은 뭐야? 머리 들어 인마!”

 한 놈이 군홧발로 내 무릎을 냅다 걷어찼다. 짜릿한 전기가 무릎을 타고 등골로 전파되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친동생입니다.” 

  선호가 옆에서 거들었다. 무릎을 까인 탓도 있었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숙희 얼굴이 떠올랐다. 심한 입덧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앓는 숙희의 얼굴이 점점 더 크게 달무리처럼 번져갔다. 안개처럼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이다 싶은 생각이 온몸을  엄습하며 휘감아왔다.

  그러나 뿌옇게 흐려진 눈동자에 계엄군의 일행 중 한 명의 얼굴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눈에

박혔다. 상상할 수도 없고 결코 있을 수도 없는 전혀 뜻밖의 만남이었다. 그가 계엄군이라니……. 철모를 깊게 눌러 썼지만 너무나 분명한 고향의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황소가 떠올랐다. 그의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국밥집이 생각났다. 충주의‘마즈막재’도 번개처럼 떠올랐다.

 “야아, 민…민기야. 나 노수다!”

 “헉! 노수, 니가 여긴 웬일이야?”

  모기 소리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의 나보다 총을 든 민기가 더 놀란 눈치였다. 군에 간다고 해서 송별회까지 하고 난 후 그동안 머릿속에서 민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된 것도 조금은 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계엄군이라니…….  하물며 이런 곳에서 이런 상황에 민기와 맞닥뜨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민기는 어쩌면 하늘이 내려준 천운이었다. 처절하게 맺어진 운명이 아니고서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뭐야? 조 일병, 이놈 아는 놈이야?”

  하사가 민기를 쏘아보며 내뱉었다.

 “예에, 친한 고향 친굽니다!”

 “그래? 더럽게 운 좋은 놈이군. 그럼 조 일병이 잘 타일러서 빨리 돌려보내. 여기서 얼쩡대다가 큰일 난다구.”

  민기만 남겨 놓고 다른 일행은 벌써 저만치 사라지고 있었다. 시민이 모르는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는 듯한 움직임이 그들의 부산한 몸짓에서 짙게 흘러나왔다.

  나는 민기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위기를 넘긴 안도감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고 말았다.

 “우린 공수부대가 아닌 사단 병력이야. 며칠 전에 용산에서 내려왔어. 지금 길게 얘기할 시간 없어. 차 끌고 빨리 시내로 돌아가 숨어. 밖에 쏘다니지 말구.”

  민기는 용건만 짤막하게 말하고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뛰어서 일행에게 돌아갔다. 절박한 상황에 민기와 나눈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송별회를 하면서 함께 토하도록 술을 마시던 날, 잠깐 숙희 이야기도 했으니 내가 광주에 있는 이유를 곧 유추해낼 일이었다. 온몸의 땀구멍마다 진땀이 솟아있었다. 진땀은 다시 소름으로 되살아나 끈적거렸다.

  선호와 나는 이마에 흐른 땀을 옷소매로 문질러 닦으며 서둘러 트럭에 올라탔다. 그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선을 넘은 병사처럼 뒤를 돌아다보았다. 한참을 침묵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겨우 민기와의 관계를 선호에게 설명했다.

  이제 영호의 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앞으로 영호의 생사는 영호의 판단과 슬기로움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처절한 운명 속에서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원할 수 있을 뿐. 선호는 나를 내려놓고 트럭을 갖다 놓기 위해 시청으로 간다며 다시 사라졌다. 그러나 트럭을 놓고 바로 온다던 선호는 저녁 무렵에야 나타났고 표정은 돌처럼 굳어있었다.

 “거시기, 오후에 두 차례나 범시민궐기대회를 열었는디도 소용없당께. 계엄군이 다시 시내로 진입할 모양이여.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이 계엄군의 시내 진입을 저지한다고 죽음의 행진을 감행해도 헛수고여. 대대적인 전쟁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여. 무장한 시민군이 도청을 비롯한 시내 중요 거점에 흩어져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어. 지금 고등학생이랑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라며 종용하는 중이여. 나도 지금 가 봐야 혀!”

  그러나 올케의 만류는 거의 사생결단이었다. 올케의 눈물로 선호는 계백처럼 처자식을 어찌하지 않고는 결코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와 숙희, 나 또한 선호를  말렸다. 그는 결국 주저앉았다. 폭풍전야 같은 공포가 어둠과 함께 내려앉았고 시내 전화마저 불통되었다.

  무등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5월 27일, 꽃잎 떨어지다】 

 광주의 어둠은 깊었다. 나의 어둠은 더 깊었다.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내 뒤척이며 선잠에 꿈틀거렸다. 돌아누워도 잠시였고 엎드려 누워도 잠시일 뿐이었다. 머릿속은 온통 민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곳에서 형제의 가슴에 총을 쏘아야 하는 민기의 마음이 온전할 것 같지 않아 안타까움이 솟구쳤다. 계엄군은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진압봉을 휘둘렀다. 계엄군은 또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총을 쏘았다. 소꼴을 베고 여물을 끓이고  산소가 있는 할아버지 옆을 떠나지도 못했던 순박한 시골 촌놈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명령 앞에 군인은 쌀이나 총이나 피복만도 못한 일개 소모품일 뿐임을 민기는 알고 있을까. 비단 민기뿐이랴. 철모에 흰 띠를 두르고 명령 앞에 투입된 계엄군의 마음이 온전할 리 없다. 분노한 시민군 또한 무기를 들고 계엄군을 향해 총을 쏘고 싶었을 리 없다. 계엄군이나 시민군이나 그들 모두가 아름다운 꽃잎일 터였다. 결코 떨어져서는 아니 되는 꽃잎일 뿐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비겁했다. 지난날들이 늘 비겁했고 광주에서는 더 비겁했다. 선호의  용기 앞에 비겁했고 영호의 신념 앞에서 비겁했다. 나는 부끄러움에 또 몸을 돌이켜 캄캄한 벽면을 목적 없이 마주보았다. 아직 어둠이 온 천지를 뒤덮고 있는 새벽인 듯했다. 갑자기 애절한 여자의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메아리쳐 들려왔다. 초조하고 다급하게 귓속을 맴돌아 나가는 호소는 간절했다.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확성기의 잡음과 뒤섞인 여자의 목소리는 작아졌다가 커지기를 반복하며 점점 아련한 곳으로 멀어져 갔다. 나는 애절한 목소리 앞에 더 비겁하여 굼벵이처럼 몸을 움츠렸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웅웅웅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탱크 바퀴에서 뿜어내는 마찰음이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지네처럼 빠르게 달려왔다. 방바닥이 지진 난 듯 흔들리며 흐느꼈다. 멀리서 시가전이 전개되고 있는 듯 총소리가 콩 튀는 소리처럼 탁탁거렸다. 마침내 폭음이 울리고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천지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기관총 소리가 밤하늘을 찢었다.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는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지붕은 요란한 굉음의 파장에 맥을 못 추고 울어댔다.

  마지막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던 시민군은 피 흘리며 꽃잎으로 쓰러져 갈 것이다. 쏟아지는 강력한 무기 앞에 구식 무기를 부여잡고 피 흘리며 유린당하고 있을 것이다. 숭고한 신념 앞에 서슬이 퍼런 용기를 불사르고 꽃잎처럼 쓰러질 것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신념과 들끓는 심장이 그들로 하여금 분연히 일어서게 했다. 고등학생도 있고, 대학생도 있고, 시민도 있고, 대한의 아들딸들이 모두 있을 것이다. 숭고하고 거룩한 꽃잎들이 캄캄하고 어두운 그곳에서 외롭게 떨어지고 흩날릴 것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마침내 머리를 방바닥에 찧었다. 마치 참호 속에 갇혀 웅크리고 있는 소년병처럼 엄청난 공포 앞에 나는 더욱더 비겁하게 몸을 도사렸다.

  영호의 방에서 혼자 비겁하게 앉아 있던 나는 불현듯 숙희가 궁금해졌다. 그녀가 놀랄 것을 생각하니 심장이 찢어질 듯 죄여왔다. 슬금슬금 기어 나와 그녀가 있는 아버지의 방으로 건너갔다. 굉음에 놀라 잠을 깬 식구들이 이미 아버지가 있는 안방으로 모두 모여 있었다.  행여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을 염려한 선호가 불을 켜지 못하게 해 방 안은 칠흑 그 자체였다. 어둠 속에서도 서로의 놀란 눈동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시위와는 분명히 다른 굉음과 요란한 총소리에 모두들 넋을 잃은 것 같았다. 올케와 조카들은 선호의 무릎에 엎어져 서로 엉킨 채 몸을 웅크렸다.  숙희가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며 두더지처럼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숙희를 부셔질 정도로 꼭 껴안았다.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순간 담벼락 가까이에서 찢어질 듯한 총소리가 여러 번 들려왔다. 가족 모두 방바닥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신음소리가 들렸다.

 “거시기, 먼 소리여? 모두들 시방 괜찮은 거시여?”

  흥분한 선호의 목소리가 어둠 속을 낮게 기어서 들려왔다. 납작 엎드린 채 서로를 확인하며 번뜩이는 눈동자가 방 안을 굴러다녔다.

  또 신음소리가 들렸다. 문밖이었다. 그러나 문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신음소리는 더욱 애절하게 방 안으로 구조신호를 보냈다.

 “안 되겠어. 나라도 잠깐 나가봐야 할까 봐! 혹시 영호인지도 모르잖아?”

  나의 조용조용한 속삭임에 숙희는 재빨리 팔을 잡아끌었다. 만류하는 숙희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의 새 생명을 몸속에 지니고 있는 여인의 마음일 터였다. 그러나 더는 비겁하게 있을 수 없었다. 꽃잎으로 떨어져 쓰러지는 그들 앞에  마 이렇게 초라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떳떳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비겁하지는 말아야 했다.

  나는 발목까지 잡아끄는 숙희의 손을 뿌리치고 주변을 경계하며 엉금엉금 툇마루 밖으로 나왔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탱자나무 덤불에 엎어진 사내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탱자나무 울타리의 한쪽 모서리가 움푹 무너져 있었다.

  그를 구해야만 했다. 이 상황에서 그를 구하지 않는다고 나를 비난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총에 맞아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는 이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피 흘리며 탱자나무 가시에 얽혀 있는 꽃잎을 쓰러지지 않게 해야만 했다. 며칠째 수많은 꽃잎들이 떨어져 그렇게 흩날리지 않았던가! 그렇게 이름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골목 어귀를 살펴보니 유령처럼 어둠 속을 분주히 뛰어다니는 계엄군들이 눈에 들어왔다.  뛰어다니는 검은 몸짓이 마치 야생 동물의 움직임처럼 민첩했다. 서너 마리씩 무리지어 사냥하는 짐승의 습성이 누군가에 의해 그들에게도 교육되어져 있었다.

  도청 언저리 하늘은 갑자기 검붉게 빛났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무엇인가 터지는 강렬한 굉음은 여전했고 총구를 떠난 총소리는 서로 뒤엉켜 메아리가 되어 이어졌다.

  나는 슬금슬금 기어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앳된 얼굴이 영호 또래의 대학생인 듯 보였다.

 “…괜찮으세요?” 

 “빨리 피해브러요!”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닌 듯싶었다. 학생은 엉금엉금 기며 어린아이처럼 나에게 매달렸다.  일순 다시 여러 발의 총소리가 사방에서 터지며 골목으로 흩어졌다. 총부리를 떠난 불꽃은 별똥별 같은 획을 그리고 산지사방으로 어둠 속을 가르고 날아다녔다.

  순간 아뜩했다. 황소 뒷발에 된통 차인 것처럼 등가죽이 아팠다. 갑자기 다된 전구가 깜박인 듯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갔다가 들어왔다. 명치를 맞은 것처럼 호흡이 턱에 걸려버렸다.  목구멍에 걸린 이물질의 느낌은 식도를 막고 신선한 공기를 철저히 가로막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학생을 일으켜 세우려던 무릎이 저절로 풀썩 꺾어졌다.

  선호가 뛰어나왔다. 뒤이어 숙희가 맨발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나를 부둥켜안았다. 그녀의 흰옷이 빠르게 붉은 피를 빨아먹었다. 내 가슴 언저리는 따듯하고 끈끈한 액체로 미끈거렸다. 뼈의 이음새가 마디마디마다 분리되고 있었다. 몸속에 흐르던 피가 밖으로 튀어나가 뜨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근육이 마비되어 그녀가 만져지지 않았다. 숙희의 몸속에서 숨 쉬고 있을 녀석조차 이제 느낄 수 없을 터였다.

  숙희의 뜨거운 물방울이 얼굴로 떨어졌다. 그녀의 애처로운 절규가, 눈물진 얼굴이 내 얼굴을 비볐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의 절규는 아련하게  흩어지는 바람처럼 귓속을 맴돌아 나가며 서서히 멀어졌다. 그녀의 절규, 울부짖음은 내 귓가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기나긴 잠의 유령이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치명적인 고요였다. 숙희의 눈물범벅인 눈동자에 아스라한 내가 비쳤다. 내 눈동자에도 절규하는 숙희가 있을 터였다. 숙희의 눈동자에 있는 나는 점점 더 희미하게 옅어져 가고, 내 눈동자에 있는 숙희의 얼굴은 점점 아뜩하게 스러져갔다.

  아뜩하게…… 고요 속으로…… 끝섬으로 스러져갔다.<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