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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의 원서 제목은 ‘When we cease to understand the world’다. ‘understand’. 이 단어의 해석은 ‘이해하다’이다. know, learn, perceive와 다르다. 알다, 인지하다, 인식하다와 다르게 이해하다는 상당히 정서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화가 날 때 ‘도대체 너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한다. 대상을 파악한 끝에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이해한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논픽션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너무나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음에도 세상에 대한 ‘이해’를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타고난 지적 능력과 정열을 결합시켜 거대한 발견의 순간과 마주할 수 있었던 사람들, 그러나 막상 그 발견의 순간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던 수학자와 과학자들이다. 슈뢰딩거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싸움을 벌이면서까지 몰두한 연구의 종점에서 세계는 합리적 신이 운영하는 단단하고 확고한 실재가 아니라 우연과 변덕으로 가득찬 혼돈의 주사위에 불과하다는 걸 입증하고야 만 하이젠베르크의 이야기가 그 중 가장 돋보인다.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시작한 그 모든 일이 결국은 세상은 설명할 수 없다는 증명으로 ‘논리적으로’ 귀결되었을 때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 책의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인류를 굶주림으로부터 해방시킨 합성 비료를 발견하였지만 동시에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치클론B와 염소가스를 창조해낸 프리츠 하버, 참호 속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의 ‘답’을 발견하였지만 그로 인해 예견된 블랙홀의 존재에 놀라 자신의 정답을 부정하려고 애썼던 슈바르츠 실트, 수학계에 바친 공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로텐디크와 모치즈키 신이치. 처절하기까지 한 지적 욕구 때로는 승부욕으로 세상의 일각에 불을 밝혔지만 거기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차라리 몰랐으면 더 행복했을 진실이고 현실이었다. 그들이 ‘알아낸’ 사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고’ 때로는 ‘이해를 받지도 못했다.’
이 아이러니가 장엄하게 다가오는 것은 역시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일 것이다. 시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학자들의 내면 세계는 자연과학의 규칙과 법칙들로 가득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작가는 지루한 설명을 철저하게 거부한 채 오직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내면 세계를 상상력의 물감으로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다보면 학자들의 머릿 속이 보인다. 그들의 구상, 그걸 탐구하기 위한 철저한 몰두가 날 것 그대로 느껴진다. 세상을 ‘안 순간’ ‘이해하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처절함이 감정적으로 와닿는다. 담담한 묘사는 그 처절한 도전이 절대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모르는 게 행복인 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송곳 같은 누군가가 또 지적인 비극과 마주할 것이라는 슬픈 미래를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