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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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야."


"너는 절대 나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너무 잘 맞물리는 이 두 말은 언제나 어긋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딜레마다. 비비언 고닉의 자전적 에세이는 누군가에게서 태어난 이상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이 숙명 같은 어려움을 담고 있기에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작가의 엄마는 유대인 이민자 출신이다. 남편 때문에 일도 관두고 여자에게는 사랑만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딸을 키웠다. 그러나 적어도 딸이 보기에는, 엄마는 속으로 자신의 그런 삶을 절대로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았고 존중하지도 않았다. 


아빠가 죽은 후 작가에게 엄마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엄마와 보낸 순간순간을 모두 기억해 엄마의 인생 저장소로 자칭할 정도로 작가에게 엄마는 큰 존재였다. 흔히 자식이 부모의 분신이라 하지만 작가가 이 책에서 하는 말을 듣다보면 적어도 그녀에게는 부모가 자신의 분신이었다. 그녀의 기억이 자신의 기억이 되어버릴 정도로.


작가의 고통은 바로 그 분신이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딸이 소중히 간직한 엄마의 인생은 엄마에게는 부정하고 싶은 기억이었다. 엄마는 딸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래서 딸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타일렀다. 살림을 능숙하게 하면서도 작가에게 집안일은 조금도 가르치지 않았다. 작가의 엄마는 능숙한 요리사고 맹렬한 청소부며 악령들린 세탁부였는데 작가는 요리, 청소, 다림질을 엄마로부터 배워본 적이 없다. 딸을 대학에 보내며 자랑스러워하고 당당해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부정 당했기에 작가는 이런 엄마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엄마가 바라마지 않던 그대로. 그러나 자신을 무시한 자신의 분신을 쉽게 용서할 수 없었기에 엄마처럼 되지 말았어야 할 그 인생 여정은 미묘하게 분신이 원하던 바와 어긋났다. 대학을 나와 교사가 되지 않았고 외국인 화가와 결혼했으며 호모섹슈얼과 친구가 되었다. 


엄마는 작가에게 자신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했고 작가도 자신의 의지로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만들어진 것 같이 상호부합되는 상황 속에서 둘은 서로를 불만스러워하게 되었다. 사랑하고 끝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도 기꺼이 용납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작가가 말한 대로 '사나운 애착'이다. 


작가가 엄마와 함께 뉴욕 거리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되살리며 서로 싸우다가 깨달은 것은 그 사나운 애착이 불러온 결과물이다. 작가는 엄마처럼 숨통을 콱 막히게 하는 말을 엄마를 상대로 내뱉고 경우가 다소 다르지만 엄마처럼 결혼생활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엄마처럼 '고통받는 여성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작가는 엄마로 뒤덮여 아무리 차별화하려고 하고 달라지려고 기를 써봐도 엄마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나운 애착, 평범한 말로는 '애증'이 불러온 결과다. 


작가가 담담히 늘어놓는 감정을 느끼며 내게 불현듯 든 생각은 '이보다 나아질 수 있기는 한 걸까'라는 것이었다. 작가가 아니라 우리가, 인류가, 보편적으로, 우주적으로 말이다. 부모와 자식이 이 애증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건 나아진다 나빠진다가 없다. 본질이기 때문이다. 피를 이어받아 서로의 분신이 되어버린 자들은 사나운 애착을 품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서로에게 조금 더 솔직할 수 있다면. 작가처럼 노령이 된 엄마와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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