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 사십줄에 인생을 뒤돌아 보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게 되는 공통점 인가보다. 어느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이 먹는 두려움이고 그래서 3년간의 해외 생활을 결심했다는 하루키, 그런 이유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 중 하나인 이 책을 대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3년 전 40을 맞이하며 인생 후반의 작전과 전술은 전반전과 분명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한 나 자신의 모습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상주하는 여행자’라는 표현 속에서 유럽 생활이 그리 편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을 거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이 책은 작가가 3년간 이질적 문화 속에서 고립된 채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라는 두 권의 책을 쓰는 중간에 제3자로 살면서 느낀 것들을 친구에게 말하듯 편하게 써 내려갔다.

책을 읽다가 약간 그러나 굉장히 놀란 부분이 있었는데, 저자가 소개 받아 머물게 된 스펫체스 섬의 한 식당에서 벌어진 사소한 해프닝이었다. 이곳은 선거일에 주류 판매가 금지 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서 술 마시고 흥분하게 되면 큰 사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외국인이고 선거권도 없으니 팔 것을 권유하는 대목이다. 식당 주인도 합리적 판단으로 일부분 이해하고 주류 판매에 대한 것을 경찰서로 전화해서 물어본 것이다. 물론 예외 없이 안 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이었다. 그런 법이 만들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그런 상황에 처해 있어도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경우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준법정신도 전체 중 작은 일부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곧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흥미 있게 읽은 부분은 시실리의 팔레르모에 대한 설명 부분이다. 마피아가 만들어진 곳답게 음침한 분위기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유럽이면서도 전혀 유럽 같지 않은 그런 곳… 시민 수십명이 보는 가운데에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방탄복과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의 매서운 눈초리는 마피아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아 보인다.

저자가 3년간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 왔을 때, 무차별적 수탈기계인 양 모든 것을 씹고 내뱉는 흡수장치로 변화된 일본을 보고 크게 놀란다. 1980년대 후반, 3低 현상으로 전 세계적 호황을 누리던 그 때, 그 상승의 중심에 있던 일본 사회의 소비 문화가 쉽게 연상된다. 그리고 그처럼 합리적이지 못한 소모적 소비 문화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비난하기 전에 좋든 나쁘든 일본의 한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책임의식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지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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