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일 뿐 더는 묻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 얘기를 꺼낼 때마다 역정을 냈지만 그때는 그저 담담한 표정이었다.
-뭐, 누군들 안 그랬겠느냐마는 니 애비도 고생 많이 했다. 사업한답시고 집까지 다 팔아먹고 알거지가 되었지만 어쩌겠니, 제푼수가 그것밖에 안되는걸. 그게 다 살아보려고 애쓰다 그런 거니달리 원망할 것도 없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 산자락엔 잎이 돋기 시작한 참나무 사이로 커다란 벚나무 한그루가 연지처럼 고운 빛깔을뽐내고 있었다. -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