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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라이프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평점 :
소설 속의 인물과 사랑에 빠진 게 얼마만인가. 비록 내가 마음이 가벼운 쉬운 독자이긴 하지만 천 페이지가 넘는 두 권의 책을 읽는 동안 한 인물에 온 마음을 뺏긴 경험은 오랜만이다.
사전 정보가 별로 없이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화자가 바뀌며 이야기가 전개 되는 걸 천천히 따라갔다. 화가로 성공을 바라는 제이비, 건축회사에 들어간 맬컴,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배역을 따기 위한 오디션을 보는 윌럼, 검사로 일하는 주드. 사회에 첫 발을 들인 그들은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 성적 정체성, 인종적 고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 혹은 기대 등이 청춘 소설처럼 흘러갈 때 주드가 등장한다. 주드라는 이름을 본 순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감히 생의 지옥을 마주한 소설’이라는 무시무시한 홍보문구에서 어떤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 선 제이비, 맬컴, 윌럼이 그 문구의 주인공일리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 예감이 맞아 들어가면서부터 급속도로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똑똑한 두뇌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자신의 과거를 말하기를 피하는 신비로운 주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그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주드는 자존심이 센 인물이다. 이 책에서는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자존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단지 그를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 한다. 어쩌면 우리가 보통 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우정이라면,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 사이엔 비밀이 없어야해. 그렇지 않다면 그건 진정한 우정이 혹은 사랑이 아니야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진짜 그럴까? 과연 내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완벽히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모든 관계는 피상적인 건가? 고통스러운 과거의 상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벽을 만든 주드는 더 노력했어야 하는 걸까? 나는 답을 모르겠고 소설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답을 말해주는 게 문학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드를 대하는 방식이 올바른 것이었냐를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주드의 벽을 일방적으로 허물어버리지 않는 친구들의 방식과 해답을 강요하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읽는 내내 주드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껴져서 ‘감히 생의 지옥을 마주한 소설’이라는 게 어떤 뜻인지 알게 됐지만 그것이 이 소설이 비극이란 뜻을 암시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 완벽한 인생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이겨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주드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가 고통을 이겨낸 서사의 주인공이라서가 아니었다. 참담한 고통 속에서도 매일 살아갈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어서였다.
까페에서 읽다가 자꾸 눈물이 터져 집으로 들고 와 밤새 읽어 내려갔다. 주변의 모든 지인에게 읽기를 강요하게 만드는 감동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애타게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