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미스터 최 - 사노 요코가 한국의 벗에게 보낸 40년간의 편지
사노 요코.최정호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남해의봄날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고 읽는 요코할머니의 책

40년간 우정을 지속한 한국인 "미스터 최"와의 편지를 엮은 서간집

편지도 이런 글일수 있는거야?

너무너무 대단한거 아니야?

아니 아주 젊었던 날부터 이렇게 지혜롭고 은혜로운 글을 쓸 수 있는거야?

아... 멋지다는 말밖에 나는 할 수가 없다

부러운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

경이롭다.

나이와 성별, 국적, 문화를 초월하는 우정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을 이렇게 기록으로 엿보듯 하지만 제대로 볼 수 있어서 너무 감격스럽다.

사노요코는 1938년생

최정호님은 1933년생

사노요코는 2010년에 작고하셨고 최정호님은 생존해계시다

1960년대 독일 유학시절에 만났던 인연이 40년넘게(마지막 편지를 받은 것이 2005년이라고 한다) 지속되었고,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나지만 사노요코의 다른 에세이집에서(아마도 <사는게 뭐라고>인것 같다)출연한 적이 있는 한국인 친구가 아마도 미스터최인것 같은데 36년간의 일제강점기 시절을 아주 날서게 얘기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에세이에 쓴 것이 기억난다.

참으로 애정하는 출판사 "남해의봄날"에서 나온 책이고

나는 동네책방에디션으로 강화의 "책방시점"에 가서 구입했는데..

사실 표지에디션은 그냥 대형서점 것도 예쁘다..^^

p.22

1967.베를린

친애하는, 외설스런 벗이여

p.23

1967.5.15

친애하는, 절교한 벗이여

...그 편지를, 당신의 섹스로 쓰세요.

(중략)

당신 섹스를 날실로 하고,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당신 안에 쌓인 '조선'과 '한국', 그리고 미운 '일본', 당신을 실망시킨 '유럽'을 씨실로 해서, 극히 '외설스럽고, '잔혹'한 지옥도처럼 아름답고 무서운 문명 비평을 쓰면 어떨까요?

이렇게 부르는 말들, 그리고 격이없이 나누는 얘기들. 와 너무 부러워. 세월의 흐름을 나도, 방문자분들도 느끼시라고 연도를 적어두었다.

부르는 말이 인상적인 경우에는 부르는 말만 저렇게 써놓기도 했다

책의 모든 부분을 쓰고 외우고 찍어두고 계속보고 하고 싶을 정도로... 이런 말은 말해서 뭐하나 싶고(너무 당연하기에)

거르고 걸러서 적어둔게 이정도라는 것.. 200페이지가 안되는 작은 책인데..

p.39

저는 남쪽으로 갈수록 행복한 것 같아서 나중에 남쪽으로 내려가서 장화 끝에 매달려보려고 합니다.

p.45

1967. 심미안을 자랑하시는

친애하는 최정호씨

저는 아버지에게 화가 났어요. 그럴 때(임종가까운 때)는 더 현실적인 말, 예를 들면 "너희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마당을 파면 돈이 든 금고가 있다"든가, "돈 많은 남자를 찾아 재혼하라"든가, 좀 더 도움이 될말을 해야 하는데 학자인 척을 하시니까요. 진리로는 먹고 살 수 없어요. 결국에는 경사스러운 정월1일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저는 아주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p.57

1971.8.21

이것도 저것도 손에 넣으신 데다 하와이 생활까지 얻으신, 친애하는 최정호 님

제가 가장 큰 행복을 느꼈던 때는 밀라노에 도착한 첫날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행복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밝고 와글거리던 전철역에서 저는 마치 '바다 속에서 오줌'을 눈 것처럼 해방감을 느꼈어요

나 진짜 바다에서 오줌눠본적있는데... ㅋㅋ정말 나도 해방감느꼈다. 어떻게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을 아무렇지 않게 글에 녹여내는게 작가의 능력인듯.

p.61

1971.8.31

아무런 형용사도 없이,

그냥 최정호님

p.65

1971.10.18

출산때는........섹스에 복수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만 당하는 것은 불공평하잖아요.

(중략)

돌이 지나니 벌써 여자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그래서 그는 여자들을 헤치면서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슈퍼마켓에서 못생긴 아이 하나가 저를 향해 걸어오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우리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말...내새끼가 군계일학인줄 알았는데 결국 오합지졸이었다는걸..알게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음...아 웃프...

p.79

1977.11

그런데 미스터 최, 당신은 왜 그토록 운이 좋으세요?

훌륭한 직함이 적혀있는 미스터최의 명함을 보면 그게 직함이 아니라 훌륭한 운이 나란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행운을 얻기 위한 노력과 실력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그런 논리를 믿지 않아요. 행운이란 그런게 아니거든요. 행운도 불운도 살아있는 생물이라 각자 필사적으로 살려고 해요. 행운도 불운도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고 해요. 행운은 못생기고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고 여기저기 아프고............. 같은 사람에겐 붙지 않아요.

행운은 위험한 짓을 안하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세계 각지에도 여자가 있고..........거대한 OO를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 붙어요. 미스터 최의 남은 인생은 그 행운을 모으기만 하면 돼요. 불운은 부끄러워서 미스터 최 앞에 나타나지도 못할 거예요........제 운에 관해서 말하면, 행운도 불운도 저를 몰랐으면 좋겠어요. 불운이 찾아와도 저는 집에 없을 거예요.

p.81

고속도로는 빌딩과 빌딩 사이에 스파게티처럼 뻗어있어요.

p.83

그림처럼 아름다운 베니스가 아니라 그림과 똑같은 베니스를 보고 저는 몹시 화가 났어요.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보고 실물을 보러 갔는데 전혀 아름답지 않더라는게 철칙이잖아요. 인생은 그런식으로 기대에 어긋나야 해요. 그림 그대로의 풍경이나 기대한 대로 되는 삶은 우습지 않아요?

p.84

1978.11.5

미스터 최가 마흔일 때 저는 미스터 최를 어른으로 존경하고 있었지만 제가 마흔이 되어보니까 그 때 미스터 최도 그다지 어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도 곧 마흔인데..뭐 대단치 않더라고. 박완서님이 마흔에 등단하셨다고 하는데..이제와 생각해보면 마흔도 어린나이같고..내가 철이 안들어서 그런것일수도!

p.87

1979.5.12

저에게는 미스터최와의 만남만이 드라마틱해요.

제 일상생활이 미스터 최와 연관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

늙어가는 미스터 최의 육체에 여전히 싱싱한 미스터 최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고소해요.

미스터 최의 기쁨과 고뇌는 그 육체와 정신의 불균형에서 오는 거겠지요. 그 불균형이 거대한 우주 같아서 저는 미스터최가 무척 좋습니다.

p.91

1981.1.12 (최정호의 편지)

제가 좀 젊었더라면.

살인마들이 굼실거리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이런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저는, 그래도 제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싫어하지 못해요.

p.92

1981.1.19

저는 믿어요. 사람은 결코-다시 태어나도-다른 삶을 살지 않아요.

흔히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같은 실수밖에 하지 않아요.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만 되풀이하는 거예요.

같은 성공도 되풀이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실수는 하지 않아요.

....

'행복'은 상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행복'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와요.

그리고 '행복'은 자각이 없는 사람에게만 찾아오고 사물을 깊이 추구하려는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아요.

'행복'이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했는데, 자각이 없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는건..무슨 뜻일까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게 자각 아닌가. 근데 자각이 없는 사람에게 온다는게... ?

미스터 최,

당신에게는 결코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거예요.

몇 번 태어나도 고뇌하는 영혼이 될 거예요.

(중략)

미스터 최,

일본 사람은 아무도 조국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이 전혀 없어도 일본인이라고 하니, 이상한 사람들이지요? 일본에서는 '국가'에 반항하는게 항상 유행하고 있어요.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킵니다. 그것이 유행이기 때문이에요.

....

저는 당신에게서 당신의 나라 사랑을 느낄 대 심장이 움츠러들 만큼 두렵습니다.

...

제가 예술가 나부랭이라면 엉뚱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예술가는 정신이 약간 돌아도 용서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지금은 한국에서도 유행처럼 사람들이 국가에 반항하고 있는데..집단도 개인도..

이런거보면 정말 사람들의 사고도 경제 정치의 발전에 따라 비슷한 패턴으로 진화? 발전? 변화?되어가는것 같기도 하다.

p.97

1981.1.21

제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살아왔다는 것도 착각이었던것 같습니다.

우리는 각자 환상을 가졌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 환상의 극단이 바로 연애임이 틀림없습니다.

공통의 환상을 서로가 가짐으로써 연애가 성립되고 환상을 서로 사랑하게 되는거예요.

환상을 현실로 착각해서 사랑에 빠졌던 젊은 날이 그리웠습니다.

....

그런데 미스터 최, 저는 전혀 환상없이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어요. 그것은 미스터 최에 대한 사랑이에요. 저는 아예 공통의 환상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어요.

읽으면서 몇번이나 생각해보았다. 나에게도 이런 상대가 있는지. 혹은 있었는지..아직까지는 찾지 못했다. 있었는데 기억을 못하는건지. 처음부터 없었는지.

환상없이 사람을 사랑하고 공통의 환상도 가지려고 한 적이 없는...

그런 류의 감정이 있을까? 그런 감정이 존재하는거니까 느낀거겠지? 아니면 두 분이 환상이 없는 관계를 이루다보니 환상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만들어진건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관계란 무엇일까. 두분 사이에 있었을 우주적인 것들을 겨우 '우정'이라는 단어로 수렴했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이어질 수 있는 감정, 교감, 대화..그 모든 것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순간순간 느꼈다.

p.99

1981.2.1 본에서(최정호의 편지)

저는 '국가'에 반항하는게 일본의 '유행'이라고 말하는 요코씨가 부러워 죽겠습니다

....

저는 우리 애들이 어른이 될 무렵에는 한국도 '국가'에 반항하는게 '유행'하는 나라로 '발전'하면 좋겠어요.

p.102

1981.2.10

신은, 세계에 불공평을 창조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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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미스터 최. 독일에 있을 때 저는 깨달았어요. 왜 독일이 철학자를 많이 배출하는지를.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그 문제를 생각한거에요.

이탈리아 사람을 보세요.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지 않고도 잘 알고 있어요.

이탈리아 사람은 유부녀와 간통한 다음에 서둘러 바지를 입고 교회에 달려가서 "하느님, 미안해요."하며 참회하고 밝은 표정으로 교회를 나와요. 그리고 또 바지를 벗으러 가는거에요. 신을 그런 식으로 쓰는 게 산다는 일이에요.

신은 세계가 불완전하면 할수록 균형잡힌 완전한 우주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거에요. 미스터 최, 당신이 그 우수한 감성과 지성으로 행복론을 완성하면 당신은 더 고민하게 될거에요. 신에 대한 통찰은 은혜롭기까지...

-

....서양 사람의 정신에는 절대로 다가가지 마세요. 서양인의 합리 정신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예스'와 '노'를 명확히 해서는 안됩니다. 명확히 하면 답이 하나밖에 없어요. 답은 예스와 노 사이에 끝없이 존재한다는 게 동양인의 사고방식이에요. 그이의 철학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

그런데 동양인은 처음부터 예스도 노도 없으니 잘라버리지 않아요. 그것은 문어발처럼 태연하게 다시 돋아나요.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사람들은 문어발처럼 돋아나오는 것과 사물을 잘라 버리는 합리성 사이에서 고민했던것 같아요.

그리고 그 결과, 일본 사람들은 정신분열증이 생겼습니다.

일본국이 바로 정신분열증 그 자체입니다. 개인이 정신분열증이라 국가도 당연히 정신분열증입니다.

미스터 최, 한국은 정신분열증이 되어선 안 돼요.

아무리 유럽 문화를 깊이 아셔도 미스터 최는 불가사의한 미소를 잃지 마세요.

p.109

1981.2.14

그 사랑스럽던 제 아들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주 짧은 밀월이었어요.........밀월을 더 연장하고 싶어서 그러는거에요.

......아들이 있는 여자가 아들보다 남편을 사랑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거에요.

아들과 남편이 강에 빠지면 여자가 누구를 먼저 구할지 뻔합니다. 남편은 그의 어머니가 구해줄 때까지 떠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 아내와 아이를 위해 땀을 흘리며 일하는게 남자의 숙명입니다. 열심히 일하세요. 아들가진 엄마로서 깊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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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시대부터 이어진 가장제도가 무너지면서 본받을 가족의 모습을 잃어버린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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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가정을 잃어도 아이를 잃지는 않아요. 어머니로 남아 여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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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망명했던 일본의 공산당 간부가.....30년가까운 세월을 중국에서 보내고......돌아왔습니다.

그가 한 첫마디는 일가단란(一家團欒)을 즐기고 싶어서......신념도 사상도 늘그막에 일가단란을 즐기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는 못한 거에요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상도 신념도 아니고, 생활이 아닐까요?

여자에게는 생활이 있을 뿐이에요.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생활이에요.

생활 이외의 것에 꿈을 거는 남자들과 생활밖에 모르는 여자들이 어떻게 하면 가정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요?

미스터 최,

모순이 있는 제도라 해도 가족제도가 확립되어 있는 나라는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

...건전한 가정이 있는 사람도 행복하지는 않습니다.........행복하지 않아도 가정을 유지하는 것을 내 삶의 목표로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저는 가족이 사람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고 믿습니다.

한편의 주옥같은 설교문을 읽는것 같았다. 결국 '가족'이 제일 우선이어야 한다는 너무나 진부하고도 도덕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사노요코식으로 풀어내다니. 그리고 건전한 가정이 있는 사람도 행복하지는 않다는 당연한 팩트까지. 이 대목에서 신기하게도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ㅋ

p.113

1981.11.28

통화했을 때 미스터 최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하셨을 때 저는 눈물이 나도록 부러웠습니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할 만큼 행복하시니까요. 아주 행복한 사람은 바보이고 불행한 사람은 성격이 나빠요. 아멘. 진리발견!

-

진짜 인생은 역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족이 되어 도망 못 가게 된 후 시작한게 아닐까요?

p.128

1981.12.-1982.1. 즈음

미스터 최, 당신은 저에게 끝없는 기쁨과 끝없는 슬픔을 줍니다.

-

저는 미스터 최를 절대로 잃지 않을 겁니다. 처음부터 잃어버린 사람이니까요.

두분 관계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더라고

p.136

1990.9.

우리는 무척 행복하니 아무쪼록 얼굴을 찡그리세요. 이런 사노요코스러운 말이 너무 좋아. 한번쯤 오디오로 듣고싶어. 살아생전의 인터뷰나 목소리가 담긴 무엇들이 있을까? 있나요?... 궁금하다 사노요코의 모든 표정과 말투 목소리..

-

당신이 싫어하시는 일본은.....거의 백치같습니다. 다음에 최정호 씨가 오시면 욕설을 에베레스트처럼 쌓아올릴 수 있을거예요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윤동주를 더 깊게 공부한 일본인 학자가 있다. 오오무라 마스오 라고..

또 일본에게 욕을 하라며 멍석을 깔아주는 분이 있다. 사노요코라고..

사실 이런 류(?)의 일본인에게 참 궁금하다. 식민지나라의 시인을 연구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또 지배국가에게 욕을하라는 심리는? 말하자면 회개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그래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지배국가로서의 자존심(지배는 내가 한게 아니지만 그래도 너희의 좋은 것들을 연구해줄게, 욕할 기회를 줄께, 너희의 욕을 내가 들어줄게 하는 나름의 만족을 위한 참회적인 행동이랄지..이런걸 통해서 그래도 느끼고자 하는 우월감)인지..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내가 너무 의미부여하려고 하는건가?

그래도 조금 궁금하긴 하다..^^

p.164

1997.

..이런 친구를 가져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코를 푼 종이로 눈물울 닦습니다. 오래 살아 있으면 좋은 일도 있네, 혹 죽었더라면 이 전화를 못받았겠지.

p.166

1997.4.4. 팩스

죽게되면 꼭 알려주세요.....자신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행복하지 않으신가요?.....세계적으로 금연이 유행이지만 저는 태연하게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예전에 102세 할아버지에게 "장수의 비결이 뭔가요?"질문했더니 "금연입니다"하고 대답하셨어요. 다시 "몇 살때부터 금연하셨나요?"하고 물어봤더니 "97세부터입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97세에 담배를 끊을거에요. 박장대소 했음

p.169

1997.10.7. 팩스

(죽었다면 성묘하러 가겠습니다)

다니가와 슌타로는 사노요코의 두번째 남편

독후감을 쓰면서도 내게 사노요코같았던, 최정호님 같았던 존재를 생각해보았으나 아직도 떠오르는 인물이 없는걸보면 내 인생에 이런 이는 없었나보다.

보고싶고 만나고 싶고 얘기나누고 싶은 사노 요코 님.

그이가 천국에 있다면 나도 천국행을 바랄 것이고

혹여나 그이가 지옥에 있다면 나도 지옥행을 바랄 것이다

나이, 국적, 문화, 언어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한 우정.

모든 편지에서 느꼈던 경이로움, 그리고 사사로우면서도 빵터졌던 웃음.

지금도 내 마음에 내 입가에 퍼져있습니다.

건강하세요. 살아계세요..하는 사노요코의 말은

정말 살아있는게 사명이다 싶을 만큼

사노 요코에게 살아있으라는 따뜻한 명령을 받는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이미 그이의 문장과 문장의 깊이는 20대때부터 완성되어 있었나보다

나이가 들며 소재가 다양해진 것일 뿐.

작가로서는 이미 완료형의 사람이지 않았나 싶다.

종교의 모임이 있는 날

교회에서 성당에서 절에서..전해야 할 말씀 준비하지 못한 종교지도자들은

(준비해봤자 뻘소리나 할 것 같은 분들은)

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펴서 낭독하는 것이 회중들에게 어느 때보다 진한 지혜와 은혜를 끼치는 일이 될 것이오.

어느 페이지를 펼지도 준비하지 않은 이가 하필 낭독한 부분이

"당신의 섹스로 쓰세요"

라면.....

나는 엄청 큰 은혜받을 것이오

궁금하다

사노요코의 모든 말과 글이

다른 편지들도 공개될 수 있기를

그래서 더더욱 생명력을 얻는 편지들이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미스터 최 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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