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매스커뮤니케이션 - 전면개정판
한국언론정보학회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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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의 대표적 총아인 매스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의 기능과 효과에 대한 다양한 연구는 매스미디어나 매스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 서의 저자들은 이런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기계적 장치를 이용하여 대규모의 이질적이고 분산된 수용자들에게 상징적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송신자인 매스미디어와 수용자인 대중, 내용인 메시지 사이의 역학적인 관계를 매스미디어가 갖는 인지적 효과의 정도와 상호작용 내용에 따라 다양한 모델들로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으로 매스미디어의 수용자에 대한 영향에 강하게 초점을 맞춘 강효과이론-침묵의 나선이론, 문화계발효과이론, 배양효과이론, 프레이밍 이론-과 이에 반발하여 Klapper가 제안한 소효과이론, 그리고 수용자 중심의 이용과 충족이론을 표방하는 중효과이론 등이 제시되고 있으며 비교적 각 이론에 대한 충실한 설명과 덧붙여 한계점까지 논하고 있어서 현재 대중들의 의식을 지배한다고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매스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많은 효과이론 중 개인적으로 매스미디어가 수용자의 인지에 대한 강한 영향요인이 된다고 주장한 침묵의 나선이론의제설정기능이론에 공감하고 있다. 침묵의 나선이론의 경우 비록 인간의 본성과 매체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미디어의 특성을 미디어가 쟁점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영향을 미치는 누적성(cumulation), 미디어가 사방 도처에서 발견되는 편재성(ubiquity), 그리고 다양한 미디어들에 의해서 논쟁점이 공유되고 있는 조화성(consonance) 등으로 제시하며 현재 대중심리를 잘 반영한다는 생각이 든다.

 의제설정기능이론은 최근 일어난 천안함 침몰사건을 통해 그 효과성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천암함과 천암함 수색을 위해 동원된 금영78호에 대한 매스미디어의 의제설정은 대중들의 상이한 관심도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금영78호 피해자 가족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1980년 광주사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군부에 장악된 매스미디어가 광주사태에 대한 의제설정을 고의적으로 회피함으로써 군사정권대중들을 무지한 상황으로 내몰았던 사례를 통해 매스미디어의 기능이 사회 전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 알 수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저자들이 제시한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모델과 효과이론들을 사회적 유용성과 정치적 효과로 연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매스미디어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무기로서 대중들의 사회적 인식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으로 인해 영향력이 클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집단적 속성으로 인해 미디어의 영향력은 크므로 사회복지의 주 대상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기존 정보의 변용을 통한 긍정적 이미지 형성 및 대중들의 사회적 쟁점에 대한 매스미디어의 설득기능을 활용하여 시장자본주의에 매몰된 인간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제시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매스미디어 기능의 우울한 단면이 이 책에는 강력하게 제시되고 있지않다. 인간성 회복을 위하여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들이 매스 미디어란 수단을 통해 일반대중을 지배하게 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빚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대중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지만 모든 정보를 자유롭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매스 미디어가 주는 정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보의 중요성과 선택 기준을 도리어 매스미디어에 의해 제공받는 현실을 감안하면 매스미디어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만하고 이에 대한 경고 또한 명시되어야 한다. 대중의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전제로 하여야만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바람직한 방향성은 설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만약 우리가 현재 어디에 서 있는가를 먼저 알 수 있다면,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보다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다양한 이론의 고찰을 통해 매스미디어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현 좌표를 확인하고, 바람직한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이끌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스미디어의 운용주체는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장애요인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모든 사회현상의 중심에 있어야만 함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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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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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에서 저자는 현대의 주류 경제학이 눈앞에 보이는 수리와 계량화에만 매달려 물 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큰 흐름을 보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고대 거장 사상가의 눈을 빌어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 믿어왔던 경제적 패러다임이 온전히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미래의 전망 또한 불확실한 것임을 직면하게 하고 이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부터 다시 고민하도록 내몰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경제사상의 의의는 경제에 대해 철학적 사유(思惟)를 기반으로 현대의 공리적 상식과는 다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폴리스’라는 정신적, 물질적 공동체를 통해 ‘공의 선(Common Good)’을 추구하며, 그 세부 개념으로 가정관리의 기술과 획득기술의 종속관계 및 경제행위에 있어서 목적합리성과 가치합리성의 공존, 그리고 가정경제와 폴리스를 두 바퀴로 하고 호혜적 선물교환이란 축을 통해 궁극적 목적인 폴리스적인 삶(완전한 삶)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폴리스를 통해 문제를 풀 것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스승인 플라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별을 통해 경제사상사에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또한 그는 ‘등가교환의 시정적 정의’를 펼치며 영리적 경제활동을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프락시스와 포이에시스의 개념을 제시하며 목적과 수단이 전치되는 단순한 돈벌이로서의 경제행위에 대해 경고를 하였으며, 좀 더 안정성이 높은 호혜적 선물 등의 자연적 교역으로 시장경제를 대체하고자 하였다. 그의 사상은 후일 칼 마르크스로 하여금 사회와 경제에 대한 전체론적 접근에서 출발하여 시장과 화폐의 발생학을 연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본질을 규명하도록 하였으며, 칼 폴라니로 이어져 교환가치가 중심이 되는 형식적 경제가 아니라 사용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실체적 경제’로의 회귀를 제기하도록 하는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다만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 것은 현대 경제학의 재조명의 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관은 공동체 내의 경제적 거래가 폴리스와 가정경제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수준에만 머물도록 지나치게 도덕적 통제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사상이 스승인 플라톤의 이상주의(idealism)를 비판하고 실체(Ousia)적인 일원론적 세계관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근본적으로 시장을 통한 영리적 경제활동을 부정하고 경제적 거래행위 자체를 재화나 가치의 교환을 통한 쌍방의 윈-윈win-win게임이 아닌 일방의 손해로 귀결되는 제로섬zero-sum게임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경제학자들의 전폭적인 동의를 얻지 못하는 한계를 보임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가져온 의문은 과연 도덕적 가치로 무장한 그의 이론으로 영리성을 배제한 채 현대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경제의 본질적 의미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주변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진단-전망-대안 제시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을 통한 사회 전반적인 기여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단순한 숫자놀음을 뛰어넘어 복잡한 시장의 현실과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을 반영하는 고대 사상가의 경제관을 현대 경제학의 현실에 접목하여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의식적 노력과 행동은 거대한 사회적 격변에 대응하여 발전적 가치를 지향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본 서의 비판적 탐독을 통해 인간의 경제활동 목적에 대한 가치 접근적 개념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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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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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라니는 그의 저서「거대한 전환」에서 시장경제의 역사적 등장을 산업혁명에 직면한 인류가 거기에 상응하는 경제체제를 만든 결과라고 하였다. 즉, 시장경제는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의 가능성을 활용하기 위해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였던 시장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자기조정적 체제로 만들므로써 형성되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이전까지 비경제적 목표를 포함한 넓은 범위의 사회, 문화적 관계에 종속적으로 ‘묻어 들어가 있었던(embedded)' 경제가 그 어떤 제도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나의 독립 영역을 차지함을 의미하고 있다. 특히 경제를 실체적 측면으로 접근하고 인간의 욕구가 일정한 제도나 관습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았던 그의 경제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민적 삶‘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으며, 공동체의 자급자족을 위한 자연적 생산요소였던 노동, 토지, 화폐가 시장기제를 통해 상품화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폴라니는 자본주의의 원조인 영국에서 노동력의 이동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의 발전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경제의 본질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그는 시장경제의 기제를 ‘이중운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그 하나의 구성요소인 시장 고유의 ‘자기 조정적 기능’과 다른 하나인 ‘사회의 자기보호’라는 모순적 구조가 종국에는 인류를 사회 해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5세기 영국에서는 대대적으로 벌어진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wment)'과 불황, 전쟁에 의해 빈민이 증가하자 사회불안을 막기 위해서 국가가 빈민구제를 위한 각종 법규를 제정하게 되었으며, ‘스핀험랜드법’이라는 가부장적인 온정주의식 국가 개입의 기형아 또한 이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빈민 개인적 측면에서는 체계적 임금보전과 가족수당이라는 ‘생존권 보장’의 확보와 농촌공동체에게는 농민의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을 방지한 ‘안정적인 노동공급 보장’에 있다. 그러나 그 숨겨진 진실은 ‘단결금지법’과 결합되어 임금수준 감소를 통한 주류계층(majority)인 고용자들의 합법적인 이익유지 수단으로의 변질이라는 것이다. 이 결과 노동자들은 ‘구호대상 극빈자(빈민)’가 되었고, 노동의 양과 질이 반영되지 않는 임금보전은 생산성의 하락과 불필요한 인구의 증가라는 부작용까지 낳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인류는 싫든 좋든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모종의 유토피아적인 실험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폴라니의 이론에 의하면 스핀험랜드법의 시행은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출현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의 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가 경고했듯 공동체 구성원들의 경제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 ‘빈민을 위한’ 스핀험랜드법이 오히려 잔혹하게 ‘빈민을 해(害)한’ 형태로 변질되었듯이, 시장경제와 사회의 보호라는 필연적 이중적 구조가 가져올 사회적, 문화적 해체의 비극은 자명할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현상을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 이해 없이 단편적 시장논리로만 이해하고 사회제도로 구체화 시켰을 때 얼마나 거대한 혼란으로 사회 전반을 뒤흔들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폴라니는 스핀험랜드법의 가장 큰 맹점을 그 중요한 축을 이루는 ‘빈민’에 대한 개념 정의가 모호한 데 있다고 보았다. 이전 엘리자베스 구빈법에서 '자격 있는(deserving)‘ 빈민을 구분하고 그 근로에 대해 강제한 것에 반해, '항시적 빈민'과 '일시적 빈민'에 대한 구분이 없어 노동 가능한 일시적 빈민의 근로동기까지 약화시키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 데 그 실패의 부분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수긍하는 바이나, 여기서 인간의 경제행위 동기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때 몇 가지 의문을 제시하고 싶다. 
 

 그렇다면 타운젠트가「구빈법에 대한 논고」에서 밝힌 것처럼 과연 빈민을 자극하여 일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굶주림뿐” 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의 비물질적 동기는 스핀험랜드법 시행 시기 빈민들의 근로 동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일까? 
 이전까지 스핀험랜드법에 대한 해석은 획기적인 시민권 회복을 시도한 법안이라는 교과서적인 것이었다. 본 서는 과감하게 구태의연한 역사의식을 던져버릴 것을 요구하고, ‘폴라니’라는 도전적인 프리즘을 통해 얼개처럼 얽혀있는 거시적, 미시적 사회경제구조의 유기적 역동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 해결 절차에서 기본적인 사유와 철학적 논의가 결여되고 사회전반에 시장논리를 적용하기에만 급급한 오늘날, 기존의 시장 편향적 경제 개념에 덧붙여 폴라니의 균형 잡힌 경제관을 수용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내재적 원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며, 또한 스핀험랜드법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소득 보존형 보충적 복지를 시행하고 있는 현행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있어서의 시사점 또한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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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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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에 과연 '좋은 이별'이란 있을까.. 

 최근 힘든 이별의 경험을 안고 상처를 치유중인 내가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며 가진 의문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의문이라기 보다는 반감이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사람과 세상에게 배신당하고 그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을 똑같은 분량만큼 어딘가에게든 들이붓고 싶었던 내겐 '좋은 이별'이란 책 제목 자체가 사치같단 느낌이 강했다. 더구나 책 내용과 관련된 전공을 가진 내겐 비전문가인 작가가 한때 치기어린 관심으로 쓴 수박 겉핥기식의 글이겠거니 하는 오만함도 있었다.

 호기심반, 반감반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나는 마치 시험 답안을 찾는 수험생의 심정으로 한 줄 한 줄 형광펜으로 마크를 해가며 읽어나갈만큼 탐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읽은 책장의 수가 남은 것보다 더 많아졌을 때, 이미 난 '좋은 이별'이란 말이 단순히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생적 인연'의 함의를 담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창조해내는 작업..이 것은 미치엘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에 나오는 한 구절과도 일맥상통함을 알게 되었다. 

 "All endings are also beginnings. We just don't know it at the time."  

  하지만 누구든 알 것이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그 어떤 담담함으로 바라본다하더라도 이별은 지독한 고통임을. 설사 그 것이 미리 준비된 것이라 할 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결코 어떤 말로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 또한. 

 그 어떤 시련과 고통도 삶의 한 순간임을 느끼게하는 것은 결국은 시간이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크게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우리 자신의 삶의 궤도로 우리를 되돌려놓기 마련인 것, 그 것이 시간의 신비한 능력인 것이다. 

너무 아프지않도록, 너무 휘둘리지않도록 그리고 나 스스로와 시간의 힘을 믿고 인내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 <좋은 이별>이 내게 내린 처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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