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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평점 :
발칙하고 과감했으나 과감도 발칙함도 없는 나. 내 모습이 책 속에서 보일때 나는 가끔 안도 한다. 나만 찌찔한게 아니었어.
그녀는 알았다고 말하고 여자 샤워실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는 사라졌다. 발칙하고 과감했으나 과감하지 못하고 발칙하지 못한 내가 짜증낼 일은 아니었다. (중략) 수건을 나눠 쓰는 사이, 그 인간적인 관계에 대해 생각할 즈음, 이 대목에서 나를 아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이, 그녀가 나왔다. 그녀의머리카락은 어느 정도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려져 있었다. 말이 없는 나와 말이 없는 그녀는 엘리베이터의 진공상태를 잘 참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곤란에 처해 있었다. 조금 있으면 내릴 그녀를 따라 내려야 하는지, 아니면 순순히 내가 내려야 하는 층까지 가야 하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을 좀 더 말려줘야 하는지, 아니면 돌아가 내 머리카락이나 말려야 하는지. 그녀가 내릴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 모든 걸 허락하지 않은 건 엘리베이터 앞에서 있는 한 사내 때문이었다. 언뜻 조각상을 닮은 황금빛 머리카락의 사내가 활짝 웃으며 엘리베이터와 복도의 경계를 건너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황급히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눌러야 했다. 어지러웠지만 힘들었지만 목을 돌려 어깨 위에 걸쳐진 수건의 냄새를 맡으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딸기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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