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여행자의 책
허연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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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작품이 많아서 좋았다. 첫 작품이 <이방인>인 것도 좋았다. 태양이 직통으로 내려 쬐는 여름날, 공사장을 지나가다 허연의 저술이 떠올랐다. 술술 읽히는 문장이다. 감상자를 배려했고 개인의 경험이 녹아 있다. 작품들 중 상당수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고전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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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542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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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오십미터의 반경을 유지하던 시인이 이제는 기어코 그 안으로 들어가 지옥과 죽음을 들여다 본다. 다만 탐닉하지 않는다. 오십미터가 오미터 정도로 변했을까? 그 차이다. 죽음을 들여다 보는 그 거리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으나 나오지 않는다. 이미 시인의 삶은 죽음과 함께다. 원래 삶은 죽음과 함께다. 분리되지 않는다. 자기 안에서도 죽음이 있고 자기 밖에도 죽음이 있다. 이 당연한 진리는 시인의 언어를 다소 거칠고 단순하게 만들었다. 앞서의 시집에서 보여줬던 정교하고 미려하게 다듬어진 언어 보다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 시집은 시인의 변모이자 교차이자 중심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성정과 성향과 자세와 스타일에 '가속도'를 더했다. 그러니 힘이 있다. 힘이 있다니?

F = M*A

허연의 힘은 그가 30년 쌓아 올린 세월과 보여준 시집의 질량, 그리고 이번 시집에 실으려 했던 가속도에서 나온다. 오십미터가 오미터가 되는 그 속도, 죽음에 보다 가까워진 그 방향성,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시인의 자세는 시어에 속도를 부여했다.

말이 안 되는가? 시집을 한 번 읽어 보시라. 어떤 시집보다 빠르게 읽히며 빠르게 이해가 된다. 머무르나 뛰어 넘는다. 어딘가로 종주한다. 주자로 뛰지 심판하지 않는다. 그래서 잔잔하지 않다.

시인은 이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속도'가 문제라는 것을. 그렇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이 시간의 상대성을 뛰어 넘어 절대성의 영역에서 읽혀지길. 독자로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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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빛의 과학 - 한 권으로 읽는 우주 발견의 역사
지웅배 지음, 최준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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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우주덕후라고 칭하지만 사실 나는 우주를 많이, 그리고 깊게 알지 못한다. 내가 읽은 우주과학 책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초심자가 그렇듯이 또 잘 모르는 사람이 그렇듯이 우주와 별은 내게 낭만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향인 동시에 내가 서 있는 입지와 현실을 지엽적인 것으로 여기게 해주는 지옥과도 같고 모른다라는 말로 생의 99.9999...%를 설명할 수 있는 무질서한 창고와도 같다. 복잡하고도 단순한 우주, 그리고 별. 대체 별은 왜 저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까? 우주,라는 말을 생각하면 자연히 밤하늘을 떠올리게 된다. 밤하늘의 별들, 반짝반짝한 저 빛은 대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일까

 

<, 빛의 과학>은 천문학자인 젊은 저자가 별과 별에서 나오는 빛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천문책이다. 과학 이론서도 아니고 과학 에세이와 같이 특정 주제에 대한 저자의 상상과 에피소드, 성찰을 나열하는 구성의 책도 아니다. 엄연히 천문학을 다루고 있으며 과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대중을 위해 이론, 공식은 배제하고 역사적인 서술과 약간의 인문학적 인용을 토대로 천문학을 전개를 하고 있다. 과학도나 전문가에게는 깊이가 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과알못, 그중에서도 천알못인 내게는 썩 괜찮은 책이었다. 천문학에 대한 대중서는 한국에 몇 없는데다가 있는 책도 별과 성단의 백과사전식 구성의 책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다음과 같은데 천문학이라는 학문을 개괄하면서도 천문학에서 이슈가 되는 몇 가지의 주제를 챕터로 삼아 역사적으로 서술하였다.

 

1. 천문학, 관측의 과학

2. 망원경, 어두운 우주를 밝히다

3. , 우주를 채우고 있는 회색분자

4. 중력파, 우주를 보는 새로운 눈

5. 별과 행성, 탄생에서 죽음까지

6. 우주탐사, 또 다른 지구를 찾아서

7. 천문학의 미래, 인공지능이 천문학자를 대신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3장인 , 우주를 채우고 있는 회색분자가 가장 재미있었다. 반면에 5장까지는 비교적 별과 천문학에 포커싱을 하였는데 6장과 7장에서 현재의 이슈를 다루려다 보니 이야기가 산으로 아니 우주전반으로 가는 느낌을 받았다. <코스모스>같이 우주 인문 대중서의 느낌이 들기도 했다. 6장의 행성에 대한 이야기와 7장의 인공지능은 아마도 천문학이 공학과 물리학, 우주과학과 분리되지 않는 학문이기 때문에 정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과학서, 천문학서치고는 에세이를 읽듯이 술술 읽을 수 있어서 나는 재밌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1. 빛과 우주, 거시를 통과하는 미시

3장은 을 미시적으로 다룬다.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에 대한 논쟁을 역사적 순서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토마스 영, 아인슈타인, 슈뢰딩거같이 아는 과학자도 나오고 모르는 과학자도 나온다. 5장에서는 별과 행성이라는 거시우주를 다루고 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큰 별과 그 별을 이루고 있는 성단과 은하와 또 그 은하가 모인 은하계하지만 그 거대한 공간에서 나온 빛이라는 존재, 또는 현상. 5장에서 저자가 말하듯 빅뱅 이론을 정설로 가정했을 때 터져 나온 별과 별의 무리와 그 속의 작고 작은 생명, 먼지의 먼지보다 작은 인간은 그자체로는 작고도 적지만 그 육체 하나하나 거대한 세포의 모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하나보다. 물론 인간 뿐아니라 다른 생명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고양이라든지

 

2. 우주관의 교체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천동설이 지동설이 되기까지, 또 빅뱅 이론에서 우주 팽창이론의 난제까지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도 기존의 이론을 고수하는 경향이 많았다. 근대에 들어서 어떤 분야보다 이론의 폐기와 교체가 활발했던 과학계 역시 보수적인 역사가 많았다. 빛이 입자이냐 파동이냐에 대한 논쟁부터 빅뱅 이론을 정설로 하여 이후의 반박에 대응하기 위한 수정작업을 한다든지과학이 발달한(했다고 믿는) 오늘날도 예전과 마찬가지가 아닐까?”라고 저자는 묻는다. 나중에는 빅뱅이론을 믿은 이 시대를 비판할지도 모른다고하지만 천문학자의 소임은 그 어떤 패러다임 앞에서도 관측을 하고, 그에 맞는 설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오늘도 우주를 관측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더 거대한 망원경을 산꼭대기에 건설하고, 더 선명한 우주 망원경을 지구 대기권 바깥으로 발사한다. 현재까지 다져진 패러다임을 보강해 더 오래 버칠 수 있도록 지켜내기 위해서, 또는 그 패러다임의 종말을 선언하기 위해서.”

 

3. 카오스는 자연의 질서였고, 질서는 인간의 꿈이었다.

헨리 애덤스라는 작가의 말이다. 아마 우주를 공부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나는, 나라는 개인은 우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 모든 사건과 물질이 우연, 우연이 만들어내는 확률로 발생한다고 믿고 싶지 않다. 빈과 부, 불행과 행복, 잘생김과 못생김, ()와 천().이런 것들이 우연이라는 신의 주사위 놀이로 결정된다는 게 무섭고 싫었다. 내가 아프리카 어느 빈민국의 못생기고 약한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가정할 때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한편으로는 나와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하늘의 별만큼 많을테고.

 

우주가 우연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나보다. 아인슈타인도, 슈뢰딩거도 확률론적 우주관에 맞서 결정론적 우주관으로 우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우주의 모습은 구름 덩어리 같고,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오스가 우주의 질서인데 인간은 그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게 이고 희망이니까 말이다. 우주에서 질서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 어쩌면 신을 찾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걸 보고 싶다는 욕망.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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