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승효상의 건축여행
승효상 지음 / 안그라픽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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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만 보아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급하게 휘몰아치던 파도는 잔잔해지고 아늑한 수평선이 펼쳐진다.

 

책 제목은 박노해의 시에서 따온 말이다.

 

오래된 것은 정말로 '다' 아름다울까?

 

저자는 자신의 건축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하나하나 증명해 보인다.

 

그 건축들은 대부분 절이나 수도원 등 종교와 관련된 장소이다.  

역사적 비극의 장소들도 언급한다.

 

한 가지 특징은 외국-특히 서양-의 건축과 우리의 건축을 비교하면서,

우리 건축의 훌륭함을 다소 주관적이다 싶을 만큼 찬양하는 점이다.

 

예컨대, 일본 교토의 '료안지'의 비움은

우리네 독락당과 윤증고택, 옥산서원 마당과 비교했을 때

동결되어 버린 죽은 비움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공감한다.

료안지의 비움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정적이고 무겁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우리네 마당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 그 정서가 반영되어서일까?

신기할 따름이다.

 

저자는 '불확정적 비움'이라는 말로 이를 설명한다.

 

(...) 그 마당은 대개는 비어 있지만

언제든지 삶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어린이들이 놀든, 잔치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든

그 공간은 늘 관대하게 우리 공동체의 삶을 받아들였고

그 행위가 끝나면 다시 비움이 되어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인도했다.(...)

 

나의 어린 시절 마당도 이러했다.

매우 좁았지만 그 곳은 늘 활기가 넘쳤고 움직임이 계속되는 장소였다.

통로였으며 무대였고, 휴식이었고 품이었다.

 

그러한 마당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이처럼 그가 탐색한 건축들도 이처럼 비움이 존재했다.

그 어느 것도 꽉 채운 것이 없다.

책에 나온 사진들을 보면 쉽게 하는 말로 '숨통이 트였다'.

 

나에게, 모든 오래된 것은 '비움'이라는, '숨'이라는,

'휴식'이라는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다울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하나도 놓지 않은 채 끌어안은 꽉 채운 오래됨은 추할 뿐이다.

중력에 순응해 내려놓은 오래됨,

시간에 자리를 내어주고 비움을 택한 오래됨은 아름답다.

 

건축도 사람도 자연도 같은 이치다.

 

책을 읽고 나서 오래된 곳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명승기행'에 대한 신간을 발견했고

초보자답게 책에 나온 장소를 차례로 방문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저자는 말한다.

 

바른 건축 공부란 우리 삶의 형식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자고 먹고 쉬고 사유하는 공간부터 바로 하는 것이

삶의 기본이어야 겠다. 

건축이 건축가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밀접한 분야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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