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 요리
루시드 폴 (Lucid Fall) 지음 / 나무나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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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지인이 독일에 간다기에 딱히 생각나는 안부 인사도 없고 해서,

독일 하면 유명한 맥주와 소세지 중 반입이 가능해 보이는

소세지를 선물로 사 오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랬더니 왠걸... 다녀와서 캔 하나를 덜렁 내민다.

독일어로 뭐라 적혀진 밋밋한 통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원터치 마개 모양을 보아하니 맥주는 아닌 게 분명했다.

흔들어 보니 철렁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우리나라로 치며 꽁치나 고등어 통조림 정도 되는 소세지인가 보다.

 

외국 음식이니 호기심에라도 얼른 따서 맛보면 좋으련만,

외계 물질인냥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자꾸 힐끔거리기만 한 게 벌써 이틀째다.

 

나에겐 저 통조림조차도 무국적 요리에 해당하나 보다.

 

 

무국적 요리, 가수 루시드폴이 소설책을 냈다.

루시드폴이 가수로 알려질 때는 화학자로 소개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도 스위스 로잔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라나~.

 

솔직히 루시드폴이 아니었다면 사지 않았을 책이다.

작품성이나 모든 것을 떠나 소설 마니아가 아닌 나는,

웬만한 거장의 작품-민음사 전집에 포함된 책들-이 아니고서는

굳이 도전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루시드폴이라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것은...

내가 폴의 감미로운 음악에 취했던 나날이 꽤나 오래였으며,

의사시인 마종기를 알게 된 것 또한 폴 때문이니,

폴이 쓴 소설 역시 나의 감성 코드와 교차하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8개의 단편이 차례로 나온다.

제목만 보면 미성숙한 한 인간의 유치한 말장난에 등장하는 단어들 같다.

 

소설마다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배경은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은 것을 평범하게 받아들이고 말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것을 평범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면, 기적의 물,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과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해고당한 토끼 기자와 마을을 이끄는 곰 이장의 생활 등이다.

 

또한 급작스러운 반전이 있다.

여기서의 반전은 놀라움이나 극적 요소가 아니라 허무함에 가깝다.

 

무색무취했던 청년이 순종하며 따르던 삼촌과 같은 아저씨의 머리를

갑자기 소주병으로 내리치거나,

불타오르듯 요리 경연을 벌인 후 방송이 끝나고 나면

소독업체 직원 같은 사람들이

서둘러 음식을 싹쓸어 쓰레기통에 버린다든가 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한 '무국적 요리'와 같은 결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책을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뒤적여 본다.

뭘까... 폴이 하려는 얘기는 과연 무엇일까...

 

책을 흔들어 보니 출렁출렁 물소리가 난다.

이 책이 바로 독일산 수중포장된 소세지 통조림이다.

무슨 맛이었냐 하면,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소세지 맛이다.

 

나는 아마도 소세지에 대한 왜곡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소세지는 소세지인 채로 맛있게 먹으면 된다.

성분과 포장법과 디자인을 분석하기에 소세지는 그냥 일상의 음식이니까.

 

이제 저 통 안에 물건이 궁금하지 않다.

소세지, 맛있겠다. 그것도 독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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