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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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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은 꽤나 유명하다.
엄마가 죽은 사건은 또한 이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주인공은 엄마의 죽음을 알고도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으며
엄마의 나이도 정확히 대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례를 치르고 난 바로 다음 날 여자를 만나
(검사의 표현대로라면) 난잡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는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러저러하게 다투게 된 아랍인을
결국 총으로 쏴 죽이는 죄를 저지른다.
이것은 명백히 죄다.
그러나 그가 법정에 섰을 때
검사와 배심원, 판사, 변호사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그가 사형선고를 받게 된 이유는,
사람을 죽인 죄가 아니라
그가 엄마의 죽음에도 냉담한 모습을 보인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정에서 알려지는 그의 일련의 행동들은
세상 천지에 둘도 없는 극악무도한 사람이라는 결론의 증거가 되고 만다.
알베르 카뮈도 미국판 서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말로 작품을 요약한다.
그의 시각, 그러니까 그가 주인공인 시점으로 소설을 읽다 보면,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했다.
펑펑 울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간절히 위로를 구하는 행동을 보여야지만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판정에서 그는 아주 다른 관점을 대하게 된다.
검사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언급하고 그것을 판단한다.
변호사마저도 "나는~"이라는 주어를 사용하며 그를 대변한다.
나는, 그것도 또한 나를 사건으로부터 제쳐 놓고
나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그가 나 대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법정에 있으나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그의 적-검사-도 그가 아닌 다른 상대-변호사-와 논쟁하고
변호사는 이미 그가 되어 버렸다.
사형선고 이후 사제가 찾아오지만 그는 어떤 회개도 거부한다.
신부 역시 "나는 당신 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의 눈이 멀어서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라며
끊임 없이 그에게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음을 열 것을 권유한다.
그것조차 그에게는 재판의 세계와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재판의 세계란 부르주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라는 카뮈의 편지글에서
주인공의 거부의 근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재판에서 죄인이 된 한 영혼을 회개를 거쳐 올바르게 교정하려는 힘 역시,
그에게는 거부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방인임을 받아들일 뿐이다.
주인공은 이 때서야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고 말한다.
정다운 무관심. 그 얼마나 따뜻한 말인지 곱씹어 보게 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냉혹한 관심'으로 가득 차
오히려 하루하루가 눈치와 가식,
위선과 겉치레로 이어지지 않는가 말이다.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많은 구경꾼들의 증오의 함성이 한바탕 몰아치고 나면,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만이 그와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