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슨 - 5분 경청의 힘
버나드 페라리 지음, 장세현 옮김 / 걷는나무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하나. 사무실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민원을 해결해 달라며 말을 시작한 이 남자는
자기 동네 전봇대에 붙여진 불법 광고물에 대한 불만으로 얘기를 시작해
20분이 지나도록 말을 멈추지 않는다.
해결할 수 있는 부서에 연락을 하겠다고 했음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경위를 추측하는 것부터
이전에 겪었던 다른 민원 사례에 대한 얘기를 전부 쏟아낸다.
아...오늘 제대로 걸렸구나, 하며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수화기를 붙잡고 딴청을 부린다.
둘. 공식 행사에 가면 자리에 초청 받은 내빈들의 인사말 순서가 있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아무리 적은 규모의 행사라 할지라도 5명 정도는 인사말을 한다.
청자 입장에서는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준비해 온 사람들은 이 세상 최고의 연설인 냥 웅변한다.
가끔 객석 제일 뒤편에서 '그만 좀 해라' 하며
큰소리로 고함치는 사람을 목격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도
자기를 대변해 준 한 마디에 속이나마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
사람에게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이유는,
상대방의 말을 더 잘 듣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가 커져 가고 많은 사람들의 사고가 복잡해짐에 따라
우리는 잘 듣는 것보다 '최대한 표현하라'는 주장으로 더 집중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성과를 표현하려 한다.
모두가 함께 말을 해대니 어떤 것이 내가 하는 말이고
어떤 것이 남이 하는 말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다.
몇 년전부터는 SNS가 등장했다.
손가락 10개가 마구 올려대는 말들을
2개의 눈이 처리하기에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 책의 제목은 'Listen!'이다.
빨간 색 글씨로 또렷하게 적힌 표지를 마주했을 때
내 눈에는 이 말이 마치 'STOP!'으로 보였다.
말을 멈춰라! 일단 멈추고 상대의 얘기를 들어라! 관찰하라!
경청이란 능동적 듣기다. 경청의 원칙은 간단하다.
무언가 끼어들고 싶고 조언하고 싶어 근질거릴 때 침묵을 유지할 것,
뻔한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바꿀 'Killer Question'을 만들 것,
메모할 것, 세 가지다.
경청 = 침묵, 질문, 메모. 하나의 공식과도 같다. (SAM)

책은 명확하고 쉽다.
뒷부분에는 경청의 전략이라 할 수 있는 구획화 방법을 제시해 놓았는데,
매우 실용적으로 실전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구획화란 대화를 할 때 '비전'과 '계획',
'실행', '팀워크', '개성'이라는
가상의 서류함을 나누어 놓고,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그에 해당하는 질문들을 제시한다.
요약하면,
1) 비전 - 우리 혹은 회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비전이 일치하는가?
이 비전을 바탕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한가?
2) 계획 - 비전을 실현시킬 구체적 목표가 무엇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은 구체적인가?
실천 가능한 일정인가?
필요한 자산은 무엇이고, 그것을 확보할 수 있는가?
앞으로 맞닥뜨릴 리스크는 무엇인가?
3) 실행 - 의사 결정자는 누구인가?
적절한 순간에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는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유연성이 있는가?
4) 팀워크 -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조직의 비전과 개인의 사고방식이 잘 맞는가?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
선택받은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피할 수 없는 한계가 무엇인가?
팀워크를 해치지 않는가?
팀의 달성 목표는 무엇인가?
5) 개성 -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개인적 포부는 무엇인가?
그는 나에게 어떤 사람인가?
그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가?
즉, 경청의 이유가 삶의 도덕적 요소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얻으려고 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책이다.
서양적인 시각, 실용에 초점을 둔 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다시 앞에서 말한 상황으로 돌아가 본다.
자기 말만 늘어놓는 민원인이든, 저 혼자 잘난 명사든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어떤 캐릭터일까 혼자 분석해 보기도 하고,
진정 하려는 얘기의 의미는 무엇인지 되묻기도 하다 보면,
인내심도 생길 뿐더러 예상치 못한 데서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얻게 될 수도 있다.
불행히 그렇게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경청과 동시에 말하는 사람의 자세나 마음가짐,
인성이 동시에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