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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계를 스칠 때 - 정바비 산문집
정바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풍만한 자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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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 밥을 나누는 약자들의 생존술에서 배우다
우치다 타츠루 & 오카다 도시오 지음, 김경원 옮김 / 메멘토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 세기는 일반 대중이 '순응과 소외의 대상'으로 불리웠을망정
어쨌거나 풍요와 안정의 시대를 누리며 살아왔던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제
초고령화, 인간가치 하락에 따른 고용의 축소, 기력이 다해가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인터넷이 불러온 "상거래의 고속화", "무시간 모델의 사고방식"은
화페경제에 기반한 거의 모든 것들을 무너지게 하고 있다고 한다.
 
종래의 비즈니스 모델, 일정한 인생의 사회적 코스 등 그 어떤 것도 더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이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두 저자는 현실적인 생존의 대안으로
"증여경제"에 바탕을 둔 공동체의 실천을 얘기하고 있다.

 

지금의 기득권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자금, 기회, 정보, 기술 등을 무조건적으로 주어서
"지역 차원에서 공평함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 중에 하나는
"일자리를" 노력으로 "얻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져서 결과적으로 그것이 "능력" 보다는 "운"에 좌우되어 버리는 상황이 된다면 운이 좋게도 일자리를 얻는 사람이 다수의 객식구를 부양함으로써
"확장형 가족"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해가 될듯 말듯한 이야기지만
내가 운이 좋게도 돈을 번다는 이유 하나로
나와 혈연적, 지연적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먹여살려서 같이 살아가자는 이야기라면
바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혈연적, 지연적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지던 부양의 관계를
혈연과 지역 공동체가 와해된 지금의 상황에서
타인과 타인이 부양의 관계를 맺자는 것이라면
바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건 하나의 윤리적 차원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고서는 실현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또는 사람들의 욕망이 금욕의 차원으로 떨어진다면
그래서 장미 없이 빵만으로도 기꺼이 감사하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피터지게 돈 들이고 피터지게 바둥거려서 취업을 하고
그렇게 해서 번 나의 피 같은 돈으로 타인을 식구로서 부양하기.
 
이런 이야기가
요즘 열풍의 주인공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소득에 대한 강력한 세금과 일맥상통한 것이라면
강제적인 방법으로서의 증여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확실한 건
화려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이든 사람이든 모든 것들이.


역사적으로 고소비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나면 검약과 금욕의 시대가 도래해 왔다고 한다.

조건 없는 증여에 바탕을 둔 공동체도 아마 그런 검약과 금욕의 시대와 어울리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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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위의 여자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존 파울즈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가 믿는 그 자유의지라는 것도,
연인을 향한 그 빛나는 두근거림도 사실은 모두 다
자네속에 들어앉은 DNA의 농간이라네.

 

우린 모두 DNA의 숙주들일뿐이지.
세대와 세대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그 불멸의 유전자들 말일세.

 

자네의 그 특별하게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사실 호모사피엔스의 전형일뿐이야
우린 모두 특별날게 없는 그렇고 그런 존재들이지.
눈을 씻고 봐도 특별날게 없는 우리들이기에
우린 남 달라 보이려 그렇게 기를 쓰는지도 모르네.
때론 유행과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돈과 권력과 사회적 지위라는 이름으로 말일세.
하지만 알고보면 모두 우스꽝스러운 몸부림일 뿐이라네.

 

시간과 역사의 개념은 허구이며
우린 그냥 생존률 이상으로 태어나 경쟁하며 살다 사라지는 한 무리의 개체일뿐이야 .

 

* *
이 소설은 아무래도
존재의 심연을 로맨스로 까발린 진화심리극인 것 같다.


사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제목이 좀 고전틱해서
고리타분 하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제목에선 상상할 수 없는 주제와 이야기를
무지 자유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이었다.
(소설 중간에 아예 챕터 하나를 작가의 사회과학적 설명으로 채워넣는 소설은 처음 접한다.)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얼마전에 ebs에서 개체들의 무리생활을 다룬 자연다큐를 보여줬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다큐에서 보았던 개미떼가 자꾸 머리에 맴돌았다.

 

여왕개미를 위시한 그 거대한 개미떼가 살곳을 찾아 이동을 감행하는 모습.
멀리서 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의 몸부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게 되면 하나의 거대한 무리의 개미떼가 서로 집단지성을 이루며 생존해 나가는, 살고자, 살아 남고자 발버둥치는 그 모습.
어떻게 보면 신비롭고 어떻게 보면 너무나 처절해서 딱해보이고 마는 그런 모습.


왜 사랑이라는 순결하고 빛나는 두근거림이 언제나 한결같이 육체적인 결말로 이어지는지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정신은 고매하고 신비롭다.
단, 어디까지나 육체안에 있을 때에만.

 

 

***

그러나

이렇게 끝모를 존재에 대한 상념들은

아이 앞에선 그냥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아이들을 보라.
결국 섹스는 해볼만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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