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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 밥을 나누는 약자들의 생존술에서 배우다
우치다 타츠루 & 오카다 도시오 지음, 김경원 옮김 / 메멘토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 세기는 일반 대중이 '순응과 소외의 대상'으로 불리웠을망정
어쨌거나 풍요와 안정의 시대를 누리며 살아왔던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제
초고령화, 인간가치 하락에 따른 고용의 축소, 기력이 다해가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인터넷이 불러온 "상거래의 고속화", "무시간 모델의 사고방식"은
화페경제에 기반한 거의 모든 것들을 무너지게 하고 있다고 한다.
종래의 비즈니스 모델, 일정한 인생의 사회적 코스 등 그 어떤 것도 더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이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두 저자는 현실적인 생존의 대안으로
"증여경제"에 바탕을 둔 공동체의 실천을 얘기하고 있다.
지금의 기득권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자금, 기회, 정보, 기술 등을 무조건적으로 주어서
"지역 차원에서 공평함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 중에 하나는
"일자리를" 노력으로 "얻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져서 결과적으로 그것이 "능력" 보다는 "운"에 좌우되어 버리는 상황이 된다면 운이 좋게도 일자리를 얻는 사람이 다수의 객식구를 부양함으로써
"확장형 가족"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해가 될듯 말듯한 이야기지만
내가 운이 좋게도 돈을 번다는 이유 하나로
나와 혈연적, 지연적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먹여살려서 같이 살아가자는 이야기라면
바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혈연적, 지연적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지던 부양의 관계를
혈연과 지역 공동체가 와해된 지금의 상황에서
타인과 타인이 부양의 관계를 맺자는 것이라면
바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건 하나의 윤리적 차원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고서는 실현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또는 사람들의 욕망이 금욕의 차원으로 떨어진다면
그래서 장미 없이 빵만으로도 기꺼이 감사하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피터지게 돈 들이고 피터지게 바둥거려서 취업을 하고
그렇게 해서 번 나의 피 같은 돈으로 타인을 식구로서 부양하기.
이런 이야기가
요즘 열풍의 주인공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소득에 대한 강력한 세금과 일맥상통한 것이라면
강제적인 방법으로서의 증여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확실한 건
화려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이든 사람이든 모든 것들이.
역사적으로 고소비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나면 검약과 금욕의 시대가 도래해 왔다고 한다.
조건 없는 증여에 바탕을 둔 공동체도 아마 그런 검약과 금욕의 시대와 어울리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