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위의 여자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존 파울즈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가 믿는 그 자유의지라는 것도,
연인을 향한 그 빛나는 두근거림도 사실은 모두 다
자네속에 들어앉은 DNA의 농간이라네.

 

우린 모두 DNA의 숙주들일뿐이지.
세대와 세대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그 불멸의 유전자들 말일세.

 

자네의 그 특별하게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사실 호모사피엔스의 전형일뿐이야
우린 모두 특별날게 없는 그렇고 그런 존재들이지.
눈을 씻고 봐도 특별날게 없는 우리들이기에
우린 남 달라 보이려 그렇게 기를 쓰는지도 모르네.
때론 유행과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돈과 권력과 사회적 지위라는 이름으로 말일세.
하지만 알고보면 모두 우스꽝스러운 몸부림일 뿐이라네.

 

시간과 역사의 개념은 허구이며
우린 그냥 생존률 이상으로 태어나 경쟁하며 살다 사라지는 한 무리의 개체일뿐이야 .

 

* *
이 소설은 아무래도
존재의 심연을 로맨스로 까발린 진화심리극인 것 같다.


사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제목이 좀 고전틱해서
고리타분 하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제목에선 상상할 수 없는 주제와 이야기를
무지 자유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이었다.
(소설 중간에 아예 챕터 하나를 작가의 사회과학적 설명으로 채워넣는 소설은 처음 접한다.)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얼마전에 ebs에서 개체들의 무리생활을 다룬 자연다큐를 보여줬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다큐에서 보았던 개미떼가 자꾸 머리에 맴돌았다.

 

여왕개미를 위시한 그 거대한 개미떼가 살곳을 찾아 이동을 감행하는 모습.
멀리서 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의 몸부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게 되면 하나의 거대한 무리의 개미떼가 서로 집단지성을 이루며 생존해 나가는, 살고자, 살아 남고자 발버둥치는 그 모습.
어떻게 보면 신비롭고 어떻게 보면 너무나 처절해서 딱해보이고 마는 그런 모습.


왜 사랑이라는 순결하고 빛나는 두근거림이 언제나 한결같이 육체적인 결말로 이어지는지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정신은 고매하고 신비롭다.
단, 어디까지나 육체안에 있을 때에만.

 

 

***

그러나

이렇게 끝모를 존재에 대한 상념들은

아이 앞에선 그냥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아이들을 보라.
결국 섹스는 해볼만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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