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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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아 작가는 책 처음에 이야기 한다

 

'귀향'을 읽은 후 막연히 그 책의 작가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만나려면 그가 이끄는 알타이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알타이로 가야만하고
알타이로 가려는 이유는 귀향을 쓴 작가때문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까지 드는 이유는 좀 막연하다고.

 

책의 말미에 가면 좀 더 명확한 이유가 나오지 않을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하지만 책이 다 끝나도록
배수아 작가가 갈잔 치낙이라는 작가를 만나러
알타이를 배회하는 여정에 오르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나와있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그 이유라는 것이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게 되었고 이 책의 독자에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생각지도 않은 무모한듯한 여행길,
알타이로 가게 된건  순전히 그곳에 사는 갈잔 치낙이라는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서였지만
책 내내 작가가 이야기 하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갈잔 치낙 보다는
알타이와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 인간과 풍광이 그려내는 삶과 죽음의 이미지, 또는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어떤 무엇에 대해서, 또는 그것으로부터 느끼는 정서적 교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독한 독백일 수도 있겠다.

 

'귀향'이라는 책을 모르기 때문에
그 책의 무엇이 작가를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알타이가, 그 땅의 '정령'이
'귀향'이라는 책을 통해서, 갈잔 치낙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배수아 작가를 그 곳으로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하하....;

 

*
도심의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그곳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젊은이란 어떤 장소, 어떤 경우에도 생명의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생명의 반대편에 있는 것에 의해 충동되어 이곳으로 날아온 나는 그들에게서 냉담하게 시선을 돌렸다.'고 한다.

 

대신 그녀는 그 이후로 매일 만나게 되는
알타이의 '척박한 원시성'을 지닌 그 황량하고 외로운 풍광들
'수없이 많은 세월을 살아낸 늙은 암석과 허무한 시간의 자갈들, 그리고 차가운 흰빛의 커다란 뼈들로 이루어진 장소'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마치 비현실적이고 끝 모를 그곳의 모습은 때때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잊게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그렇게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 이후로 정말로 그렇게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작가는
'암석과 뼈, 돌과 먼지의 석회빛 풍경'이 빚어내는 죽음같은 음울한 시공간에서
하지만 오히려
'생의 어느 순간보다 더욱 많이 살아' 있음을 느꼈고
'얼마나 큰 선물인가,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준다.


어느 때인가는 그런 삭막한 풍경들도 가지고 있었을 생명의 '온기'는 옛날에 사그라지고
이제는 메마르고 차가운 모습으로 적막하게 그곳에 그냥 존재할뿐인 물질들.

 

배수아 작가가 이야기해주는 그곳의 모습들은
영혼이 증발해버린 물질이 지니는 차갑지만 순수한 무엇을 연상시킨다.
작가가 그곳에서 '기계'를 연상한 것처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태곳적 모습.
아마도 그것은 영혼이 존재하기 이전의 모습일 것이다.
순수한 물질의 모습.

언제고 때가 오면 모든 자아와 정념을 내려놓고 돌아가야할 모습.

 

그래서 작가는
그런 척박하고 황량한 곳에서 왠지모를 '자유롭지 못'한 '편안함'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돌의 어머니, 쇠의 아버지'라고 표현할 만큼.

 

시작과 끝의 모습으로 그저 조용히 존재할 뿐인 존재들.물질들.
그곳에선 영혼을 지닌 자들 조차도 조용히 존재한다.

 

*

사노 요코의 책에서 읽었다.
동물들은 고독을 견디는 강인하고도 적막한 눈을 지니고 있지만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은 고독한 눈을 잃었다고.
탐욕스럽게 번들거리는 눈이라고. 그것은 숙명적이라고.

 

숙명적인 자의식.
이곳의 도시는 자의식이 넘쳐난다.
영혼이 없는 사물 조차도 마치 자의식을 지닌것처럼 보일만큼
무특정 다수에게 보여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치장되어 진다.

 

그러나 우리는 소란스런 욕망의 기운이 아닌 죽음의 기운에서
오히려 여기 살아있음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고 한다.
근원적인 슬픔이긴 하지만
지금 이곳을 더욱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나는 누구인지 하는 상념에 빠지는 건 인간뿐이다.
결국엔 그런 자의식 마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힘을 잃을 것이지만
내가 지니는 영혼도, 삶의 기운도 희미해질 것이고 결국엔 사라질 것이지만
정신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한 물질이 남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의 결말적이고 본연적인 모습일 것이다.
차갑지만 순수한 물질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될 것이다.
서로 구분되지 못하는 허공 속 빛의 입자처럼
나라고 구분되어지는 모든 것들은 사라진 채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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