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책 속에서 사노 요코는 이야기 한다.

내 시대는 끝났다.
나도 끝났다... 라고.

 

나는 그녀를 상상해 본다.


전후의 너도나도 가난했던 시절
여자형제와 남자형제들 속에서 학교를 다니고 끼니를 떼우고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자라나는 어린아이에서
"가장 비참한 것 속에 익살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릴만큼
철이 들어가고 있는 그녀를 상상해 본다.


젊은 시절의 사노 요코를 상상해 본다.
도쿄로 상경한 젊은 아가씨였을 그녀.
옷은 초라하게 입었어도 어린 사람들만이 지니는 특유의 생기발랄함으로
도쿄의 도심을 경쾌하게 걷고 있는 그녀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지나 
침대에 누운채 발가락으로 커튼을 열어젖히며 시큰둥하게 하루를 맞이하는 그녀를 상상해 본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때를 해결하기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만들고 혼자서 먹고
가끔 이런저런 생각과 상념에 잠긴 그녀를 상상해 본다.

 

그녀를 상상해 본다.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욘사마에 빠져 티비앞에 붙어 있는 그녀를 상상해 본다.
봐도봐도 끝이 없는 한류드라마를 뒤로 한채
엄마가 계시는 요양원으로 향하는 복잡한 마음의 그녀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제
나를 상상해 본다.
노년의 나를 상상해 본다.
늙고 노쇠해지는 육체 속에 갖혀가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젊은 시절 젊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느낄 수 없는 것이지만
당연한 게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는 낯설은 시간들이 언젠가는 오게 되고
그럼에도 여전히
눈떠지는 아침을 맞이하며
일상을 하루를 살아내야만 하는 나를 상상해 본다.

 

분명 그것은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그녀처럼 홀가분하게 살아 내고 싶어진다.

 

젊음이 사라지고 그 번잡하고 소란스럽던 전성기를 살아낸 이에게 주어지는 시간.
육체도 마음도 더 이상 욕망과 번뇌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어지는 나이.
'존재의 가벼움'이 주는 그 홀가분함은 어떤 것일지 상상해 보고 싶어진다.

 

"세상이 싫다"고 "넌더리가 난다"고 이야기 하는 그녀.
"남자의 생식기쯤은 마음대로 쓰도록 내버려"둬도 될만큼 별볼일 없는 것 아니겠냐고
시큰둥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할머니.
그녀는 이승과 장수에 대한 구질한 미련이나 욕망이 없어 보인다.
그녀는 홀가분해 보인다.

 

기약 없는 일상에서
기약이 생긴 시간을 반기는 그녀.
더 이상 돌을 언덕 위로 굴릴 필요없는 해방과 자유의 시간을 기쁘게 기다리는 그녀.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시대는 끝났다.
그녀도 끝났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의 시대도 끝날 것이다.
나도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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