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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고유명사로 산다는 것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평점 :
생각의 반복은 유의미하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방대할 수록 좋은 직감이 나온다고 한다.
어느 순간 생각이 끊어지려면
끝임없는 생각의 경험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1)
무소유는 소유해본 이가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무위는 유위해 본 이가 말할 수 있는 것이겠죠.
자기 외부에 있는 공동의 가치와 기준을 배워야 하는 때가 있겠고
자기 내부에 있는 나만의 가치와 기준이 만들어 지는 때가 있겠죠.
더 이상 세상의 틀이 크게 필요없어지는 때가 오면
세상의 간섭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나'로 있을 수 있겠죠.
(2)
에너지 노예라는 책에 나오는 어떤 학자는 얘기한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 뻔해서 앞으로의 상황을 예견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그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자가 말하는 가치와 지향점은 좋은 것이지만
사람들 개개인들이 자기혁명적으로 갈고 닦을 수 있는 차원은 아닌 것 같다.
개인의 차원 보다는
개인들이 속한 어느 사회의 문화 내지는 그 문화적 수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영역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경박스럽지 않게
큰 틀에서 관조하고 관망하는 태도나 관점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인격에 스며들어야 이루어지고
그러한 문화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노자적 스타일은 유의미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카메라마사지와 비슷한 문화적마사지를 통해 가능한 세련됨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노자는 둘째치고
무언가 정성껏 고민하는 문화가 참 척박하다
(한 사회의 고민하는 힘 생각하는 힘의 바로미터는 디자인 인것 같다.
디자인이 발달한 나라는 정신의 문화가 발달한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주 하찮은 것 하나라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무언가를 직접 만들려면 이러저리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3)
"구체적인 실제"에서 "이념"이 나온다 했다.
지금 이곳의 구체적인 실제는 이렇다.
어쩌니저쩌니해도 '공동의 기준'을 따르는게 따르지 않는 것보단
인생을 덜 고달프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내가 사는 이곳은
서울에서 집값이 젤로 싸다는 대표적인 서민 동네이다.
이런 동네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노**** 표 껌정잠바를 커플룩으로 껴 입고
일요일 동네어귀를 어슬렁 거리며 배회하는 걸 보면
아직은 이렇게 사는 게 살만한 것이다.
공동의 가치와 기준을 충실히 따르는 삶이 주는 배부름
그것을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노자의 철학이 지향되는 사회가 되려면
그런 노자의 철학이 사람들의 일상에서 실천되어도 손해보지 않는다는
경험과 느낌이 쌓여야하지 않을까.
차면 넘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