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다 죽을 것을"

존경하는 老목사님께서 "참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이라며 설교 중에 하신 말씀이다. 

특히 예로 드신 분들 중에는 세상과 교계에 존경받았던 분들이라 더욱 의외였다.

평소 새벽예배, 설교 강대상에 당신의 모습이 보이시지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부르신 줄 알라 하셨는데 그 말씀을 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20대 신학생 시절에 들었으니 30년이 지났다.

다른 사람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 후회, 아쉬움이 없는 삶, 사랑과 일, 관계에 후회 없는 인생의 과정이고 싶었다.

또 그렇게 살았다. 물론 평가는 하나님의 몫이다. 착각이나 오판이라면 성령께서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기 바랄 뿐이다.

젊은 날 성서 잠언에 '정직함이 곧 지혜 자체' 라는 말씀을 일찍 알게 해 주셨다.

이제 남은 것은 각 개인의 종말이 다가오는데도 영원하지도 않은 것들을 붙잡고 아직도 몽롱한 상태에 있는 이들 속에, 

예수님을 맞을 그 날을 기다리며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그 시간이 어제보다 더 가까이 왔음을 또 다시 선포한다.

그 옛날 육신을 취하신 아기 예수님을 보고 당대의 최고 지식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던 것처럼.

Merry Christmas!!!


마태복음 210~11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Ἰδόντες δτν στέρα χάρησαν χαρν μεγάλην σφόδρα.

* καὶ ἐλθόντες ες τν οκίαν εδον τπαιδίον μετΜαρίας τς μητρς ατοῦ, 

καπεσόντες προσεκύνησαν ατῷ·

καὶ ἀνοίξαντες τος θησαυρος ατν προσήνεγκαν ατδρα,

χρυσν καλίβανον κασμύρναν.

 

And when they saw the star, they rejoiced exceedingly with great joy.

 

 

잠언 2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וְצָפַן לַיְשָׁרִים תּוּשִׁיָּה מָגֵן לְהֹלְכֵי תֹם


 

He stores up sound wisdom for the upright; [He is] a shield to those who walk in integ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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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예배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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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명한 승려가 강연을 하던 중, 회중 가운데서 한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하며 이렇게 물었다.

제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이 전도에 대해 너무 큰 부담을 주십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우선, 크리스천이 신앙의 문제를 승려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이 코믹하게 느껴져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승려의 대답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구약의 하나님은 율법적인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전도는 삶으로 하는 것이지, 구약의 하나님처럼 심판과 율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을 교회에서도 그대로 설교하는 목사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도, 성서도 잘못 알고 하는 말이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구약의 대표적 율법서인 레위기 1918절에서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구약 성서 전체에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잘 표현되어 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 승려가 하는 말을 듣자니 '에고~ 성서는 읽지 않고 누가 쓴 책을 생각 없이 그대로 옮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도는 삶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안다면 하나님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삶에 그 열매가 나타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착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한 것이지 전도를 위해 착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전도는 그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로서 전하지 않고 못 배기는 감정과 행동이다. 개인의 성격에 따라 부담을 가질 수 있으나 세상에 이 기쁨을 알리지 않으면 너무 안타까워 긍휼히 여기는 숙제 같은 것이다. 예수님도 모든 족속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 강연의 영상 아래 댓글을 보니 대중들이 탄복하며 교회 목사보다 낫다고 아우성이다. 목사 보다 나은지 때가 되면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이지만, 성서를 맘대로 해석하다니 그 자체를 버리는 것이 불교의 정신이다. 성서는 인류에게 계시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다. 세상 종말에 그 사랑이 육체를 취하시고 인류에게 오셨다.

이름 자체가 구원’(예수) 이신 분, 그분이 다윗의 동네에 오셨다.

성서의 계시가 성취된 것이다.

 

고린도전서 121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τι ν τσοφίτοθεο

οκ γνω κόσμος διτς σοφίας τν θεόν,

εδόκησεν θες διτς μωρίας τοκηρύγματος

σσαι τος πιστεύοντας.**

 

“For since in the wisdom of God the world through its wisdom did not know him,

God was pleased through the foolishness of what was preached

to save those who bel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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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bae 2025-12-2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황하는 이들에게
헤매는 이들에게
길을 묻는 이들에게
정확하게 헤매는 이들이 글쓴이의 시점에 맞음
 

작은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조카야? 사람이 죽어 봐야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알지"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독일의 한 소녀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국내에서 첫 편지를 보내자마자, 유럽인데도 예상과 달리 빠르게 답장이 도착했다.
편지지에는 작은 꽃이 붙어 있었고, 생일 전에 꼭 도착하면 좋겠다는 축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또 꼭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여 두 번째 편지에 동봉하여 보냈다.

1984년 그 해 겨울, 서독 뮌헨에서 가까운 켐프텐의 한 마을에서 날아 온 편지를 시작으로 우리는 그 이후 몇 년 동안 서로 서신을 주고 받았다.

그 때는 디지털 카메라도 없던 시절이라 두 번째 편지에 받은 그녀의 모습은 꽃밭에 앉아 있는 금발의 소녀였다. 

얼마 있지 않아 그녀는 스카프와 향수를 보내왔고 나는 한국의 전통 목각 인형과 흔한 일회용 인삼차를 몇 개 보내 주었는데 너무 좋아 했다.

그 옛날 인삼을 통해 고려를 해외에 알렸다는 국사책 내용이 그 때 기억 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소녀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받았다.

어느 날은 스위스와 그 근처 나라로 소풍 갔다 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일 년에 봄과 가을, 소풍 때가 돌아오면 학교에서 가까운 산으로 김밥 도시락을 싸 들고, 사이다 한 병이면 충분히 만족해 하던 80년대 우리네 삶과는 너무 달랐다. 크리스마스 절기와 관련된 아주 두꺼운 책도 보내 왔다. 생소하지만 독일 음식과 문화를 그 책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 방황하던 그 당시, 나는 더 이상 편지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마지막 편지를 보냈었는데 그녀는 너무 슬퍼하였다. '너를 잊을 수 없다' 며, '문제가 해결되면 꼭 다시 연락하라' 고....... '이해하고 화를 내지 않을 테지만,... 시간을 만들어 편지할 것,... 널 위해 손 모아 기도 하겠다' 고 편지를 보내 왔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 두꺼운 독일어 책에 아직도 그녀의 마지막 편지를 넣어 두고 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가고 있을 나이. 

그녀가 열일곱이던 해, 뒤늦게 태어난 동생과의 터울은 무려 열일곱 해였다. 세월이 흘러, 그 여동생 또한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터다.

그녀로 부터 많은 편지와 선물을 받았다. 

무엇보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어도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나는 아직 독일에 가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독일이 거기 있음을 안다.

천국도 마찬가지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살아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지 않는 자, 절대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보내신 편지가 있다.

성서다.

인류에게 계시한 성서,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책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그 말씀을 성취하시고 이루신다. 인격으로 다가 오신다.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다. 감각되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육성이 아닌데도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그 분이 나의 아버지, 나를 낳아 주신 아버지의 아버지 이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기 원한다.

농약에 염산까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마셔봐야 죽는지 사는지 알지’라고 하는 건 위험한 고집이다.

인류 역사에 여러 선지자들과 여러 방법으로 계시하신 하나님이 세상 종말에 예수님을 통해 계시 하셨다.


(히브리서 1장 1절~2절) 

1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여러 번 여러 방법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러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한 이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Πολυμερς καπολυτρόπως πάλαι θες λαλήσας τος πατράσιν ν τος προφήταις,

πʼ σχάτου τν μερν τούτων λάλησεν μν ν υἱῷ, ν θηκεν κληρονόμον πάντωνδιʼ οκαὶ ἐποίησεν τος αἰῶνας·

 

1 Long ago, at many times and in many ways, God spoke to our fathers by the prophets,

2 but in these last days he has spoken to us by his Son,

whom he appointed the heir of all things, through whom also he create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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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주인처럼 살지만 마지막은 죽음의 종이 된다.

죽음이 두려워 평생을 종 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하고자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육체를 취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다.!!! 

인류를 진리로 자유케 하려고 오신 하나님. 

예언대로 다윗의 동네에 오셨다.!!! 예수, 그 이름 뜻은 '구원' 이다.

(히브리서 2장 14,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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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는 구분될 뿐, 통합적이다.

영원한 존재에게 미래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경험되는 세계다.

이 땅은 인류에게 계시한 구원자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 또는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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