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시험 보신 하나님의 영(성령)


1991년. 신학교를 가려면 먼저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부산 3영도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교회에서 세례를 받기 전 성경을 한 번 꼭 읽어야한다고 했지만, 교회 나온 지 일년도 되지 않아 영 부담스러웠다.

신약은 여러 차례 정독하였지만 구약성경을 포함한 전체 통독은 너무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고어체라 무슨 말인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례를 받기 전에 통독을 한 번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서울 어디에서 5일 동안 성경 전체를 읽는다는 한 선교 단체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마침,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어 시간이 되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집회장소를 찾아 갔다.

개회 예배를 드리고 성경 창세기 1장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성경 66권 각 성경에 대한 개요의 언급 외에 본문을 읽는 동안 설명도 없었다.

구약 성경을 읽는 며칠 동안 이해도 되지 않는데, 내리 읽기만 하니 답답한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너무 지쳤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피곤하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읽기만 하니 너무 힘들고 답답했지만, 다시 읽으려고 시도하기를 여러 차례, 낭독하시는 분이 예레미야 31장을 읽어가던 도중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 왜 이러지?  읽는 내용도 모르는데 눈물이 왜 나는 거지?’

(이후 성령님의 눈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 선교사님의 어린 아들과 어머니를 고향 방문차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또 흘렀는데, 그 사건이 있은 후 며칠 뒤에 두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어 몸의 감각이라 할 수 없는·······, 또 다른 감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그 말씀을 듣고 읽는 가운데 가슴에서 신비한 뜨거움이 느껴졌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성령님이 계신다고 하더니만 말씀을 읽는 도중에 그걸 확인시켜 주시는 거구나!’

그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집회를 시작하였다.

성경을 읽기 전에 사회자가 “혹시 말씀을 읽다 은혜 받은 것이 있으면, 대중 앞에서 말해도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어떤 분은 성경을 읽으려고 애쓰다보니 계속 안경을 바꿔가며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순간에 안경을 쓰지 않고 글자가 크게 보여 안경을 벗고 성경을 읽는다고 하였다.

너무 놀랍고 그 말을 듣고서도 믿을 수 없었다.

또 집회에 참석한 어떤 여선생님은 여자에게만 있는 병이 자기에게 있는데, 성경을 너무 읽고 싶어 집회에 참석했다가 그 병이 다 나았다는 말을 하였다.

더군다나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연세가 지극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성경 말씀을 사모하다 이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예레미야 31장을 읽던 중 가슴 속에 불같은 기운을 느꼈다는 것이다.

‘너무도 정확히 나와 똑같은 일을 할아버지도 그 순간 똑같이 느꼈다니!’

‘아! 성령님이 동시에 임하셨구나!’

신약성경의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 용서함을 받는다.”고 말씀을 전하자 그 말씀을 듣던 고넬료와 그 함께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성경 내용이 기억났다.

‘아! 바로 그 성령님이 말씀을 듣던 저 할아버지와 나에게 동시에 임하셨구나!’ 라는 확신이 밀려왔다.

나도 저 할아버지와 동일한 체험을 했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다시 성경을 읽는 상황이라 그럴 수 없었다.


집회에 다녀온 이후, ‘성경이 단순한 책이 아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니 정말 소중하게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으니, ‘누군들 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보고 들을 수 있단 말인가!’

특별한 선물이요, 특권이라 여겨졌다.


돌아와 계속해서 말씀을 읽고 외우고 다녔다.

그 즈음 검정고시를 준비해야 했다.

4월 시험은 주일이라 피했고, 평일에 보는 8월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3~4 개월 남았는데 평균 60점만 되면 합격선이니 별 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당시에는 과목별 과락이 적용되었기에 40점을 넘기지 못하면 아무리 평균이 높아도, 전체 합격이 되지 못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이 주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과목은 문제없는데 수학이 골칫거리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 선생님이 여선생님이라, 할 수 없이 창피해서 벼락치기로 공부하여 중간고사 문제를 푼 기억 외에, 수학에 흥미를 느낀 적이 없다.

그나마 그 선생님이 전근 가시자 별 재미도 없던 수학, 아예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풀면 풀리는데 그걸 왜 붙잡고 있어야하는지, 답답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 여겨 늘 달갑지 않던 차였다.

1년 가까이 돈 한 푼 내지 않고, 장학금으로 부산 연산로터리 근처의 학원(영광고시학원)을 다녔지만, 몇 년이 지났고 여전히 흥미가 없는 과목이었다. 

거기다 그 즈음 하나님만 아시는 심적 고통이 찾아왔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시작된 정신적 고통은 다 사람이 원인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몇 달을 허비하다, 마음을 가다듬어 보려했으나 시험 준비를 전혀 할 수 없었고, 억지로 책을 폈으나 무기력하게 지쳐버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했다.

시험 당일.

서면의 한 중학교.

전혀 시험 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43장 말씀을 통해 “내가 너와 반드시 함께 할 것이며 물 가운데로 지나가더라도 엄몰치 못하며 불 가운데로 네가 지날지라도 태우지 못할 것이라. “는 말씀을 상기시키셨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어, ‘그래 수학만 과락을 넘기면 다른 과목쯤이야 해 볼만하지‘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런데 실력과 의지는 구분됨을 이후 절감했다.


수학 시험지를 받았다.

첫 번째 문항을 풀어나가다 막히자, 스스로도 ‘그럼 그렇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거야.’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두 번째 문항을 풀기 시작했다.

역시 막혔다. 깜깜했다.

세 번째 문항은 아예 무슨 뜻인지?·······.

다른 문제를 훑어보다 적당히 풀릴 것 같은 문제를 붙잡고 매달렸다.

눈물이 흘렀다.

‘자식이 신학대학교 간다고 아버지 어머니는 철석같이 믿고 계시는데, 하나님. 하나~

니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수학적으로 불합격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었다.

‘아~ 이제 끝이구나!·······.’

비참했다.

하지만 그 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면 혹시라도·······.’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뚱딴지같지만 수험표 뒤에 적당히 찍은 답안을 메모하였다.

울면서·······.

시험장을 어떻게 걸어 나왔는지 그 날의 답답한 무게는 아직도 느껴진다.


으레 검정고시를 치루고 나면 학원마다 문제지와 모범 답안을 게시판에 공고한다.

시험을 본지 3일 뒤, 집에서 가까운 검정고시 학원에 갔다.

1991년 8월 대입검정고시 문제와 정답을 게시하였다.

한 문제라도 제대로 풀어 답을 적어내지 못했던 터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너무 떨렸다.

‘혹시라도 합격할 수 있다면·······.’

너무 염치없는 기대이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수학 문제 1번답을 확인했다.

맞았다. “우 와~” 하나라도 맞추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 처음부터 풀린 날이 있었던가!’

2번 문제의 답과 수험표에 적어 두었던 답과 대조해 보았다.

‘이럴 수가!’

또 맞았다. 심장에서 엄청난 힘이 목으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즉시로 3번답을 확인했다.

동일한 답이었다.

온몸이 마비되는 듯 했다.

‘이러다가 혹시 합격되는 것 아닌가!’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엄청난 무게가 함께 하는 것 같았다.

4번답을 살펴보았다.

정답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다 맞아버리는 것 아닌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감싸는 듯 했다.

5번도 맞고,

6번도,

7번 맞고,

8번도 정확하게 수험표 뒤에 메모했던 답과 문제지의 답은 일치했다.

(수학은 총 20문항이고 8개만 맞추면 40점 과락을 면하는 것이다!)

일이 이 정도 되니 9번은 혹시 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9번은 메모와 일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9번 문제 이후 ‘적당히 몇 개 맞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대강 훑어보았는데, 역시 대충 몇 개 더 맞았다.

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1991년 8월에 실시된 대한민국 대입검정고시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대리시험을 본 것이다.


이 사건의 사실 유무와 진위는 1991년 8월 부산시교육위원회에서 시골집으로 통지한 성적표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초록색 통지문은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다.



 * 하나님의 섭리에는 일반섭리와 특별섭리가 있다. 

 준비 없이 어떤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것은 그릇된 욕망이고 맹신이다. 일반섭리는 과학적이며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 다만 인간이 그 과학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 한계다.

 특별섭리는 일반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일이다. 기적이나 특별한 능력 등을 말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은 인간의 사정과 관계없이 반드시 성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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