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나에 대하여
하나님의 프로젝트 수업1 ‘죽음’(전봇대에 기댄 사람들)
내 나이 열 살이었을 때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
장사지내는 동안에 내가 생각했던 것은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과 아픔이 아니라, 평소에 먹고 싶어도 잘 먹을 수 없었던 고춧가루가 많이 섞인 김치가 너무 달다는 것이었다.
그 즈음부터 나의 생활의 주제는 모순 된 자아에 대한 관심과 죽음을 알기 위한 본능적인 지식추구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너는 돈이 안 되니 가까운 학교나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밀양 시내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도 어머니 무덤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죽음 저 편에 대한 관심과 삶의 이유를 찾는 젊은 날의 반사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꿈에 취한 생활 가운데, 나는 얼마나 난감해하고 분노와 절망을 했는지 모른다.
오로지 명문대학 진학이 목적인 학교 분위기.
어떻게 전인교육이라는 구호 아래서, 막연히 인생의 성공이란 목표를 내세우며 덜 자란 아이에게 지식 나부랭이를 강요할 수 있는지·······.
아직도 자라고 있기에 내게 있어 학교는 족쇄로서 기능만 다할 뿐이었다.
이 때에 내가 만난 사람이 까뮈와 쇼펜하우어였고 그들이 나를 용기 있게 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매일 읽고 묵상했다. 하루에도 글을 읽지 않고는 속이 허했다.
그리고 하루에 한 줄의 글도 읽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증오했다.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기에 서로가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이후 내가 내린 결정은 출가하는 것이었다.
미룰 것도 없었다. 많이도 돌아 다녔다.
나중에 알게 되었던 사실은 그 시기에 한창 신비주의 관련 책을 많이 접했다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 명상, 마인드 콘트롤, 단,·······.
그런데 어느 날 심경의 변화로 모두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다.
싯다르타의 삶과 나의 인생 걸음은 닮은 점이 많다.
공통점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 가셨다는 것과 그 일로 인해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며, 차이점은 그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행했다면, 나는 돌아다니며 현대감각에 맞게 전봇대 아래서 참선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수행의 이유로 5년 동안 목욕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모 작가 같은 사람이 그 길을 걸었지만 동경은 할지언정 그 짓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아니 그 당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
몸서리를 쳤다. 왜 사는가?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과연 살 이유가 있는가? 웃기는 인간들.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슴 벅찬 이유도 없이 멍하니 살아가고 살아야 하는 한심한 사람들.
그 무리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분노케 했다.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숨 막히는 이성이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3년이나 다녔지만 더 다닐 이유가 없었기에.
당시 담임선생님은 사모님과 함께 “그래도 졸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하시며, 먼 거리에서 달려와 어떻게든 설득하려 매달리셨지만, 오히려 나는 단호했다.
자퇴서류를 교무실에 제출하고 학교 운동장을 걸어 나올 때, 의도적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시는 이런 식의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적 장애아가 험난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특수학교에서 훈련하는 구슬 꿰기처럼 매일 반복되는 획일적인 생활·······, 기계처럼 돌아가는 인간초침·······.'
분명히 내가 선택했지만,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돌아설 수 있었다.
공부가 목적이었다면 처음부터 입시 학원에 갔지 이곳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의 심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