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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현실에서 사람들의 삶은 소설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파란만장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여기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신 대니얼 고틀립 할아버지가 있다. 이 분은 학창 시절부터 학습장애로 대학을 두 번이나 옮겼으며 졸업 후 커리어를 쌓는 것도 잠시, 1979년 33살이 되던 해에 결혼 10주년을 기념하는 날 자동차 사고로 별안간 전신마비가 되고 만다. 이런 끔찍한 대사고를 당한다면 심정이 어떨지, 쉽게 상상할 수조차 없는데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 둘 큰병에 걸리고 그들과 함께 씻을 수 없는 상처을 겪고 정신적 · 육체적인 죽음까지 체험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어릴 적부터 암과 싸우는 어머니와 전신마비인 아버지 그리고 두 분 사이의 불화를 보고 자란 딸 데비가 낳은 아들이 '전반적 발달장애(PDD)', 즉 자폐증의 일종이라는 진단명을 받은 것은 이 책을 쓰게 하는 계기가 되어 약 4년 동안 32통의 편지글을 쓴다.


오랜 기간, 수많은 아픔을 겪고-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닭꼬치구이를 생각해보자. 닭을 잘게 조각내서 꼬치에 찔러넣고 뜨거운 돌판에서 구울 때 양념장을 마구 덧칠해야 제 맛이 나는 것처럼 대니얼 고틀립 할아버지가 새로운 양념장 옷을 입고 기름기는 똑똑 떨어내고 깨달은 삶의 지혜가 듬뿍 담긴 책이라서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단지 여느 인생안내서와 다른 점이라면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하면서도 어쩌면 우리 모두일지도 모르는 '자폐(마음을 닫아걸고 타자와 교감을 하지 않는 마음의 이상 : 마음의 발달장애)'아 손자를 향한 따스한 관심이 보편적인 인간애로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간혹 자기자랑이나 인생회고록 같은 곁가지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할 혹은 알아야 할 것들 - 내가 태어나던 날, 부모님의 삶 들여다보기, 고통이나 고난을 받아들이는 법, 괴롭히는 친구를 상대하는 법, 부모(자식)가 자식(부모)을 보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 내면여행을 떠나는 법, 성이 주는 쾌락 뒤에 감춰진 진짜 갈망의 이유, 버려도 좋을 생각들 등을 적절한 사례를 들어 말씀해주신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이 시시한 소설보다 더 극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때는 어쭙잖게도 어지간한 소설은 시시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불만과 짜증을 들어주지 못하는 날도 늘어만 갔다. 그만큼 나는 '내 생각'에만 몰두해 가면서 마음의 문이 얼마나 좁아지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꼭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생각을 열심히 주워 모아 자신의 생각의 부피를 크게 부풀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인생에 통달한 것처럼 보여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그냥 생각덩어리일 뿐. 대니얼 고틀립 할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사람의 마음은 '고장난 콩팥'이다!...콩밭은 혈액 중에서 영양분을 걸러내고 극히 일부분만 노폐물로 배출하는 반면, 우리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의 생각 중에서 적어도 구십 퍼센트는 마음 밖으로 배출해야 할 영양가 없는 것들이다. 우리의 자아는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일일이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안다." (192~173쪽)

 
책을 많이 읽고 고난을 많이 겪는데도 그것들을 통해 뭔가 배우지 못하고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고 베풀지 못하고 매순간 근심걱정이신 분이라면 꼭 대니얼 고틀립 할아버지를 만나서 다른 사람과 사랑하면서 사는 지혜의 샘물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기를.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 그게 진정한 성공이다. 그게 성인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이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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