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 막심 빌러의 짧은 이야기
막심 빌러 지음, 허수경 옮김 / 학고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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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자주 끝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어쩌면 시작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엘다드가 스스로 알아서 "노"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노"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뭐라고 하건 간에 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날이면 그녀는 완전히 딴소리를 해대었기 때문이었다. (101쪽)

사람은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이런 의미 없는 것까지 생각하는 게 사람인 법이다. 말하는 지렁이, 붉은 대양, 먹을 수 있는 전화기 따위도 생각해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샤이히 야신과 한 침대에 누워 있다면 어떨까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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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만 보고 이 책을 선뜻 집어들었다. 사랑하기란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그 와중에도 뭔가 사랑스러운 내용이 담겨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웬... 우리와 문화가 많이 다른 독일 작가의 글하며 막심 빌러라는 작가는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난 유대인 세대라고 한다. 그래서 독일식(?)의 간단명료하면서도 짧게 짧게 끊어지는 문장구성은 차라리 읽기 수월했지만, 지역과 유대인에 관련된 용어가 꽤 자주 나오면 일일이 위첨자에 설명을 곁들어 주어서 읽기를 방해하기도 했다.  
 
이 책은 표지를 보면 알겠지만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둘러싸고 벌이는 야릇한 상상을 하게 되며 책내용도 대략 그런 식이다. 타인의 체취, 몸짓, 표정을 섬세하게 묘사하였으며 연인이 떠나간 뒤에 느끼는 어둡고 우울한 듯한 분위기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이왕이면 결혼을 한 사람이나 연애경험이 풍부한 연인들이 읽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공감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의 장편소설 중에서 <에스라Esra>가 출간 즉시 "사생활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하여 그의 여자친구와 어머니가 고소를 하는 바람에 판매금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 이 책을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혀로 집게손가락에 침을 묻히다가 거의 토할 뻔했다. 손가락에서 나는 냄새는 물 냄새와 비누 냄새가 아니었다. 아직도 그의 똥구멍 냄새가 났다.(195쪽)


책내용 중에서 위의 대목은 내게 참 충격적이었다. 이런 걸 보고 시니컬한 표현이라고 하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별 것 아니라는 듯, 사랑 따위 잘 모르겠다는 둥,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처럼... 막심 빌러는 그렇게 소설을 가지고 논다. 이것이 막심 빌러의 재주라고 해야할까보다. 덕분에 나는 옛사랑을 잠시 추억해 보았다. 특히 그의 특이한 버릇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그게 꼭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어쨌든 사랑은 추억 속에서 여전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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