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책 - 착하다_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마땅히 지불해야 할 대가로서의 삶의 태도
원재훈 지음 / 바다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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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늦은 나이에 더러운 사회물을 상당히 마신 것 같다. '마신 것 같다'며 뒤끝을 흐린 이유는 각종 매체에서 널리 알리지 못해 안달하는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들까지 내가 겪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내게 접근해 온 사회물을 흐리기로 작정한 듯한 교활한 여우와 늙고 눈먼 늑대는 내가 착함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눈을 반짝이며 먹이획득의 승부욕을 만끽했다. 특히 교활한 여우는 세상에 그런 능청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기같이 포동포동한 볼을 가만히 실룩거리며 나를 포함한 여럿을 상냥한 말로 구슬렸다. 그러고 보면 흔히 사람들은 착할 것 같은 사람을 대하면 아직 뭘 모른다는 눈빛으로 측은해 하며 더 살아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기도 한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들이 주문하는 것은 더러운 일을 더 겪어보고 단단해지라는 말인 것도 같다. 그렇다면, 착하다는 것은 물렁하다는 의미도 될까?


착하다
  ·① (마음씨나 행동이) 바르고 어질다. 선(善)하다.   ② 마음씨가 몹시 곱다.  - 사전에서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마땅히 지불해야 할 대가로서의 삶의 태도  - 이 책 앞표지에서

여는 글에서 저자는 일반적으로 '나쁘다'고 일컫게 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49퍼센트쯤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신 착한 사람들이 51퍼센트쯤 차지하고 있어 그런대로 이 세상이 유지되고 돌아가는 것이라며. 저자 역시 친구를 통해서든 직접 경험을 통해서든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마음이 자주 흔들린다고 했다. 그럼에도,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말씀하셨던 "세상에 착한 끝은 있다"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단다. 나 역시 교활한 여우와 늙고 눈먼 늑대를 만나 많이 속상했지만 내심으로라도 착한 끝을 믿지 않았다면 이런 책은 손도 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착한 책이다. 1988년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작가 원재훈님이 이런저런 착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왠지 평화로운 마을에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양지바른 곳에서 읽어줘야 할 것만 같다.  

"여권 발급이 제법 까다로운 미국도 1918년까지는 여권 없이 외국인의 출입을 허가했다고 한다. 여권이 필요 없는 나라들이 점점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건 세상이 그만큼 평화로워졌다는 믿음일 테니까." -87쪽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하기보다는, 창문을 열어놓은 채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조용히 기다리는 쪽을 택하고 싶다." -43쪽


굳이 빨리 읽을 필요도 없고 자기계발서를 대할 때처럼 놀라운 비법을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착하다는 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만가만 행복한 순간을 음미할 줄 아는 것. 작고 소소한 것에도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마음속에 착한 씨앗이 심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밝고 믿을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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