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홍신 세계문학 9
앙드레 말로 지음, 박종학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휴가에는 고전이라고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집었다가 너무 두꺼워서 놓았고, 대신 읽은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1920년대 중국 1차 국공합작 이후 국민당과 공산주의자 사이의 갈등 상황이 이야기 배경이다. 처음 이 책을 살 때는 <아리랑>이나 <중국의 붉은 별> 처럼 중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특정 인물의 전기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시기적으로는 1927년 국민당 북벌 진군 중 며칠간의 짧은 시기가 배경이며, 인물도 한 명의 중심인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과 죽음의 방식을 지향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시대적 상황은 매우 거창한데 글의 분위기는 현대적 느낌이 있다. 시대적 배경 속에서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강조하거나 선전하지 않고 그저 배경으로만 두면서, 본격적인 관심과 주제는 ‘고독‘, ‘실존‘에 대한 인물의 내적 갈등에 할애하기 때문이다. 장제스 암살에 나선 공산당원 첸, 장제스의 공산당 탄압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국민당에 무기를 내주고 협조하라는 코민테른의 지시에도 반발하는 공산당원 기요, 그 외 주변 인물들도 저마다 다른 조건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번뇌한다. 이 중심 인물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엇갈리는 태도가 주제다. 전쟁에 무참하게 썰려 나가는 인간과, 그런 상황에서 죽음 이후에도 삶을 이어가려는 인간의 몸부림.

장제스 암살을 고민하던 첸이 지조르 선생(기요 아버지)을 찾아간 대목. ˝전 곧 죽게 될 겁니다.˝
... ˝자네가 그 숙명과 함께 살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즉, 그 숙명을 남에게 전해 주는 거야.˝

프랑스 작품 답지 않게 단문으로 가독성이 좋다. 특히 인물 심리 묘사가 세련돼서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더하는 듯하다. 지조르가 아편을 피울 때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순간의 묘사 등 상황과 분위기, 심리를 묘사하는 책의 여러 대목이 마치 상황을 농밀하게 보여주는 듯해서 마치 양조위 <화양연화>의 슬로우모션과 같은 느낌이었다.

찾아보니 앙드레 말로는 본인이 중국 국민당에서도 활동하다가 장제스의 공산당 탄압으로 국민당과는 손절했다고 하는데,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인간의 조건>에는 국민당에 맞서면서도 코민테른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본토 공산당 활동가들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다.

앙드레 말로가 사르트르보다 앞선 세대라 실존주의자라고 분류하는지 모르겠으나, 전시 혹은 전후라는 배경이라 그런지 실존주의적 색채가 짙게 느껴졌다. 그 시절의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하다보니, 지금 시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아마도 지금의 시대정신은 페미니즘과..용어는 몰라도 환경 재난과 관련한 것일듯 하다.)

덧, 앙드레 말로, 님 웨일즈, 에드가 스노우는 30대에 <인간의 조건>, <아리랑>, <중국의 붉은 별>을 썼다. 나도 30대인데..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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