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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 베이징에서 마주친 젊은 저항자들
홍명교 지음 / 빨간소금 / 2021년 8월
평점 :
싼허다션과 마르크스, 한국 활동가가 만난 진짜 중국
홍명교 저,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중국에 두 차례, 총 두 달 가까이 지내본 경험은 새롭고 값어치 있는 일이었다. 한국에 살면서 미디어를 통해 접한 중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에게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기질이 있는데, 호탕하고 배포가 큰 모습. 감정이나 의견을 드러내는 걸 꺼리지 않는 모습은 반도 사람으로선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당연히 세풍에 삭아 약삭빠른 사람도 있었지만, 가는 곳곳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 무구한 호의를 받곤 했다.
중국인에 대한 호감을 가진 뒤, 중국과 연관된 보도나 이슈를 접하면 한층 더 고민하게 됐다. 중국과 관련한 이슈를 보도할 때 한국 주요 언론은 극단적이고 전형적인 논조 차이를 보인다. 어느 한쪽은 중국 혐오를 바탕으로 보도하면서 더 나아가서는 중국 혐오 정서를 활용해 정치 혹은 외교를 압박하는 당파적인 논조를 보였고, 어느 한 쪽은 그저 중국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듯했다. 중국 혐오는 한국의 당파적으로 양분된 언론 지형에 먹잇감으로 활용됐고, 그래서 미디어에서는 내가 접한 실제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에 살아가기 때문에 실제 중국을 이해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당리당략적으로, 혹은 외교적 실리를 찾자는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드로 인한 한중 갈등에서 누가 피해를 보고 누가 이득을 봤는지 살펴보면 명확하다. 사드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군수 산업체는 매출 증가와 주가 상승으로 돈 잔치를 벌였고, 갈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숱한 소상공인들과 지역 주민에게 넘겨졌다. 우리 삶과 연관된 문제를 정치나 언론이 제멋대로 좌우하는 배경에 중국 혐오가 있다.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일갈등 등에도 적용되는 문제며, 그래서 혐오를 걷어내고 문제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진짜 중국의 모습을 보려면 중국에 가보는 것이 좋지만, 코로나로 여의치 않기 때문에 추천할만한 책이 있다. 홍명교 작가가 쓴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2021, 빨간소금 출판사)에는 진짜 중국의 모습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중국인들은 싼허다션(선전시 룽화구 싼허에 거주하는 중국 청년 노동자를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부터 농민공, 권위주의 중국에 저항하는 중국 활동가까지 다양하다.
싼허다션은 현대 중국의 실체를 보여주는 이들이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아래, 강력하고 반인권적인 당정의 통치 아래 희망 없이 자조하는 이들로, 나도 배회하는 싼허다션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중국을 처음 방문했던 2011년 선전시를 잠깐 경유할 때였다. 내게 선전은 환락과 야근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베이징에서 기차로 이틀에 거쳐 남하하고 숙소 잡기 바빴지만, 길을 가며 만난 사람들은 퇴근길 노점상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청년을 많이 만났고 그들은 일을 마친 노동자이거나, 피로한 가운데 틈을 내 청춘을 소모하는 청년들이었다. 기차에서 말을 튼 자오민도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잠시 선전에 온 차였다.
그즈음, 선전 한 공장에서는 연속적인 죽음이 있었다는 걸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를 보고 알았다. 2010년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공장에서 몸을 던진 청년노동자 마샹첸(馬向前)을 시작으로 수십 명 이상이 이 공장에서 스스로 죽었다. 청년 노동자 쉬리즈(許立志)도 그들 중 하나다. 그는 2014년 9월 30일 폭스콘 공장에서 몸을 던졌다. 사방이 가로막힌듯한 절망 속에서 쉬리즈가 투신하기 전,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시를 남겼다.
몇 해 전 그는/배낭 멘 채/이곳을 밟았다/이 번화한 도시를//의기양양하게//
몇 해 뒤 그는/자신의 유골을 움켜쥐었다/이 도시의/네거리에 서서//
(‘망연히 사방을 둘러보다‘ 中,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발췌)
폭스콘을 포함해, 선전 지역 노동 현장은 중국 청년 노동자에게 가혹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을 제공했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야 할 중국 노조(공회)는 단체행동권조차 없는 조직이며, 사실상 소위 ‘기업 공회‘로써 위기관리를 위한 조직에 불과했다. 2010년도에 불거진 연쇄 죽음 이후 세계적 관심이 모이자 폭스콘 공장을 운영하는 홍하이정밀공업은 약간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하는 것으로 위기를 관리했다. 이는 인근 다른 공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되는 방식이었다.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중국 청년 노동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 절정이 작가가 중국에 거주하던 2018년도에 벌어진 자스커지 투쟁이다.
자스커지 투쟁이 주목되는 점은, 투쟁의 주역이 중국의 80~90년대생(바링허우(80後), 지우링허우(90後))이란 점이다. 이들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좌절을 겪어보지 못한 중국의 신노동자로서, 대체로 ‘싼허다션‘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을 옥죄는 중국 사회에서 저항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이념적으로 공산주의를 내세우는 곳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자스커지 투쟁에는 선전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생운동가들도 함께했는데, 그들은 마오주의자였고,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들은 노동자와 연대 활동을 할 때도 인민해방군 노래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급진적으로 투쟁했는데, 공안은 그들을 잡아가 감금, 고문하며 강하게 탄압했다. 마오쩌둥이 세상에 없는 중국에서 마오주의자의 입이 틀어막힌다. 바로 그 외침이 중국 공산당의 역린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학생운동단체는 한 줌이며 그들의 외침은 사회에 전혀 타격감이 없는데(예를 들어 윤석열 지지 선언이라든가)이와 중공의 트라우마적 반응을 비교해보면 바로 중국 사회 변화의 시작이 노동운동-학생운동에 있다고 보이게 된다.
학생운동가, 노동운동가가 공안 탄압에 하나둘 사라져가는 걸 보며, 그들과 깊이 교류했던 작가는 펜을 들었다. 그 결과물이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이다. 이 책에는 자스커지 투쟁을 비롯해 중국 농민공 문제, 농촌 사회와 학생운동가의 모습이 역사적 배경과 함께 설명된다. 작가 또한 한국에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매진했던 활동가이기 때문에, 작가가 회상하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황과 중국의 상황이 대비되는 부분에서는 한국의 현재와 한국 사회운동이 나아갈 길마저 볼 수 있다.
중국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중국의 붉은 별」 이라든가 「아리랑」을 재밌게 읽었다면 이 책 또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내용적으로도 중국 현대의, 바로 지금의 첨예하고 심각한 사회적 모순에 대해 직접 보고 겪은 바를 쓰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붉은 별」을 중국 근대 르포라고 한다면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는 그에 견주어 중국 현대 르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작가가 영화감독이기도 하기 때문에, 글도 잘 짜인 시나리오 보듯 막힘없다.
이 책의 백미는 ‘국제연대‘ 활동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부분이다. 문제를 분석하기만 할 것이면 차라리 논문을 읽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노동운동의 깊은 경험이 있는 활동가만이 제시할 수 있는 대목이 있고, 그것이 바로 ‘국제연대‘다. 자본과 기업은 이미 충분히 국제적인데(대구의 경우 한국게이츠 대량해고, 흑자폐업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은 국가 안에, 기업 안에 갇혀 있다. 국가 또한 코시국에도 기업의 국제적 자유화를 위한 논의(CPTPP)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를 도모하는 것은 거의 유일한 대항 방법으로 보인다. 작가는 책에서 두 가지 구상을 하는데, 하나는 동아시아 다크투어 무크지 만들기,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국제연대센터 만들기이다. 작가가 현재 활동하는 단체인 플랫폼C(platformc.kr)이 그 구상의 한 과정으로 보이는데, 여기에서도 지금 동아시아 사회운동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다. 나 또한 이주민과 그 문화에 관심이 있기에 계속 참고하려 한다.
결어: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진짜 중국 이야기를 보려면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를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