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위의 삶 -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실에서 마주한 죽음과 희망의 간극
라훌 잔디얼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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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 사랑하는 사람의 뇌를 본 적이 있다. 교통사고 전담병원 응급실 침대에 놓인 그녀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이마위에서부터 위쪽으로 비스듬히 벌어진 두개골 안쪽에는 벌떡거리는 분홍색 뇌가 보였다. 틈새로 삐져 나올 듯이 새차게 부들거리는 그것은 위급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강렬한 몸부림 같았다.

# 신경외과 의사 잔디얼은 뇌종양 전문으로 수많은 환자의 머리를 열어 새로운 삶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죽음보다 못한 삶의 극단으로 몰아넣기도 했던 사람이다. 의사이면서 무사의 삶을 살았다. 그가 상대한 사람들은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의 칼은 차가우며 정확하게 살을 베었다. 암세포 전이를 막기 위해 하체를 자르고 드릴로 두개골에 구멍을 뚫었다. 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시간을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만든 환자, 척수가 뽑혀 눈 아래 모든 감각을 잃어 버린 환자,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할 수 없는 환자를 치료하며 오히려 그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얻었다. 스트레스와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비로소 더욱 강인한 무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환자와 함께 칼 한자루를 들고 험한 수풀을 헤쳐나가는 무사를 자청하며 모험을 즐겼다.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고 영광에 관한 문제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느날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은 말기 암환자는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믿음직한 손으로 우리 크리스마스까지 한번 가봐요."

의대증원 이슈로 뜨거운 요즘, 어느쪽이 영광의 문제에 더욱 가까이 가는 사람들인지 이 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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