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웹진 소설리스트의 리스트를 신뢰한다. 매주 주목되는 소설 신간의 리스트를 제공하는 소설리스트를 감사하게 읽으며, 내게도 인상적인 소설들은 알라딘의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마치 개미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곡식을 저장해두듯이, 꿀벌이 수천번을 왕복하며 꽃술에서 꿀을 모아 침과 섞어 벌집 속에 담아두듯이. 그리고 한달에 두어번 장바구니의 목록을 살펴보며 시간이 지나 어느새 생경해진 이름들 속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을 선택하여 주문한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역시 2017년의 ‘금요일의 리스트‘에서 소개받았던 소설이다. 당시 글을 올린 집필자는 어느새 친밀감을 느끼게 된 준님인데, 그녀는 그곳에서 이 소설에 대해 ‘가족에 대한 소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동시해 상실과 화해, 그리고 그 이후 삶을 살아가는 작가의 응원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담백하지만 작가의 색채가 묻어나는 문체로 소설은 일관적이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누군가를 상실했거나 불화로 인해 멀어져 있거나 다툼이 있거나 하는 관계의 인물들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를 만든다. 그 이야기들은 사실 뻔히 눈에 들여다보이는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듯하게 마음을 만지는 뭔가가 있었다. 표제작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서는, 흥미로운 구성이 눈에 띈다. 비밀을 간직한 이발소에 찾아간 의문의 청년, 그 둘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대화- 즉 이발사의 자기고백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지만, 이야기의 끝에 가서야 청년과 이발사의 관계가 밝혀지고 어느새 이발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독자가 허투루 읽어 넘길 수 없는 한 인간의 진실된 독백이 되어버린다. 혹은 ‘성인식‘과 같은 이야기의 울림이 깊은 작품도 있다. 아주 오래 전, 어린 딸을 잃은 뒤 일상이 파괴된 부부의 삶에는 어떻게 구원이 찾아올 것인가. 그들이 딸을 기억하며 새롭게 일을 벌이고 활력을 낳는 동안 내내 딸이 함께한다는 사실이 퍽 아름다웠다.

그 외에도 이 소설에는 총 6편의 고른 소설들이 담겼지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였다. 가정의 불화 혹은 폭력에 길들여진 소녀와 소년이 ‘바다‘라는 희망을 향해 길을 나선다. 그 길 속에서 녀석들은 폭우를 만나 지장보살과 함께 비를 피하기도 하고, 낯선 부랑자에게 보호받으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바다를 만난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경찰. 경찰은 부랑자를 의심하며 언성을 높이고, 소녀와 소년은 그는 잘못한 게 없다며 소리친다. 그 와중에도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 맘 모르고 푸르다.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그렇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상실의 흔적을 가볍고 따듯하게, 그리고 아주 조용하고 소란스럽지 않게 들려주는 이 소설들은 내 취향은 아니면서도 읽고 나니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읽고나면 가족에 대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세대간의 화해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 전체에 걸친 주제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자식세대와 부모세대는 서로 익혀나간 생존법이 다르듯이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 관계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그것은 개인차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그들이 헤쳐나온 사회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점에서 화해는 쉽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세대 역시 시간이 지나면 오래된 세대가 되기 마련. 서로가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손을 잡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런 희망 때문이다. 치매걸린 히스테릭한 어머니를 어느 순간 이해하거나(언젠가 왔던 길), 남편에게 투정부리는 내 마음이 전쟁세대의 연인들에게는 하나의 사치로 보여질 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거나(멀리서 온 편지), 허세 가득한 아버지의 유품을 고치는 과정에서 타인의 인생들에도 모두 자신만의 서사가 있음을 깨닫는 과정에서나(때가 없는 시계) 모두 그런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압도적인 서사로 독자를 휘어잡는 스타일의 이야기는 아니고, 날카로운 사회인식으로 떨떠름한 충격을 주는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때로 이렇게 가볍고 부드러우며 둥글고 푹신한 이야기들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런 때에 그런 독자에게 읽히기 아주 좋은 소설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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