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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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초 겪은 일련의 사건으로 나는 스스로가 가진 젠더 감수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사건에 대해서 일일히 밝힐 생각은 없고, 많은 고민을 거쳤지만 여전히 그 때 내가 보였던 행동은 지금 돌아보면 의문이 많이 남기도 한다. 정리가 필요한 일이다. 가치관이라는 건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다. 사람은 가치관에 따라 가치판단을 하고, 그 가치판단이 개인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 집단과 개인 간의 가치는 어느 쪽이 우위인가-라는 단순하고도 핵심적인 명제를 중심으로 가치판단이 일반적으로 양분되어 옳고 그름을 뚜렷히 가를 수 없는 범주의 윤리명제는 너무나도 많다. 나는 그 가운데서 내가 옳다고 믿는 쪽을 언제나 믿어 왔으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에 의해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감정적일 때도 있고, 혹은 내가 이성적 판단이라고 믿었던 사실이 실제로는 내게 주입된 환경적 영향에서 기인한 사회적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민들을 촉발시킨 것은 실제로 내가 겪은 올해 초의 사건 때문이지만, 사실 이런 논란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내가 그런 논란에 귀기울이지 않은 것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는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가치관을 강요하는가? 그리하여 나의 행동을 어떤 식으로 통제하고 나의 사고를 어떻게 편협한 저울 위에서 움직이게 하는가? 이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다. 그 고민 이후로 내가 접하는 세상의 모든 의견은 다르게만 보였고 나는 홀로, 혹은 소수와 함께 그런 일련의 다수 의견에 맞서 온라인 상의 언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느낀 고독이나 슬픔,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분노와 무력감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 뒤에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2.
서론이 길었지만, 올 한 해는 스스로 참 많은 것들을 뒤돌아 본 시기이며 역동적으로 내 자아가 분열하거나 움직이거나 성장하거나 퇴보했던 한 해라고 느낀다는 것을 저렇게 길게 얘기한 것이다. 알게 되면 새롭게 보인다. 그럼 마치 밝고 명징해보였던 세계라는 것이 사실은 어처구니 없이 허술하고 멍청하고 그림자에 드리워진 땅 속 깊은 굴처럼 느껴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조남주의 이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그런 세계를 보거나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눈 앞에 들이대는 허술하고 멍청한 이 세계를 기록한 치밀한 보고서이며, 혹은 그런 세계 속에서 고통받아온 사람들에게 건네는 연대의 제안서이기도 하다. 그럼 나같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읽힐 것인가? 당연히 전자의 입장에 속한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알지 못하였고, 아마 이 책을 읽은 뒤에도 영원히 온전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해하려는 노력과 연대하려는 움직임만을 가질 수 있을 뿐, 어떻게 90년대에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성으로써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할지라도, 우리나라의 무수히 많은 김지영은 이 책의 분량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욱 방대한 자신만의 슬픔과 차별과 고통의 서사를 갖고 있을 지언데, 내게 그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세계의 크기에 비해 너무도 미약한 것일 테다.

이 소설은 앞서 말한 듯이,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긴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보고서처럼 읽힐 것이다. 소설의 제목까지 치밀하게 설정된 이 책은(82년에 태어난 여성에게 주어진 이름 중 가장 많은 것이 ‘김지영‘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내내 실제 김지영이라는 인물이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들게 하는 핍진성으로 무장하여 이 세계에 애써 눈돌리고 침묵한 다수에게 또박또박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지영씨의 어머니의 역사, 그리고 그 사회 속에서 죽음당한 김지영씨의 동생, 김지영씨가 자라나며 겪은 은밀하고 당당한 차별의 이야기, 낯선 이에게 뜻모르고 당한 위협과 추행과 가해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시선,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포기만이 가득한 선택지, 그리고 그 선택을 옳으며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이 세계의 목소리들. 김지영씨는 소설 속에서 내내 하고픈 말을 삼킨다. 목소리는 권력을 선점한 자들의 것이다. 사회적인 권력이 있는 자들만이 강한 발언권을 갖는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말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말할 수 없는 자들의 순응이나 그들의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문학이 할 일이고, 결국엔 사회 구성원들의 몫으로 남겨진 윤리다.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문학이다. 때로 이 소설을 읽은 뒤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문학적 정취가 없다는 이유로 가치를 깎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여기에 있다. 보고서처럼 읽히는 것은 이 책이 그만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소설이라고, 허구라고 다시 눈 돌릴 사람들에게 ‘그게 아냐, 이건 당신이 발 붙이고 사는 이 곳, 이 세계의 이야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3.
나 역시 반성할 것이 많다. 그리고 그런 계기는 참 많이도 있었다. 나는 누나가 한 명 있다. 언젠가 누나가 내게 자신이 어릴 적 여성으로서 당했던 기분 나빴던 이야기들을 말해준 적이 있었다. 아마 그런 이야기는 우리나라 여성들이라면 누구든 하나 쯤은 갖고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내가 접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익명 게시판에서, 한번 이런 화제가 불 붙은 적이 있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여성 회원들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그 사이트는 체감상 남성 회원의 수가 월등히 많은 사이트인데도 그 글에 남겨진 남성들의 댓글은 모두 ‘미안하다‘, ‘알지 못했다‘, ‘상처를 위로하고 싶지만 할 말이 없다‘같은 공감과 위로의 댓글이었다. 나는 그 때에는 참 그 사이트가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떤 연대의 희망같은 것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그런 생각을 접었다. 어떤 회원이 이 책을 남자친구에게 권했다가 그 책 이상한 책 아니냐고, 너도 그 쪽 사람이냐고, 나는 절대 그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은 절망적이었다. 일부 사람들이 나서서 이 책을 변호(어휘가 우스꽝스럽지만 아무튼)했고, 잘못된 인식에 대한 중재를 시도했지만 모두 비웃음과 멸시, 이상한 사례에 대한 일반화로 짓뭉개졌다. 나는 좀 슬펐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력했다. 뭐 내가 대단한 언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비웃음거리로 전락해 ‘남자인 척하는 여자‘로 결정되어 무시되는 지점에서는 참을 수 없었다. 그 표현에는 은연중에 ‘여자의 의견은 무시해도 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남자임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대체 왜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내 생물적 성별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그 글에서 벗어났다. 그 뒤로는 좀처럼 그곳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남의 집처럼 낯선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리 유명한 사이트는 아닌데 사람들이 정이 있고 음악 커뮤니티 답게 문화적 감수성이 높아 자주 들어갔던 곳이다. 그런 집단의 이성적 사고가 그렇게 편협하다는 사실이 애석하고 씁쓸하다.

서론과 더불어 뒷말 역시 길어졌지만, 이 책이 연대의 목소리라는 점과, 바디우적 윤리의 관점에서 ‘계속하시오!‘를 강조한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얘기해야겠다. 할말을 매번 삼키던 김지영씨는 결국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때때로 자신이 경험한 다른 여성으로 분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증상을 보이게 된다. 그것이 연대의 목소리라는 김고연주 여성학자의 해설에 동의한다. 또한 마지막에 등장하여 소설을 정리하는 화자 ‘나‘의 행동을 통해 거울과도 같은 경각심을 주는 대목에 주목해야한다. 김지영씨의 삶을 추적하며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처럼 많은 것을 희생하고 차별받은 자신의 아내를 언급하며, 뭔가 다른 삶의 방식을 결정할 것만 같았던 화자 역시 자신 주위에 짜여진 관계 위에서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그 사건이 우리에게 새로운 존재 방식을 강요한다면 우린 그 사건에 충실해야한다. 그리고 충실성에 대한 충실성으로, 우린 우리가 운동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야말로 바디우 적 말대로,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기를, 깨부수고 새로이 짓고 바꿔나가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할 것, 그것이 이 소설을 읽고 만들어 가야 할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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