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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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 이야기의 층위가 다층적이고, 인물의 심리에 깊게 파고들며, 문장에 감각이 살아있는 소설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에요- 하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살아온 세계 속에서 목소리를 잃은 자들의 입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소설이어야만 한다. 그런 모든 점들을 통틀어서 부족함이 없게 ‘이 소설들, 정말 좋다-‘ 하면서 읽은 것이 바로 이 소설집, 조해진의 ‘빛의 호위‘다. (써놓고 보니 김연수의 소설들이 모두 그러하다)

낯선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감탄한 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만큼 내가 독서에 게으르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 작가의 이 책이 정말 좋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표제작인 ‘빛의 호위‘를 비롯해 총 9편의 소설들이 묶여있다. 하나같이 감각적인 문장들이 살아있으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담겨 있고, 무엇보다 유려하다고 할 만한 시각적 연출이 두드러진다. 아닌게 아니라 소설 속에서는 종종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연출로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의 백스토리가 펼쳐지곤 하는데, 이러한 연출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다.

빛의 호위를 비롯해 소설 속에는 현재의 상징질서 속에 소외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불우한 가정사 속에서 친구가 준 카메라를 자신의 유일한 빛으로 여겨 사진작가로 성장한 권은, 동백림 사건으로 갑작스런 단절을 경험하게 된 유학생과 독일여성의 이야기, 언론사 파업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기자와 그 기자의 사진을 보고 작품활동을 재개한 재미교포 작가, 인문학과의 철폐로 직장을 잃고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는 전직 철학과 강사 등.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을 세상의 변두리로 몰아챈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시작되지만, 소설은 그 사건의 전말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오직 그 사건 속에서 자신을 상실한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한다. 나는 그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인물의 상처에 집중할수록 더욱 가슴 깊이 와 닿는 세계의 이기성, 물질문명의 폭력성, 상징질서의 잔혹한 보수성 등이 부각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 소설은 소설 속 인물들을 있는 힘껏 위로하거나 응원한다.

2017년에 출판된 이 소설 속 이야기들은 모두 근 수 년 간에 쓰여진 젊은 소설들이다. 또한 소설 속 시간적 배경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동백림사건과 유학생간첩조작사건 등의 잊어서는 안될 역사 속의 국가적 폭력사건들이 소환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이 소설들의 층위가 세대를 걸쳐 진행되며, 사람과 사람을 다리삼아 전해지기 때문이다. ‘동쪽 백의 숲‘이 그러한 점에서 인상적이다. 독일과 한국의 문학가가 서로에게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사건이 서술되는 서간체 형식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이만큼 아름답고 슬픈 소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상처와 슬픔은 세대를 통해 유전되고, 끝내 그들의 세대에서 치유된다. 국가적 폭력이 주는 상처는 이토록 씁쓸하고 치명적이다.

그래서 이 소설집을 좋아하게 됐다. 앞서 말한 이유들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마지막 소설인 ‘작은 사람들의 노래‘에서는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부적절한 운영 끝에 언론에 폭로되어 해체된 고아원 출신인 주인공 균의 갈 곳 없이 처절한 분노가 향한 곳이 마치 나를 향하는 것 같아서, 정작 그들을 학대하고 방치하고 구타한 고아원의 원장이나 교사들이 아니라, 그곳을 매년 방문하여 신의 자애와 인간의 믿음을 노래하던 성가대를 저주했다는 것에서 나는 거울을 보는 것만 같은 자책감을 느꼈다. 독자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소설은 많지 않다. 조해진의 다른 소설들도 찾아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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