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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이다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평점 :
몇 달 전 크게 앓았다. 앓는 와중에 나는 농담이라는 책을 읽었다, 라고 쓴 일기가 있다. 기억해보려 하면 기억나진 않는 아픔인데, 그 때 쓴 일기를 읽어보면 꽤나 크게 아팠던 듯 하다. 탈수기에 스스로를 넣은 듯 하루 종일 게워내고 쏟아내고 하는 것이 일과였던 그 때에 소설을 한 권 읽었다니 참 대단하다 싶다. 그러고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자 아팠던 기억은 물론이고 책에 대한 내용까지 흐려져 시간을 내서 다시 읽었다. 정신이 혼미했던 그 때에도 ‘참 좋았다‘싶었던 소설인데, 다시 읽으니 여전히 그랬다. 참 좋다.
이 소설은 한 이부형제에 대한 이야기다. 동생인 한 쪽은 아마추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고, 형인 다른 쪽은 우주로 쏘아올려진 우주비행사다. 서로의 존재마저 어슴푸레 알고 있던 두 형제간의 이야기는 두 남자의 어머니가 죽은 뒤, 형인 이일영에게 어머니가 남긴 열 두통의 편지를 동생인 송우영이 발견하며 연결된다. 송우영이 이일영에게 편지를 전해주려는 과정을 통해 서사가 진행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우주 속에서 고립된 이일영의 독백이 독립적으로 지나간다. 두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순서 없이 교차되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뒤섞인 시간 속에서 이일영의 독백이 과거의 시간들과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신비적이고 기묘한 분위기를 담은 채 매력적으로 직진하며, 이내 이야기들이 모두 연결되는 마지막에서는 감탄과 함께 알 수 없는 촉촉한 감정이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맺혀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야기는 모두 연결되려는 경향이 있다- 라는 표현은 아마 김연수의 소설집인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신형철 평론가가 해설을 통해 붙인 말일 것이다. 이 문장은 왜인지 아주 직설적으로 이 소설에 바치는 문장인 것만 같다. 세상의 이야기는 모두 연결되려는 경향이 있다. 소설 속에서는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즐비하게 달려가는데, 송우영과 세미의 스탠드업 코미디도, 강차연의 이야기도, 캡틴과 이일영의 이야기도 모두 소설 속 뼈대를 구성하며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송우영과 이일영의 어머니인 정소담과 이일영의 이야기다. 어떤 이유 때문에 정소담이 이일영이 어렸을 적,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이일영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은 읽어낼 수 있지만, 그녀가 어째서 그를 떠나게 됐는지, 이일영은 그녀를 어떻게 그리워하고 원망했는지, 그 사이의 일들은 몇몇 근거들을 통해 어렴풋이 유추해볼 뿐이다. 장장 12통에 이르는, 한 번 읽어내려가는 데에만 한시간 반이 걸리는 그 소설 한 권 분량의 편지들도 작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어두운 방처럼 몇몇 문단들만이 제시될 뿐, 그 전체의 내용이 모두 열려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일영과 정소담의 이야기는 그 구체적인 서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독자들은 저마다 한 명의 이야기꾼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김중혁의 능숙한 이야기 작법으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마치 내 것인 것처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저 먼 우주에서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강차연과 송우영은 그 후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되었을지도,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꾸며볼 수 있다. 송우영의 말처럼, 그리고 김중혁의 작가의 농담처럼, 그 이야기들 속에 송우영도 살고, 이일영도 살고, 김중혁도 살고 있을 테니까.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이야기들이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노력을 어쩌면 이 소설의 모든 주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떤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그 간절한 마음을 통해 이일영과 정소담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이미 만났고,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두 번째로 연결될 수 있었다. 간절한 마음, 그리고 애쓰는 노력. 이 두 가지가 이야기를 만든다.
+ 김중혁의 농담 실력은 그와 김연수가 서로의 친분과 디스실력을 과시한 산문집, ‘대책 없이 해피 엔딩‘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최근 소설리스트에서 한 회분을 펑크낸 김연수를 디스한 그의 글 역시 마찬가지). 그 농담 실력은 최근작인 이 소설을 통해 더욱 농밀해졌다는 것이 드러난다.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비 인기 영역을 되살려 이 소설의 뼈대를 구성한 그의 노력에 감탄한다. 그리고 소설 속 코미디들은 그 자체로도 꽤나 재미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