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의 추천으로 연휴 동안 이 책을 읽었다. 배명훈의 단편들이 시기와 분위기를 넘나들며 고르게 담겨 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 장르문학과 문단문학이라는 구분에 대해 알았다. 문단문학은 등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장르문학은 이에 대응하는 어휘로 데뷔를 쓴다는 것도 알았다. 문단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는 어디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글들 중에는 그런 성향이 짙은 것들이 꽤 많다. 또 배명훈의 이 소설들을 읽어보면, 충분히 문단문학에도 발을 디딜만한 아름다운 것들을 찾게 된다. 굳이 그 둘을 양분하고 탐독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편의상의 구분, 문학의 실천에 대한 방법론의 구분으로만 생각해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집에는 장르적으로는 SF에 속하는 소설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묶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실현 불가능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과학지식들로 충분히 상상 가능한 어떤 소재들을 사용해서 소설을 썼을 때, 우리는 그것을 SF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설들의 영역에서 기대하는 어떤 재미가 있을 것이고, 그것들에 충분히 부응하는 소설들이 일반적으로 SF소설로 인식되고 읽혀왔을 것이다. 하지만 배명훈의 이 소설들에는 좀 더 많은 다양성이 보인다. 가능성이라고 말해도 좋다.

‘스마트D‘나 ‘홈스테이‘같은 작품들에서는 숨가쁘게 움직이는 플롯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특히 배명훈의 데뷔작인 ‘스마트D‘에서 구사된 문장들의 신선함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D라는 글자에 대한 저작권을 행사하는 초국적 거대기업의 감시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설 속 주인공은 D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글쓰기를 구사한다. 키보드에서 D라 함은 우리 글에서는 자음 ㄷ에 해당한다. ㄷ이 제외된 글쓰기가 가능할까? 놀랍게도 배명훈은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빌려 ㄷ을 제외한 이야기를 매끄러운 문장으로 어색하지 않게 들려준다. 그 소설의 마지막 역시 충격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충격적인 발상은 인류멸망의 스토리를 담은 ‘유물위성‘이나 ‘예언자의 겨울‘에서도 나타나지만, 기본적으로 배명훈이 갖는 정서는 ‘키치‘인 것으로 생각되는 단편이 몇 있다. ‘티켓팅&타겟팅‘과 ‘예술과 중력가속도‘, ‘예비군 로봇‘등이 그러하다. 이 소설들에서는 과학적 상상력이 닿는 한에서 설정되는 제한된 공간/시간 속에서 그 과학적 상황을 겪어내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웃음과 재미를 안겨준다. 그러한 재미는 온전히 배명훈의 엉뚱한 발상과 상상력, 그리고 그 상상력을 실현시킬 현실에 발딛은 지식들에서 기인한다. 그 상상력이란 이런 질문들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핵잠수함에 근무하는 빠순이(비하의 표현이 아니고.. 관용어로서 사용하는 것이다)들의 피튀기는 티켓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달에서 태어나고 자란 무용수가 지구에 귀환한다면?‘, ‘단순한 로봇 조종사가 화성 개척에 자원하여 참여하는데, 그 조종하는 로봇이 동원대상자원이라면?‘과 같은 질문들. 질문만 보아도 호기심이 일지 않는가. 배명훈은 그 호기심을 훌륭히 충족해줄 탁월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단연 독보적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아무래도 ‘조개를 읽어요‘, ‘초원의 시간‘, ‘양떼자리‘와 같은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작품들이다. 조개를 읽는 고고학자가(아마 이런 고고학 분야는 작가의 상상일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이 분야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어떻게 그 유명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조개를 소유하게 되었는지를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독백문의 형식을 빌린 ‘조개를 읽어요‘는 이 소설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조개를 읽는다는 행위에서 오는 추상적이고 서정적인 작업의 분위기도 매력적이고 드문드문 드러나는 아름다운 문장이나 유머도 마음에 들기 때문이지만, 역시 이 소설이 한 사람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화자는 계속해서, ‘아니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나도 많이 고민했지‘ 하는 식으로 둘러대지만, 사실 그의 인생은, 그의 작업은 모두 한 대상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과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참 좋아한다. 조개들이 하는 말들은 너무 귀엽고, 화자의 감정은 서글픈 동시에 애틋하다.

‘초원의 시간‘과 ‘양떼자리‘는 단순한 SF를 넘어 환상적인 분위기까지 담지하고 있다. 실제로 타임머신이 미래에 개발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개발할 어떤 인물이 현재 이 장소에서 죽을 위기에 처해있다면, 그는 어떤 방식으로 생존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에 관여하는 인물은 어떻게 그 사실을 깨닫고 그 인물을 구출할 것인가? 마치 스릴러의 플롯처럼 들리지만 배명훈은 이 이야기를 아주 근사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그런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작가이기에 다른 키치한 작품들에도 신뢰가 간다. ‘양떼자리‘에서는 그의 핍진한 문장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몽골 초원의 양떼지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회고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이 소설 속 문장들은, 그야말로 ‘진짜‘ 몽골의 양떼지기의 문장들처럼 보인다. 심지어 몽골인의 문장들을 한국어로 들려주는데도, 그 문장들은 틀림없는 몽골의 양치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그 몽골의 늙은 양떼지기 역시,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아름다운 밤하늘의 양떼구름 속으로 걸어간다. 이 역시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이렇게 충실한 완성도와, 분위기를 넘나드는 다양성을 고루 갖춘 이 소설을 누구에게든 권하고 싶다. 즐겁고 유쾌하며, 두근두근하고 섬뜩하고, 아름다우며 환상적인 소설들이 책 한권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가장 좋아하는 ‘조개를 읽어요‘는 그 뻥의 질이 좀 대단해서, 실제로 있는 직업인 듯한 착각을 들게 하는 재미도 있기에, 나중에 누군가와 만나서 책 얘기를 하면 나도 그 뻥을 좀 쳐보려 한다. ‘조개들은 일평생 한마디만 하며 산다는데, 그거 알아? 조개의 나이테를 보면 그걸 읽을 수 있지, 나도 좀 읽을 줄 아는데 말야.. 이 조개 좀 봐봐..‘



+ 소설속 수 많은 은경씨와 희나씨는 작품에 해설을 붙인 정이랑씨의 글에서도 의도가 읽히고,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된 바 있으므로 더 이야기하지 않는다.
++ 다양한 시기에 걸쳐 쓰여졌다는 소설들이 공간적인 무대를 통해 몇 편이 연결되기도 하는데, 그런 지점들 역시 흥미롭게 읽혔다. 이래저래 읽을 재미를 찾기에 다양한 장치가 숨어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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