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의 탑 - 소설 오우치 요시히로
후루카와 가오루 지음, 조정민 옮김 / 산지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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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제의 후손입니다. 일본 나라 사람들이 나의 세계(世系)와 나의 성씨(姓氏)를 알지 못하니, 갖추 써서 주시기를 청합니다."

"의홍이 우리 나라에 향(向)하여 정성을 바쳐 적을 쳐부수었는데, 그 청구하는 바는 오직 이 일뿐이다. 하물며 본래 토지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본가의 계통을 추명(推明)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

"……내가 그 공을 아름답게 여겨 그 공적을 말하기를, ‘참으로 잊지 못하여 〈그 공을〉 갚고자 생각한다.’고 하였다. 너희 호조 급전사(戶曹給田司)에서는 그 선조의 전지가 완산(完山)에 있는 것을 상고하여, 예전대로 절급(折給)하여 채지(采地)를 삼도록 해서 특수한 공훈을 포상하라."

-『조선왕조실록』「정종(定宗)」권2, 백제의 후손으로 일본 좌경대부 육주목인 의홍에게 본관과 토전을 주는 일에 대한 의논 中

 

   위 대화는 일본의 육주목 의홍이 조선 왕조에게 자기가 백제의 후손임을 내세우면서 세계와 성씨를 밝혀주길, 그리고 이를 토대로 일본의 다른 세족들에게 본인의 출자를 알 수 있도록 전토를 얼마간 하사받기를 원하는 내용을 담은 왕조실록의 기록이다. 당시 정종 이하 신하들은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구분하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의홍의 이런 요구가 가당치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이를 듣고 있던 정종은 신하들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왜구를 토벌한)그 공>을 내세우면서 의홍에 대한 포상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에 결국 의홍에 대한 포상문제는 잠잠해지고 의홍이 요구한 바 있는 대장경판을 하사하겠다 하고 약속한 기록 및 왜구들이 의홍의 토벌에 의해 조선으로 쫓겨와 귀화를 요청하는 기사를 끝으로 더 이상 의홍의 기록은 실록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건 그렇더라도 대관절 이 의홍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실록(태조, 정종)에서 이 일본인을 다루고 있었으며, 또한 이 의홍이라는 사람은 어떤 연유로 본인이 '백제의 후손'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조선왕조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을까.

 

   일본의 역사소설이나 게임 등을 많이 접했던 사람들이라면 일반적으로 들어봤을 법한 토요토미(豊臣), 오다(織田), 도쿠가와(德川), 타케다(武田), 우에스기(上杉) 등 이른바 전국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씨족이 아닌, 조금은 변두리쪽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은 바가 있는 오우치가(大內家)에 대한 소설, 더욱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시기가 일반적인 (자국의 사극에서도 높은 비중으로 등장하는)전국시대가 아닌 아시카가 바쿠후의 초기(남북조기)를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여러모로 신선한 소재를 담고 있다. 일본역사소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있어 가지는 태생적인 약점(일본의 관제, 지형, 지역지배에 대한 개념차이 등)은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이런 개념에 익숙해진 독자들이라면 이 책의 서두에 실려 있는 지도 한 장 만으로도 서국(西國)과 큐슈, 쿄토 등지에서 열심히 뛰어다녔던 요시히로의 발자취를 뒤쫓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소설은 주인공인 오우치 요시히로가 나가토/스오 2국을 가진 아버지 오우치 히로요 밑에서 성장하면서, 이후에 큐슈 탄다이(九州探題)로 부임해오는 이마가와 료슌과 오우치가의 알력, 그 와중에 료슌이라는 사람에게 감화하면서 아버지와 대립하게 되는 유년 시절의 요시히로의 모습, 아버지 사후 오우치가의 당주로서 료슌의 큐슈 재패와 대외무역에 있어 공을 세우나 결국은 반목하게 되는 두 사람의 관계, 이 둘 사이에 새롭게 등장하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와 협력하여 쿄토에 상경, 당시 66개국 중에 6분의 1에 해당하는 11개국의 슈고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쇼군의 권력을 위협했던 '육분일중' 야마나가(山名家)와의 목숨을 건 전투, 전쟁에서의 활약으로 얻게된 이즈미와 기이를 중심으로 하카타와 사카이를 잇는 해상무역을 구상하고 실행하면서 본국에 있을 당시 얻은 미쓰히메 및 쿄토에서 새롭게 정을 나누는 유키히메와의 다정한 중년시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마나가가 그랬던 것처럼 쇼군에게 위협이 된 거대 다이묘를 제거하겠다는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으로 처절하게 쇼군을 향해 돌격하는 오에이의 난(應永の亂) 등 숨가쁘게 살아온 요시히로의 삶을 일대기 형태로 서술하고 있다.

 

문 중간에 오우치 요시히로가 자신의 세보를 밝히는 일, 그리고 오에이의 난에서는 만약에 일이 잘못될 경우 오우치 일가가 조선으로 넘어가서 세력을 회복해서 다시 중앙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 정부에 사절단을 보내는 등의 조선과 관련한 일화가 제법 등장한다. 아무래도 바다를 끼고 있던 영지에서 태어나서 료슌을 따라 다자이후/하카타의 무역활동에 주목했고, 본인이 획득한 사카이항의 존재 등이 요시히로를 일본 국내보다도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이는 2012년에 NHK에서 만들었던 대하사극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清盛)』에서 키요모리가 하카타와 쿄토 인근의 후쿠하라를 잇는 무역을 구상한 것을 연상케 해서 드라마를 감상했던 사람들에게는 요시히로의 노력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와닿는다.

 

   다만 위에서 보듯이 소설의 뒷면을 '백제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발췌를 메인으로 설정한 것은 조금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설의 제목에서 보듯이 『화염의 탑』이라는, 요시히로의 삶에 있어 좀 더 뜨겁게 강조할 수 있는 두 개의 큰 포인트(야마나가와의 전투, 오에이의 난)를 강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큐슈 및 시코쿠, 대마도 등에서는 한반도 및 중국대륙과의 사무역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고, 특히 대마도 영주를 대대로 도맡고 있던 소 가문(宗家)은 왕조실록에도 그 기록이 무수히 등장하는 만큼 쿄토의 서쪽에 있던 다이묘들은 한반도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요시히로는 이 관계에서 조금 더 나아가 본인의 가문이 오래전부터 백제의 임성태자가 일본에 뿌리를 내렸다는 식으로 본인의 세보를 강조하는 식이기 때문에, 요시히로의 생각(오우치가의 본거지를 조선으로 옮길 수도 있다)은 물론 참신하고 또 한국-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신선한 발상일 수 있으나, 소설의 전면에 홍보의 문구로 내세우기에는 소설에서 다른 부분이 더 도드라지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바람이긴 하지만 남북조의 혼란을 어떤 식으로 아시카가 바쿠후에서 수습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요시히로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서 큰 공을 세웠는지가 자세히 등장하지 않는 바가 궁금하긴 했다. 남조와 북조의 혼란상과 요시히로의 인생 자체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바이나 남북조 통일에 관한 내용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것은 소설이 어쩌면 "화염"같이 뜨거운 삶을 살았던 요시히로의 정열적인 부분을 강조하다보니 이와 관련한 내용은 부드럽게 넘어가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전국시대의 역사물들을 많이 접한 독자들에게는 전국시대가 시작되기 약 100년 전(오닌의 난(1467년)을 기준으로 잡는다면)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이 새로운 재미를 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쇼군의 권위를 위협하는 강성 다이묘(야마나가, 오우치가)를 모략으로 무너뜨리고 이를 저항하는 모습이 오닌의 난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일본역사상 최대의 혼란기이면서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낸 전국시대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국시대의 전초전을 마련했던 오우치 요시히로의 '화염'과 같은 삶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뜨거운 한 사내의 인생에서 치열한 삶의 가르침을 얻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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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고경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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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한국에서 살아온 한국인이 생각하는 일본이란, 그리고 일본인이란 어떤 이미지를 지니고 있을까. 아마도 TV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포켓몬스터등을 보고 자란 젊은 세대는 국사교과서(최근에는 한국사라는 이름으로 개편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교과과목 개명이다)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이미지로 배우는, 그리고 가까운 과거에 양국 간에 있었던 아픈 역사로 인해 고통을 준 일본을 어쩌면 더 과거 세대에 비해 일편적으로나마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가 아닐지 모르겠다. 일본 게임과 애니메이션, 드라마, 사극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과거 60~70년대 제2외국어로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만큼이나 선택하는 고등학교 과정에서의 일본어 교육(물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응시하는 것은 별개다)뿐만 아니라, 또 젊은 세대라면 한 번 쯤은 혼자서 일본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온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과연 단순히 보고 듣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는 바로 옆 나라인 일본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는가. 지금이 문화인류학이라는 거창한 학문적 타이틀을 앞세워서 상대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전반적인 면에서 연구를 진행한 후 침략을 자행하던 제국주의 시절은 아니지만, 일본의 문화 컨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일본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십중팔구는 섬나라’, ‘방사능’, ‘극우정부’, ‘(연관해서)동물원등의 다양한 단편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들이 등장한다. 최근에도 독도의 영유권을 놓고 소란이 있었고, 얼마 전에 일본 내의 총선으로 인하여 극우파로 알려진 아베 신조가 총리에 오르면서 한일 양국 간의 정치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보니, 한국인이 생각하는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긍정적으로 나아가기에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 스스로가 과연 한국, 한국인이라는 자아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 판에 일본, 일본인을 알아야 하는가는 질문에 빠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좁혀서 생각해 봤을 때, 진정한 를 파악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타자를 보고 이해하면서 역으로 를 이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가장 가깝고도 먼 일본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은 그 동안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되돌려보지 못했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번에 살펴본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는 읽는 동안에 거듭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유익한 서적이었다. 다만 새로운 국화와 칼이라는 서문의 타이틀에 대해서는 후에 얘기하겠지만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본 서적을 소개하고 싶다.

 

2. 저자 서문

 

중학교 시절 독후감 대회에 참여하면서 반강제(?)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라는 책은 어린 시절에 일본에 대해서 그저 지도상에 있는 옆 나라라는 인식만을 가지고 있던 본인에게 내용이 전혀 와닿지 않는 책이었다. 억지로 이해해 보려고 한다면 일본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저자가 다른 민족에 대해서 정말 자세하게도 썼다는 인상만 받았을 뿐이었지, 그 책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인식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찮은 기회에 대학교에서 일본관련 강좌를 듣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내용을 찾아보다가 다시 읽어본 국화와 칼은 단순히 저자가 놀라울 만한 통찰력을 가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유교한자불교 등 유사한 모습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일본과 일본인이 이렇게나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소설이 아닌, 일본과 일본인이 만들어온 역사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이 책을 접하면서 거시적인 정치사 중심의 일본사 개론서와는 다른, 미시적인 측면에서의 일본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비록 분량이 연구서적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지만 지루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와중에 수강자들이 일본 문화에 대해서 편견 혹은 지엽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음을 거론하면서, 초보적 수준보다는 조금 더 일본에 대해서 알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서술했다고 얘기한다. 특히 서양인들이 일본인을 하이쿠우키요에오젠가부키와 더불어 어쩐지 기분 나쁘고 이해하기 어려운 민족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음(p.8)을 언급하면서 일본사가 가진 을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림자부분을 중점적으로 서술하고자 노력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특히 서문에 과연 일본인을 연구한 책을 일본에서 출판하는 것이 의미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 최근에는 영어를 잘 하는 일본인이 많아졌지요. 그런데 그런 일본인에게 일본에 대해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서 놀랐습니다. 마치 미국인에게 일본을 물어보는 것 같아요.”(p.10) 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일본사에 대해 좁은 시각을 가진 외국인뿐만 아니라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국인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을 집필했다는 글을 보면서, 최근에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나왔던 이 웃지 못하는 광고를 떠올릴 수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온 우리 아들 영어 점수가 왜 이런가는 질문 밑에 나온 국어 맞춤법은 그야말로 창피할 수준이지만(분명 수정된 답안을 보지 않고서는 정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자국어의 맞춤법을 잘 모르는 아이의 무지함이 아니라 자국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의 세태가 아닌가 하고 꼬집는 광고로 느껴졌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시중 서점을 가보면 한국인의 입장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이해하고자 나온 책들은 많지만, 본 서적과 같이 정작 한국인이 성립되어 온 다양한 역사적인 모습을 이해하면서 서술된 책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분명 정치사 중심의 연구를 지속해온 역사학계에서도 반성할 일이긴 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역시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지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되었다.

 

3. 본문의 구성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한국 학자의 강연에서 일본이 이룬 것은 모두 한국을 모방한 것이다. 일본인은 독창성이 없다.’(p.19)라고 했던 그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반론할지를 당시에는 몰랐다는 말로 본문의 서문을 시작하고 있다. 본 글에선 일일이 모든 책의 본문 내용을 밝히기에는 종합인문서적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저자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서술한 바를 (본문 전체를 뭉뚱그려서)간단하게만 정리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바로 그 한국 학자의 강연에 대한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각 장에서 실제로 일본의 역사에서 많은 부분이 모방에 의한 발전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곳곳에서 그 모방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본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후진 민족입니다”(p.29)라는 저자의 말에서 보듯이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 전반적인 면에서 뒤쳐져 있었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일본과 일본인이 가진 특수성을 인류사적인 보편성에 견주어 우리는 매우 특출나고 독특한 민족이다는 식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모방, 그리고 상황에 맞는 모방의 개조였음을 겸손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역사를 진행하면서 일본인이 겪어온 바로 그 모방과 개조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라고 보면 부족하지만 적당한 소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책의 본문구성은 다이세이산텐코(大勢三轉考)의 일본-다테 치히로의 역사관이라는 프롤로그의 부제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다이세이산텐코(大勢三轉考)라는 책에서 나온 역사서술체제를 바탕으로 편집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의 역사서술체제로서 한국과 일본에서도 그대로 따랐던 년도별 서술인 편년체나 대의명분을 중심적으로 밝히는 기전체서술이 아닌, 씨족 시대율령 시대바쿠후 시대로 정치형태의 변화를 기준으로 역사를 나눈 다테 지히로의 서술체제를 받아들이면서, 저자는 '일본 역사는 일본을 기준으로 써야하지 서양의 기준으로 일본 역사를 서술하려고 하지 않겠다'(p.25)는 서술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던져주는 내용임이, 중국이나 서양의 서술체제를 바탕으로 자국의 역사를 재단하는 것이 맥락에 맞지 않음을 지적하는 저자의 말에서 그러면 우리는 과연 한국과 한국인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서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가령 고려시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서술하면서 중국식인 기전체의 서술을 따랐지만 신라의 왕명을 중국식 왕호를 사용하지 않고 거서간-차차웅-마립간-으로 바뀌었음을 그대로 서술했다거나, 일연이 삼국유사를 서술하면서 신라의 정치형태의 변화를 기준으로 상대(성골)-중대(무열왕계 진골)-하대(범내물계 진골)’의 기준으로 서술한 점 등은 한국 역사를 한국의 기준으로 서술해야 맥락이 들어맞는다는 저자의 의견에 대한 한국의 전통서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은 일본 농사의 시작, 일본 문자인 가나의 창작, 율령제의 성립, 불교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일본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무가(武家)의 등장, 화폐 문화의 발달, 잇키(一揆), 서양문화와의 조우, 기독교의 도래, 에도 막부의 바쿠한(幕藩)체제, 기술의 발전(특히 시계), 사상의 발달 등을 시대의 흐름을 기준으로 자유롭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내용이 시기적으로 연결이 될 수는 있어도 독립된 항목으로서 살펴보기에 편한 서술을 띄고 있기 때문에, 혹 관심이 있는 부분을 목차를 통해 찾아서 그 부분만을 읽어도 책의 이해에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가령 2012NHK에서 방영되었던 대하드라마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淸盛)을 보고 무가의 등장과 일본에서 독특한 형태로 발전된 바쿠후의 정치적인 형태를 알고 싶다면 본 책의 제7장과 제8장을 중점적으로 읽고 이해한다면 충분할 것이다. 또는 일본인의 종교관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제5장을 읽고 훌쩍 뛰어넘어 제13장과 제14장 등을 읽어본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일본의 역사발전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에 충분하겠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전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어떻게 메이지유신을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앞서 서술되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저자는 에도 막부 말기의 인물인 유리 기미마사(由利公正)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로 메이지유신의 성공이유를 대신하고 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유신의 성공은 바로 그때까지 축적된 일본의 역사를 활용했기 때문”(p.605)라고 하고 있다. 바로 이 책에서 제시했던 모방과 개조의 일본역사의 축적이 유신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메이지유신이 정말로 성공한 개혁인가에 대한 얘기는 뒤로 하고서라도(물리력을 동원한 개혁이었기 때문에 결국 뒤에 군부독재의 기반이 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한 민족의 발전상을 다양하게 종합적으로 정리했다는 것은 이 책이 앞으로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소개에 있어서 좋은 책으로 기억이 남을 듯하다.

 

4. 마치며

 

본 글의 서문에서 이 책이 새로운 국화와 칼이라는 소개글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지녔다고 언급을 했다. 국화와 칼이 일본인의 이중적인 면, 특히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서양인의 기준으로 볼 때의)일본인의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어두운 면에 집중해서 서술을 했다고 하면, 본 서적인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는 딱히 저자의 서론에서처럼 그림자를 집중했다고 하기에는 그렇지 않은 내용이 담겨있는 듯해서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가 그림자라고 하는 대비되는 단어에 대해서 흔히들 상상하게 되는 (부정적인 의미의)‘그림자라는 단어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일본 문화의 소개글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고찰을 한 국화와 칼의 새로운 버전이라기보다는,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고찰을 한 일본역사문화 입문서로서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하고 싶은 마음이다.

저자 역시 서문에서 일본인에 대해서 물어보는 외국인들에 대해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내용을 정리하려고 했다는 말로 책을 시작하여, 말미에서는 이 책을 통하여 누군가로부터 일본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이 분야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든지 저는 일본을 전혀 모릅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p.611)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맺음하면서 서술목적을 밝히고 있다. 단지 일본인이 왜 다른 민족과 비교해서 유별나 보이는지를 항변하듯 하는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국과 자국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책이다.

과연 우리는 한국에 대해서 질문해오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로 받을 수 있을까? 최근에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한류, 한국의 음식문화 등 단편적인 대답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이 책에서 서술한 것처럼 간단한 내용으로나마 종합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한국과 한국인을 소개할 수 있을까. 최근에 더욱더 약화되고 있는 학교에서의 국사 교육과,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매몰되어가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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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의 가문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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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라마 『공명의 갈림길(功名が辻)』에서 진지하고도 익살스러운 표정의 이에야스>

(출처 : NHK 대하드라마 『공명의 갈림길(功名が辻)』 29화 中)

 

   흔히 전국의 3대 영웅으로 꼽히는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너무나도 유명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울지 않는 새를 이 세 명에게 가져다 주면 성미가 급한 노부나가는 가차없이 새를 베어버릴 것이고, 

                        잔꾀가 많은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새가 울도록 만들 것이며, 느긋한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일본의 경영인들은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구를 닮고 싶은지, 그리고 누구를 부하직원으로 쓰면 좋겠는지에 대한 물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항상 제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합니다. 아마도 센코쿠 시대의 난세를 특유의 느긋함으로 오랜 기다림을 통해 이겨내고 결국에는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번영하는 막부를 만들어 낸 사나이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군요. 당대 최고의 센코쿠 다이묘들이었던 오다, 호조, 타케다, 우에스기, 토요토미 등의 틈바구니에 낀 미카와라는 지역의 현실, 그리고 이마가와와 오다의 인질로 이리저리 치였던 어린 시절의 불우한 삶을 이겨내고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결국 일본재패라는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그의 인생에 많은 사람들이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지요.

 

   일본의 대중적인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 역시 이 이에야스의 매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음을 이 『패왕의 가문(覇王の家)』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에야스와 미츠나리의 대결인 『세키가하라(関ヶ原)』가 1966년에 나온 6년 뒤인 1973년에는 아예 단독으로 이에야스를 살펴보는 『패왕의 가문』이 나왔으니, 한 인물과 관련한 두 개의 이야기를 이렇듯 간극을 두고 써냈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이야기와 매력을 충분히 곱씹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에야스의 영웅이라는 포장지에 가려진 다양한 이에야스의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촌티도 이런 촌티가 없었다, 미카와스러움 아니 도니스러움의 결정체>

 

   작가는 이 책에서 이에야스를 나타내는 말로 '미카와스러움'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바로 이웃인 오와리 사람들(그래봤자 킨키 지역에서 보기엔 오와리도 똑같이 촌티작렬!)이 보기에도 이 미카와 사람들의 '촌티'는 우스갯소리의 단골 소재였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미카와스러움'을 지키는 이 고지식한 사람들을 이끄는 대표자인 이에야스는 한마디로 '미카와스러움의 정수'라고 표현할 수 있겠군요. 질박하나 정이 많고, 독창적인 것에 대해경계심을 가지고 기존의 것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이웃에서 온 남들을 잘 의심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은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키는 미카와 사나이의 성격은 매력적인 소재임에 분명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미카와스러움'이 결국 300여 년 간 일본의 국체를 유지하는 기본이 되었다고 얘기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소란스러운 이웃을 잘 알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일본스러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해주는 단초를 제공해 주는듯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에야스의 그러한 기다림의 미학, 완고함 등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는 것과는 달리 작가는 그러한 '미카와스러움'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소설에서 나오는 세 인물, 사카이 타다츠구와 이시카와 카즈마사, 그리고 안도 나오츠구를 통해 이에야스의, 그리고 미카와 사람들의 '미카와스러움'을 꼬집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네요(이후의 세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적인 생각이니 쿨하게 넘기셔도). 소설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게 되는 '패왕(覇王)'이라는 이 화려한 단어가 과연 이에야스에게 잘 어울리는지를 계속 갸우뚱하면서 보게 됩니다. 심지어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표지를 보고는 이런 말을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니 왜 이런 촌놈이 패왕이야?!"


<뭐 이를테면 패왕의 화려함은 요정도로...?>


   '미카와스러움'을 꼬집는 첫 번째 인물인 사카이 타다츠구는 도쿠가와 사천왕 · 도쿠가와 16신장 중에서도 제일의 공신으로 꼽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의 적장자인 마츠다이라 노부야스를 노부나가로 하여금 죽이게 만드는 장본인이 됩니다. 매우 신중하고 검소하며 매사에 조심스러운 아버지와는 달리, 오와리풍을 좋아하여 화려하고 혈기왕성한 아들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인 오와리에까지 그 용맹함이 널리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무사였고, 비록 일부 혈기가 지나친 면(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흉포한 짓이긴 하지요)이 있었다곤 하지만 어머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자신을 약간은 멀리하는 아버지에게도 언젠가는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며 별 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던 아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에야스가 잘 다스려주기만 한다면 좋은 재목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 뛰어난 젊은이를 타다츠구는 노부나가가 차려놓은 함정에 숟가락을 앉고 말지요. 마츠다이라 가문이 미카와에서 처음 들고 일어날 때부터 비록 그보다 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해준 사카이 가문의 자부심, 그리고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세적 분위기를 농후하게 간직한 미카와 사람(p.147)'이었던 그의 입장에서, 나를 싫어하는 노부야스가 후계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집안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의 정당방위, 그리고 나아가 도쿠가와 가문의 안위가 걱정된다며 노부야스를 처벌해야 한다는 타다츠구의의 생각을 서술하면서 작가는 '미카와스러운' 중세 무사의 극단적인 행동을 가감없이 드러냈습니다.

   덕분에 이에야스는 눈물을 머금고 가문 최고의 공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야 했었고 이후에도 계속 노부야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이를 가지고 타다츠구를 비록 원망하긴 하겠으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가문을 위해 그를 계속해서 중하게 쓰는 장면을 볼 때 이에야스의 인내력과 용병술은 역시 칭찬받아 마땅하겠지요. 다만 이 장면만은 참 짠하더군요. 성내에서 고와카마이 공연을 보다가 왕자를 대신하여 신하가 자신의 자식의 목을 베어 바치는 이야기에서 타다츠구를 돌아보며, "저 춤을 봐라, 보란 말이다!(p.161)"고 외치던 모습에서는 다른 의미에서 '미카와스러운' 이에야스의 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카이 타다츠구의 초상>

(출처 : 일본 위키 사카이 타다츠구)

 

   '미카와스러움'을 꼬집는 두 번째 인물은 바로 '도쿠가와의 배신자' 이시카와 카즈마사입니다. 미카와 출생으로 어린시절 다케치요(이에야스의 아명)가 이마가와에 인질로 잡혀있을 때부터 함께 한, 이에야스로서는 그야말로 한 평생의 친구이자 전우, 최고의 가신인 카즈마사는 출신성분과 생애만 따져봐도 그 누구보다도 분명 '미카와스러워야' 하겠으나, 하필이면 세상의 정세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미카와 무사들 틈바구니 속에서 유일하게 세상의 물정에 관심이 있었던 죄로 결국 도쿠가와 가문을 등지게 됩니다. 물론 히데요시의 꼬드김이 크게 작용했겠으나 "미카와 놈들은 속이 좁아.(p.494)"를 입에 달고 다니고, 전장에서는 '미카와스럽지 않은' 오와리풍의 화려한 마표를 들고 다니며, 세상 돌아가는 꼴을 혼자만 알고 있던 '안쇼 이래로의 직속신하(p.511)'를 미카와 사람들은 히데요시와 놀아나서 주군을 배신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수군댔고, 그러한 등쌀에 이기지 못한 카즈마사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도쿠가와의 발원지인 미카와 오카자키성의 성주라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마키-나가쿠테 전투 직후 히데요시에게로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작가는 이 카즈마사의 이야기를 통해 '미카와스러움'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을 꼬집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장에서의 첩보활동은 그 누구보다 철저했으면서도 노부나가 사후에 히데요시의 천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식견도 없고 관심도 없던 이에야스라던가, 그저 화려한 오와리 풍을 추구한다고 윗사람인 카즈마사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던 혼다 시게츠구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폐쇄성은 결국 도쿠가와 막부 300년을 규정짓게 되고 나아가 현대 일본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그나마 폐쇄적인 미카와에서 유일하게 개방적이었던 그리고 정작 개방적인 분위기에 매혹되어 넘어갔지만 넘어가서는 다들 개방적인 분위기에 그다지 뛰어날 것이 없어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던 카즈마사의 모습을 보면서 작가는 '미카와스러운' 답답함에 대해서 토로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카와스러움'을 꼬집는 인물이 바로 안도 나오츠구입니다. 이에야스 일생에 가장 빛나는 전투였던 코마키 · 나가쿠테 전투에서 전투의 서장에서 활약했던 이 나오츠구가 없었다면 과연 도쿠가와군이 히데요시의 대군에게 잘 대처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에서 그의 비중은 크게 그려집니다. 나오츠구의 전투에서의 활약상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노부나가의 형제이자 노부나가 사후 오다 가문의 후계자 계승 문제를 놓고 개최한 키요스회의에 참석한 네 명의 중신 중의 한 명이었던 이케다 츠네오키와 그의 아들인 모토스케를 전사시킨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가 마치요(이이 나오마사)를 잘 봐달라는 명령을 고지식하게 지키면서 공을 그에게 양보하고 오로지 충성심으로만 행동하면서 당시의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법도인 적장의 목을 취하지 않는, 요샛말로 하자면 쏘쿨함을 보여주면서 노신들의 불만을 샀던 '미카와스러운' 완고함을 가진 이 사내의 모습에서 무언가 찝찝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더군다나 전투 이후의 논공행상에서 불과 500석 밖에 받지 못한 그의 모습을 보면 더더욱 좁디 좁은 도쿠가와의 '미카와스러움'에 대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지요.

   나오츠구가 그저 이에야스에게 중요했던 코마키 · 나가쿠테 전투에서 반짝 활약한 무사라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지만, 이 사람은 이후 막부의 초대 정치를 담당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오사카의 진 당시에는 비록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엿듣기는 했으나 가장 먼저 전투의 준비를 마치고 달려올 정도로 기민한 면이 있었으며, 혼다 마사즈미가 이에야스와 그의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정권 하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중에 유일하게 그의 몰락을 예견했던 정치적인 감각도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출처 : 일본 위키 안도 나오츠구).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전부 1만석 이상의 다이묘가 되는 와중에 이에야스 하에서는 5천석의 녹봉 밖에 받지 못하면서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던 이 우직한 '미카와스러운' 무사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작가는 '미카와스러운' 답답함에 대해서 논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의 스토리에 대해서 약간의 이야기를 하자면 작가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미카와스러움'이 가장 잘 나타난 히데요시와의 대결인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가 초반부 오다-도쿠가와의 동맹관계에 관한 설명과, 신겐의 의도적인 무시에 대해 순간적인 광기로 휩싸였던 미카타가하라 전투를 제외한다면 거의 1/3 이상을 코마키-나가쿠테 전투 부분에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말이죠. 작가에게 이에야스의 유년시절과 만년의 이야기가 매력이 없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이에야스를 이에야스답게 만들어 준 부분에 집중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덕분에 혹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본 독자들의 경우에는 뭔가 이야기가 듬성듬성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긴 하지만, 애초에 이에야스의 모든 스토리를 다 써내려고 했다면 굳이 시바 료타로가 야마오카 소하치와 겹치는 작업을 하려고 하지 않았겠지요.


   종합하자면, 이 『패왕의 가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의 가문을 종합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역사적 상상력이 잘 가미된 '도쿠가와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조건 찬양일색이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에야스의 인간적인 면을 잘 드러내어 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저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평면적인 인물이 아닌, 감정이 살아있는 듯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 입체적인 인물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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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마 2012-11-05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짤방이 모두 엑박으로 나오네요-0-;;
한 번 확인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칭기즈칸 세트 - 전5권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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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했습니다.)

□ 칭기즈칸과의 조우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들어봤음 법한 정복왕 칭기즈칸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지금은 중국 위의 작은 초원국가에 불과한 몽골이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800여 년 전에는 아시아/유럽에 걸친 지구 상의 역대 왕조들 중에서 가장 큰 대제국을 건설했던 국가이니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칭기즈칸의 리더쉽, 유목민족의 역동적인 활동 및 개방적인 사고 등이 현대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가봅니다. 칭기즈칸을 CEO로 설정해서 쓰여진 책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심지어 '칭기즈칸 학습법'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칭기즈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거의 대답은 몽골제국의 초대왕 정도 밖에는 알지 못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원(元) 왕조가 수립 100여 년 만에 망하면서(중국 대륙의 지배자 기준), 왕조 기록에 관련한 책이 명(明) 때 편찬한 원사(元史) 및 1920년 대에 편찬된 신원사(新元史), 그리고 몽골제국 초기 단계에 저술되었다는 원조비사(元朝秘史, 흔히 몽골비사라고도 하지요) 등 밖에는 역사적 서술로 활용할 만한 책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칭기즈칸에 관련된 서술들은 작가들의 사실에 근거한 상상력(이른바 팩션 faction)으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이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칭기즈칸은 흔히 말하는 영웅화를 위해 과대포장하는 내용이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아(개인적 생각입니다만) 담백하고도 일단 만화라는 점 때문에라도 재미있게 금방 읽어 내려갈 수 있겠더군요.

□ 초원 유목인들의 삶

사실 만화 칭기즈칸에서 더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초원 유목인들의 삶의 모습 자체였습니다. 


칭기즈칸이 어릴 적부터 배신과 갖은 고난을 겪어가면서 결국 대제국의 왕이 되었다는 (뻔한)스토리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런 면보다는 칭기즈칸이 그렇게 성장해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초원 유목인의 생활모습이 더 관심있게 읽히더군요. 가령 1권에서는 칭기즈칸의 부친 에스게이가 빼앗은 여자를 첫 번째 부인으로 삼는다던가(p.15), 아이를 낳았을 때 최초로 본 사물이나 조우한 사건에 따라 이름을 짓는 다던가(p.30), 원수지간의 부족이더라도 '초원의 방문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pp.56~57) 등등.



그리고 우리가 칭기즈칸과 관해서 제일의 미스테리로 알고 있는 무덤의 이야기까지(5권, pp.284~285)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유목민족의 생활모습에 대해서 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는 지금까지 세 시리즈를 접했지만(『도쿠가와 이에야스』『오다 노부나가』『칭기즈칸』), 아무래도 자국의 역사를 그려내는 것보다는 타국의 역사를 만화로 그려내는 것이 더 힘들었을텐데 섬세한 고증으로 그려낸 것 같아 칭기즈칸의 생애에 대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을 듯한 책인듯 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전문 경영 서적보다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읽어내려 가는데, 그리고 우리가 그저 야만과 비문명으로 생각하고 있던 몽골 제국에 대한 인상을 바꾸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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