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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 -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
폴린 보스 지음, 임재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평점 :
길들여지거나 친밀한 관계는 우리를 상실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지만, 충분히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밀밭이나 별을 은유적으로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 순간 그들은 우리와 함께 있다. “날 기분 좋게 해.” 여우가 말했다. “밀밭 색깔 때문이지.” 모호한 상실로 인해 논리적이지 않은 것까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태도이다. p.264
일반적인 상실도 큰 아픔의 시간이다. 상실을 직접 목격했더라도 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을 인식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모호한 상실은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조차 과거에 머물러야 할지 미래로 나아가야 할지 잘 모르게 만드는 것 같다. 한국 전쟁으로 이산 가족이 되어 여전히 생사를 알지 못한채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도 있고 세월호 때 가족을 시신으로라도 찾은 사람들과 실종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또 달랐을 것이다. 모호한 상실 중 치매 가족을 둔 사례들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지인이 말한 <사랑을 담아>라는 에세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작가의 남편은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존엄사를 선택하려고 한다. 조력 자살을 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겠지만 치매에 걸린 당사자의 입장에서 가족이 모호한 상실을 겪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상실의 원인-이민, 전쟁, 이혼, 재혼, 입양-이 무엇이든 상실의 증상들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불안, 우울, 육체 질병, 가족 갈등은 종종 적응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어떤식의 종결이 없다면, 부재하는 자는 현재에 머문다. p.94
'슬픔이 유별나도 되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천선란의 문장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한 사람의 슬픔이 유별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곳이다. 또렷한 상실조차도 그런데 모호한 상실이라면 어떨까. 그들은 어쩌면 슬픔을 느끼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모호한 상실의 슬픔을 잘 헤아려주는 사회가 되는 한걸음을 도와주는 책인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