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라디오 세대이다.

요즘은 하루 종일 케이블 티비를 통해 영화부터 뉴스, 음악, 드라마까지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볼 수 있지만 내 청춘은 라디오와 함께였다.

중고등학교 때 언니와 같이 방을 썼기에 자연스레 접하게 된 라디오였다.

늦은 밤, 잘 준비를 하고 누워 방송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과 함께 디제이가 전해주는 그 날의 인사말과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멘트들이 있다.

잠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잔잔하고 촉촉한 목소리의 디제이의 입을 통해 들려주던 이야기는 어느 날은 나의 이야기였고, 또 어느 날은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이 책은 딱 늦은 밤 매일 같이 디제이가 전해주는 이야기 같은 책이란 느낌이 든다. 저자의 나이부터 아무것도 모르지만 라디오 작가를 오래 했다는 것만 봐도 감성적인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다. 해가 지고 나서 약간의 찬바람이 쌀쌀해지는 가을이 되면 계절과 호르몬과 복합적인 이유로 센치 해지는 때 어울리는 책인 듯 하다.

 

전체적으로 책은 짧은 문단으로 쉽게 읽히지만 많은 여운과 생각을 하게 한다.

공허함, 슬픔, 아픔, 상처, 추억...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 겪어 봤음 직한 이야기들이라 더 공감이 간다.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위로받지 못한 마음, 엔딩은 도무지 알 수 없지 란 챕터 만 보더라도 나의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도착했고 왔다가 금방 사라졌으며

어떤 것들은 오지 않았고 끝내는 오지 않을 것이다. p. 46

 

나는 현실이 너무 퍽퍽하고 힘들어서 울다가 답답함에 가슴도 쳐보고 정말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웃고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일까? 다른 이들에게는 쉽게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나에겐 왜 항상 힘들게 멀리 돌아 오든지, 아님 언제 올지 기약조차 모르는 것일까 하고 나보다 가진 자들에게 질투도 해봤다가 나 자신을 원망도 해보는 나의 일상을 저자는 들여 다 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픈 당신보다 더 서럽게 우는 것은

당신의 아픔에서 나의 상처를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작은 일에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것은

그동안 쌓아 둔 슬픔이 많기 때문이다. - p. 117

 

나보다도 나를 더 잘아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행복한 이야기 보다는 서로의 힘듦을 들어주는 시간이 많이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듯 힘듦을 공유하다 그의 현실에 나의 현실이 투영되어 어느 순간 더 이상 그의 슬픔이 아닌 나의 슬픔이 되어버린 경우가 있다. 물론 반대되는 상황으로 나의 힘듦을 덤덤하게 꺼냈다가 나보다 더 많이 울어주는 상황도 존재한다. 내가 위로를 받으려다 오히려 상대방의 눈물을 멈추게 하기위해, 아니면 상대는 울고 있고 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경우 말이다. 딱히 서로에게 속 시원한 위로는 아니었을지언정 더 이상 그게 나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게 된 것같은 기분이 든다.

    

힘들 때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온전히 혼자서 견뎌야 하는 시간들은 남는다.

혼자인 법을 알지 못하면

기대고 바라고 매달리고 실망하고 미워하고

다시 기대게 된다. - p. 28

 

무언가 소중한 것과의 이별을 하거나 무거운 짐이 나를 누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그 상황은 잠시나마 잊게 된다. 웃을수도 있고 먹고 마시고 그 시간의 일부분에서 나는 그렇게까지 불행하고 슬픈 사람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고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또 다시 고요한 공간속에 나만 남겨져 아무 의욕이 없어 말할 기운조차 없는 그런 내가 된다. 저자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기대고 상처받는 사람이 아닌 혼자일 때도 잘 견디는, 혼자인 시간이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건 씁쓸하면서도 힘든 일 임에는 틀림없다.

가을의 늦은 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나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 인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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