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행동한다
카일 아이들먼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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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7)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2:22)

 

책을 읽는 내내 야고보서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어느 순간 성령 충만하지 못하여 교회의 일을 뒤로 미루고 있을 때,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다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모든 것들이 내 것이라고 느껴질 때 나를 스스로 채찍질 하며 떠올리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믿음의 결실로 행함이 동반되어야 함을 말한다. 아니 성도가 아닐지라도 계획만 장황하게 세운 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성경구절을 나에게 그리고 본인에게 적용한다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된다. 카일 아이들먼은 말한다. 당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면 ‘쿰!’ 일어나서 행동하라.

 

저자는 끊임없이 ‘아하’라고 외친다. 아하는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내가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아하가 일어나면 삶은 변화될 수 있다. 저자는 아하를 경험하기 위하여 반드시 아래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1. 별안간의 각성

2. 가차없는 정직

3, 즉각적인 행동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는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각성은 있지만 정직이 없거나, 각성과 행동이 수반되지만 정직이 빠진 아하는 단명하고야 만다.

    

책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수많은 비유들 중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등장한다. 자신의 유산을 미리 요구하여 받은 뒤 먼 나라로 떠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산의 뿌리까지 내려간 후에야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며 돌아오는 어디서인가 들어봄직한 이야기 이다.

[탕자의 비유]는 어느 아버지의 둘째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였다. 아예 하나님을 떠나 먼 나라로 떠난 사람, 아예 떠나지는 않았지만 어느 부분에서 만큼은 먼 나라로 떠난 사람 이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탕자의 비유를 듣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에게 재산을 분배한 아버지가 문제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택한 잘못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지 알고 계신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의 머리털의 수 까지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모르실리 없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허용하여 주시기도 한다. 뜨거운 맛을 봐야, 그래야 다시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아끼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자기 맘대로 먼 나라로 떠난 둘째아들은 결국 유흥과 놀음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우리에서 고돈 노역을 하게 된다. 먹을 것이 없어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으려 하지만 그것조차 그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때서야 아들은 따듯했던 아버지의 집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가에 대하여 인지하게 되고 그 즉시 일어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먼 나라로 떠난 둘째아들에게서 아하를 경험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가 포착된다.

1. 돼지만도 못한 자신을 각성하며 깨달음

2. 아버지를 거역하고 먼 나라까지 와서 재산을 유흥과 놀음에 탕진한 죄에 대한 인정

3. 즉시 일어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감

이 세가지중 어느 하나가 결핍되었다면 탕자는 그냥 그 어느 먼 나라에서 그런 끝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탕자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아버지는 거지모습을 하고 나타난 둘째아들이 멀리서 보이자 집에서 뛰어나가 그를 껴안고 입 맞추고 굶주린 아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준다. 이 변화의 시작은 탕자의 돌이킴 즉 행동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을 선택 할 때 우리를 걱정하신다. 때로는 교회의 사역자를 통해서, 지체를 통해서 알람을 울리기도 하시며 때로는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잠시 동안 용인해 주시기도 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행동으로 돌이키고 하늘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마치 둘째아들에게 달려가서 입 맞추고 잔치를 베푼 아버지처럼 말이다.

    

'돌이키기에 늦었다'라고 생각 하는 둘째아들,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음을 알고 잘못된 길로 갔음을 알지만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둘째아들, 하나님의 알람소리를 들은 둘째아들, 소극적인 둘째아들, 먼 나라로 떠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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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 한국컴패션 대표 서정인 목사의 눈물 - 한 아이를 가슴에 품을 때 들리는 하늘의 음성
서정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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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예쁘다>

 

 

 

 

 

 

 

나는 컴패션의 활동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알고있음의 수준이 깊은 것은 아니었다.

"션과 정혜영 부부가 후원하는 아이들이 많구나" "1:1 후원이라니 좋은 방법이구나"  이정도의 관심 이었다.

그냥 와닿지 않았다. 내 인생과는 전혀 무관한 일인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고  

필리핀이나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는 왜 저어린이들을 굶게하실까, 아프게하실까 등의  

교만한 마음까지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넘기며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이 한명 한명에게 세밀하게 간섭하셔서 하나님의 손길로  후원자들을 통로로 도우시고 살리시는,  

이들을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국내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나 저 멀리 필리핀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이나 똑같은 자녀들이다.  

'국내에도 지원 못 받는 어린이들 있어요' '왜 꼭 해외에 있는 어린이들을 도와야 하죠?' 등의  

국내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컴패션의 활동을 한 번 꼬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컴패션의 최초의 수혜국은 한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질문 해보면 이렇다.

'에버렛 스완슨 목사님은 왜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1:1로 후원하셨을까요??' 

 

책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눈물이 났고 웃음이 났고 기쁨이 솟아났다.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책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35-36)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0)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사랑하여 구원을 선물로 준 것처럼 나는 그 아이들도 사랑한단다"

이제는 이 책을 읽는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이며 그들은 여러분의 이웃임을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한국 활동 흔적>

 

 

 

 

 

 

<후원을 받던 나라 한국, 전세계2위 후원국가가 되기까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의 10만명의 어린이들이 컴패션 1:1후원으로 양육받으며 성장 할 수 있었고 컴패션의 첫번째 수혜국이던 한국은 10번째로 후원국이 되었다. 이 내면에는 분명 많은이들의 기도와 후원 그리고 한국 어린이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최초의 '희생과 순종'이 일구어 낸 결과에 감격스러웠다. 미국에서 안정적인 사역을 하고있던 에버렛 스완슨 목사님과 미국대학교에서 교수직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어 있던 서정인 대표님의 최초의 순종은 지금의 컴패션을 만들었고 최초의 수혜국인 한국은 전세계에서 2번째로 후원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나님의 작은 요청에 '이렇게하면 안되요?'라고 되물으며 작은 것도 놓지 못했던 나를 생각하며 과연 이 두분의 최초의 '희생과 순종'으로 하나님이 더 크게 역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홍보대사 신애라씨>

 

 

 

 

 

 

 

 

<네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 내 눈에는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생명이구나>

 

필리핀이나 남아메리카의 아이티, 인도 등의 나라에서 어린이들의 인권이나 기본적인 생활자체가 어렵다는 것은 익히들어 알고있었다. 하지만 책속의 어린이들은 더 많은 고통속에 지내고 있었다. 딸을 매춘현장에 보내는 아버지, 유아시절부터 흉기를 휘두르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 쓰레기를 주워서 먹으며 생계를 이루는 아이들 처참한 상황에 가슴이 먹먹해왔다. 어쩌면 이 어린이들에게 컴패션은 삶의 희망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컴패션에 등록되기를 원하는 어린이들이 굉장히 많지만 후원자가 부족하여 등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션과 정혜영 부부가 800명의 어린이들에게 컴패션 후원을 하고 있다. 세상에서 좋은 집을 마련 하는 것 보다 천국에 집을 짓겠다는 의미였다. 부끄러웠지만 책 속에 소개되어 있는 션, 정혜영 부부 구두닦는 목사님, 동물병원 원장선생님, 장애인 수영선수 김세진씨 등의 컴패션의 수많은 후원자들에게 감사했다.

세상에서는 좋은직업이 있느냐, 수입이 많으냐, 어디에 사느냐 이런 것으로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연약한 나는 세상에서 제시한 잣대에 나를 넣어 가치없는 인간인 것 마냥 여겼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소중함 앞에 그런 것 다 필요 없다고 하신다.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엘리자베쓰와 1:1 결연을 맺으신 차인표씨>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군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기 위해서이고 또 창세전에 택하신 이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하시는 것이다. 또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컴패션은 단순히 1:1 양육만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고있고 증인의 역할을 하고있었다. 한 어린이가 예수님의 손길을 느낀후 그 신앙은 가족으로, 이웃으로 전해졌으며 한국 컴패션의 후원자들의 영향을 받은 많은 주변 사람들 역시 예수님을 알아가고 1:1 결연을 통해 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가고 있다.  [백만 명 중 한 어린이를 찾아서]189p에 텔런트 차인표씨와 엘리자베스가 결연을 맺게된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이를 지켜본 한학수 피디는(믿지않으시는 분 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군요"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다. 그 대상이 백만 명 중에 한 어린이일지라도 그렇다. 한국 컴패션의 어린이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1:1 결연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만 천하에 드러내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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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1
도몬 후유지 지음, 김철수 옮김 / 굿인포메이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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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가죽을 뜯어 고치다. 改革>

 '개혁(改革)' 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시대이다. 여기저기, 예를들면 정치가 낡았으므로 개혁하라고 한다. 교육이 낡았으므로 개혁하라고 한다. 혹자는 개혁 하자고 한다. 그렇다면 '개혁(改革)' 이란 무엇인가? 개혁(改革) 이란 고칠개 '改' 와 가죽혁 '革'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사전에는 '정치 ·사회상의 구(舊)체제를 합법적 ·점진적 절차를 밟아 고쳐 나가는 과정' 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쉽게 말하면 말 그대로 '낡은 가죽을 고쳐서 새 것 처럼 만드는 것'이 개혁(改革)인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 할 수 있을 것이다. "낡은 가죽? 벗겨내면 그만인 것이지, 새 가죽을 입혀내면 그만인 것이지!" 하지만 우리시대에도 에도시대에도 개혁(改革)은 좀처럼 어려운 것이다. 늙은 관료들은 국가로 부터 받는 봉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며, 젊은 피지배층은 익숙해져 눌러 붙은 오래된 가죽을 벗겨 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불씨]의 시대적 배경은 1700년도 후반 약 260개의 번으로 구성된 막번체제의 에도시대이다. 에도시대에 260개의 번이란 지방분권보다도 더 큰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나의 번은 그야말로 나라와 다르지 않으며 번주도 그 안에서는 왕과 같은 존재였다. 요네자와번은 120만석의 다이묘(大名)이었으나 세키가하라전투(도쿠가와 이에야스파와 이시다 미쓰나리파의 파벌 전쟁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파가 승리하게 됨) 이후  30만석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120만석 다이묘 시절의 가신을 전부 끌어안게 되면서 번의 재정상황은 패망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재정 상황이 악화되니 상인들도, 다른 번 에서도 요네자와 번에는 자금을 조달하여 주지 않았다. 그 대가로 국가의 지배계층인 무사와 관료들은 번민들을 기름 짜내 듯 짜내고 있었다. 국가가 세금으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국민들에게 혈세를 올리며, 회사가 갑의 입장에서 직원들에게 100%이상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요즘 시대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이들에게는 개혁(改革)이 필요했고, 개혁(改革)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주권재민' 사상의 원조 격.>

과연 이러한 리더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한 나라의 수장이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한다?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번주(우에스기 요잔)의 모습, 겸손한 모습 그 뒤에는 하나의 번을 다시 살려 낼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는 영리함까지.. 17살에 번주의 자리에 앉게된 우에스기 하루노리(이후에는 요잔으로 불리운다)는 상황 그대로를 인정 할 줄 알았다. 대부분의 무사와 관료들은 현재 빚더미에 있는 번의 재정을 감추려 들었다. "잘 될 것이다. 문제는 없다" 라는 식의 입장을 표명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하루노리가 번주가 되었던 그 시점은 요네자와번을 에도막부에 반환하여야 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루노리는 번민들 앞에 겸손함으로 번의 상황을 인정했다. 그리고 고개숙여 부탁하였으며 '번정개혁은  번민을 위해서 실행하는 것이다.' '번민을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하였다. 현대의 '주권재민' 사상과도 동일한 것이다. '번민들은 무사계층과 관료들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쌀을 내야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먹을 식량이 없을 지라도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 번민이 해야할 일이다.' 반대로 말해보자. '번민들은 번을 위하여 일한다. 쌀을 낸다. 심지어 자신들이 먹을 식량이 없을 지라도 그렇게 하고있다. 그러므로 번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여야 하며, 요네자와 번은 번민들이 주인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번민이 풍요로워야 한다는 생각, 사상의 전환 이 것이 하루노리의 낡은 가죽을 뜯는 첫 번째 작업이되었다.   

 

<뜨거운 개혁(改革)의 불씨를 옮겨라.>

낡은 가죽을 벗긴다. 이 명제 안에는 항상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악착같이 붙어 있는 이 냄새나는 가죽을 어떻게 벗겨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에스기 하루노리의 개혁안에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낡은 가죽들이 있었다. 그 이유는 참으로 대단하다. 하루노리의 옆에서 개혁안을 함께 추진한 세력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 그 이유이다. 그들은 번의 상황과 처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혁을 주도하는 새로운 세력들을 단지 견제하고 싶었을 뿐이며 밥 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후에는 개혁에 반대하는 건의서를 제출하였고 국가의 왕과 같은 존재인 번주의 명령에 반역하게 되어버린다. 스다 미쓰누시, 이모가와 노부치카, 치사카 다카아쓰, 이로베 데루나가, 나가오 가게아키, 기요노 스케이데, 히라바야시 마사아리 이 일곱 중신 중 스다 미쓰누시, 이모가와 노부치카는 하루노리의 명령하에 할복하여 죽게 되었다. 악착같이 붙어 있던 낡은 가죽은 주인의 손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벗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처단 과정에서 나는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이들이 처단 당함을 통해서 불씨는 본격적으로 무사계급으로 번민들로 옮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적이 있는가? 혹은 개혁을 외친적이 있는가? 그것이 '나' 인가? 혹은 '국가'인가? 그렇다면 그 주체가 '나' 이던지 혹은 '국가' 이던지 냄새나는 썪은 부분은 과감히 버려야 하겠다. 그 것이 일곱 중신과 같은 존재일 지라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 스스로가 먼저 개혁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를 개혁 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확실한 것은 냄새나는 작은 부분이 개혁 된다면 그 작은 불씨는 타올라 자연스럽게 또 다른 곳 으로 옮겨 붙을 것이다.

 

<밑줄긋기>

후쿠시마에서 요네자와로 가는 국경을 넘어 이타야 고개에서 노숙을 하고 그 역참을 떠나 연도의 광경을 보면서 나는 솔직히 말해서 절망하였다. 그것은 이 나라의 모든 것이 죽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마치 이 재와 같은 것이다. 어떤 씨를 뿌려도 이 재의 나라에서는 자라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기에 지금 번 내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에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내가 바꾸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나로서는 불가능해. 나는 좋은 취지에서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개혁안을 만들게 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번이 죽어 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 시점에서 깊은 절망감이 덮쳐와 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지. 그리고 담뱃대로 재 속을 휘저어 보았더니 조그만 불씨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불씨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남은 불씨가 새로 불을 일으키고 그것이 또 새불을 일으킨다. -118P-

 

너희들은 최초의 불씨가 된다. 그리고 많은 탄에 불을 붙일 것이다. 새 탄은 번사와 번민을 말한다. 젖어 있는 탄도 있겠고 축축한 탄도 있을 것이며 불붙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탄도 있겠지. 같은 모양일 리는 없다. 그것보다도 나의 개혁에 반대하는 탄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탄들은 화통대로 불어도 한동안은 불이 붙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 한 개나 두 개쯤 불이 붙는 탄이 있겠지. 나는 지금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너희들이 불씨가 되어주어야 한다. 너희들의 가슴속에 타고 있는 불을 어쨋든 뜻이 있는 번사들의 가슴속에 옮겨주기 바란다. -119P-

 

<아쉬웠던 '불씨'의 사랑 이야기>

우에스기 하루노리는 '사랑'을 강조하는 번주였다. 개혁을 함께 추진하는 번사, 번민들에게 사랑으로 개혁을 추진 하였으며 자신의 배우자인 요시에게도 손수 인형을 만들어주는 사랑을 주었다. 불씨의 사랑이야기는 하루노리 뿐만 아니라 하루노리의 시동으로 등장하는 사토 분시로라는 인물에게도 있다. 미즈스라는 시녀와의 사랑이야기 이다. 중간 중간 재미의 요소로 들어가 있는 이 사랑이야기가 결말을 내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는 아쉽다. 차라리 없었어도 무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부분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우에스기 하루노리의 개혁안과 추진과정, 번사와 번민을 진심으로 사랑하였던 번주에 대하여는 전혀 부족한 부분이 없었다. 또한 개혁에 대한 개인적 적용, 국가의 적용에 관하여 심도있게 고민하게 하는 멋진 책이었다.

 

<추천합니다.>

만약 나에게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개혁 한다고 치자. 국가가 어떤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 했다고 치자. 그 작은 개혁이 불씨가 되어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 것 조차 언젠가는 낡아지는 것이다. 결론은 개혁은 한 번으로 족한 것이 아닌 것 이다. 언제라도 다시 뜯어고칠 겸손함을 유지해야 한다. 책 속 하루노리의 도전, 리더쉽, 사랑, 사상이 이것을 말하고 있다.

변화가 두려운 사람들, 개혁의 과정이 궁굼한 사람들 또 적절한 힘과 부드러움으로 개혁을 이루어낸 하루노리의 리더쉽이 궁굼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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