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날 것만 같은 소재에는 아주 귀한 사랑이 숨어있었다. 표제작 ‘남은 음식’은 마트 일을 하며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딸아이를 위해 챙겨오는 엄마와 이에 불만인 딸이 등장한다. 마트에서 엄마가 하던 일을 한 달간 하게 된 딸 선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창고 문을 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일하고 있던 직원들이 가운데 뭉쳐 있다가 순간 동작을 일제히 멈췄으나 선인 걸 확인하고 안도하며 검은색 비닐봉지를 각자의 가방에 넣기 바빴다. 선도 익숙한 검은색 비닐봉지였다. 엄마가 늘 남은 음식을 싸 오던 검은색 비닐봉지를 본 순간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들어 선의 몫으로 챙겨준 음식을 사양했다.“엄마 마트 일 엄청나게 좋아하시던데. 뭐 먹을 거 많이 챙길 수 있다고. 그런 거 싫구나? 엄마가 먹을 거 갖고 오는 거. 그런데도 엄마가 가지고 오는 거잖아. 선이 너를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선은 숨이 턱 끝까지 차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속에 얹혔다. 엄마가 근무하던 마트에서 일하면서 남은 음식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마음 한구석을 꾹 누르며 무시했던 사랑이 천천히 뚫고 나오기 시작한다는 걸 선은 분명 느꼈을 것이다. 엄마의 직장 동료들이 선의 직장 동료가 되면서 찜찜한 남은 음식은 유통기한의 지휘를 벗어나 검은 비닐봉지 속 사랑으로 재탄생하는 스토리가 잔잔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흘러가는 게 참 좋았다.남은 음식 뿐만 아니라 이 책 단편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불만을 드러내기보다는 익숙함에 수긍한다. 세상에 자세를 낮추지 않고 수평을 유지하며 내일을 향한 숙제를 곰곰이 생각하는 인물들의 보이지 않는 고민과 노력이 요란한 주변에 묵묵히 맞설 시도를 하는 것 같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단편집이었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