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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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눈물을 믿지 않아요. 이 땅, 시칠리아에 내일 따위는 없어요.“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생존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으며 절망이 계속되는 삶 속에 인간성이라는 게 온전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궁금했다. 무려 2,800년 동안 14번에 걸친 외지인들의 침략을 견뎌왔던 시칠리아를 두고 감히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이 허세는 아닐까 생각하며 모든 섬의 여왕이라고 불렀던 괴테의 말이 떠올랐다. 그 어떤 섬도 시칠리아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수는 없다. 다 태워버려도 살아나고 다 잠겨도 일어나는 모진 풍파를 견뎌내며 솟아올랐다. 다양한 나라의 침략으로 다채로운 예술의 경지에 감탄이 밀려오는 건 아픔을 승화해 낸 시칠리아의 눈물과 한숨을 품은 역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하 소설가는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 삶과 정면으로 맞짱뜨는 야성을 잊어버리며 살았다고 시칠리아 여행으로 고백했다. 시칠리아는 그런 섬이다. 앞을 향해 질주하게 하며 살아내게 하는 섬이다. 많은 나라들이 시칠리아에 발자취를 남겨 유물과 사적을 간직한 섬으로 아름다움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 충돌의 흔적으로 인해 독특하지만 낭만이 있다. 

시칠리아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거나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모든 과거의 기념비들은 침입했던 외부의 점령자들이 남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수탈의 역사를 나열하며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이 책은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외부의 것이라면 무조건 경계하고 증오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신은 과거의 망령에 지배당하고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스스로 말한다. 20살이 되기 전에 빨리 섬을 떠나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유령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그러나 누구도 쉽게 섬을 떠날 수 없다. 시칠리아의 과거는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며, 피할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시칠리아가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박물관 같은 섬, 비교적 저렴한 물가와 풍성한 식탁까지, 한국 관광객을 유인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칠리아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칠리아는 슬픔의 땅이며 지금도 여전히 그 땅은 정치적으로 무시당하고 있고, 극심한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작열하는 태양 아래 눈물샘마저 말라버린 섬이라고 저자는 말했나 보다.

”시칠리아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숨이 멎도록 처절한 고통이 계속된 땅,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삽화와 자연과 건물 등으로 시칠리아의 곳곳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시칠리아의 어느 어촌 마을에서 고기잡이를 마치고 항구로 돌아온 한 어부를 찍은 사진은 인상적이다. 공포에 질린 섬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로 저자는 이 책을 그 어부에게 바친다며 공포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한 인간의 진정한 용기를 보았다는 말을 전했다. 책 표지에도 있는 사진으로 저자의 동생인 김도근 작가의 작품이다. 이 사진의 주인공을 다시 만나기 위해 시칠리아를 방문했지만 이미 2년 전에 임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책 표지의 어부 사진을 다시 보았다. 핏기 없는 눈이 아닌 핏발 세운 눈에 처진 주름마져 솟아오르게 보이는 어부의 모습이 인생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슬프면서도 강인하게 보였다.

시칠리아인들에게는 남들처럼 사는 일은 어떤 삶일까? 그들에게 행복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은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이라고 하지만, 시칠리아에서 살아낸 그들에게 여행자라는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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