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명령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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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박정희가 1979년 18년간의 장기집권 끝에 당시 권력 2인자 격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피살된 10·26 이후 자신이 유신 적자라고 내세우면서 권력을 넘보는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12·12 쿠데타를 통해 군부를 장악한 뒤 계엄사의 검열단을 통한 보도지침을 통해 시민사회의 민주화 요구를 왜곡, 축소하거나 자신을 미화하는 기사 보도를 강행하면서 정권찬탈의 야욕을 드러냈다.

언론계는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한 계엄사의 비이성적이고 부당한 언론검열이 언론기능을 마비시키고 사회 민주화를 저해하는 것이라 비판, 반발하며 유신언론 청산 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학가와 시민사회단체 등의 정치 민주화 주장 및 운동과 언론자유 억압에 대한 비판도 언론을 크게 자극했다.

“쿠데타에 가담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라!”

당연한 외침이 절절하다. 대한민국은 큰 혼란에 빠져 있어 능력이 있는 지도자가 앞장서서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며 현실을 인정하고 뜻을 함께하길 권한다. 전두환 장군이 여전히 아끼고 있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한태형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관학교에서 쿠데타를 배운 적이 없다!”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한태형은 전두환 암살을 시도한다. 이를 막기 위해 스토리는 긴박하게 돌아가고 픽션이 논픽션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가 했더니 애타는 마음에 타들어 가는 속 터짐만 남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태형은 북한과 함께 전두환 암살을 계획한다.

실제로 1983년 10월 9일, 버마(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대한민국 외교사에 비극을 낳은 전대미문의 폭탄 테러가 일어난다. 전두환이 그때 죽었다면 비극으로 남았을까? 순방 중이던 전두환을 노린 북한의 기습 테러였다. 암살은 실패했지만, 당시 ‘황금내각’이라 불린 각료 등 17명이 대거 희생된다. 유례없는 참사였던 만큼 의혹과 추측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어왔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진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테러에서 화해 모드로 돌입한 것이다. 무엇이 암묵적인 협상 속에 껄끄러운 평화를 가져다준 것일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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