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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망루
배이유 지음 / 알렙 / 2023년 6월
평점 :
어둠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방해요소가 적다. 낮과 밤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책 표지는 낮인데도 어두운 걸 보면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밤의 망루에 오르고부터는 날짜를 헤아리지 않아 나이로부터 자유로웠다. 여기엔 여기만의 시간이 따로 있었다. 지금 자신이 스물인지 마흔인지 쉰이 넘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밤과 낮이 바뀌는 경계 시점은 낮의 진실을 가리기 위한 위장막일 수도 있다는 밤의 망루에서 그는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파수꾼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11살 어린 시절부터 고독한 생활은 시작되었지만, 노랫말의 멜로디를 알고, 여인을 알고, 낯선 깨달음을 알고부터 고독을 느끼기 시작한다. 고독은 삶의 의지이자 감각을 진하게 하는 것 같다.
“검은 붓꽃이 거울에 모습을 드러낸다. 할 말이 많은 표정이다. 숨어 있던 입은 얼마 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본 뒤로, 충격을 받은 탓인지 그때부터 뒤늦게 말문이 터진 아이처럼 아무 때나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내면을 뚫고 신체에서 반응하는 은밀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부자연스럽다. 인간의 본능마저 묵살당하기 쉬운 시대에 혼자만의 시간(상상) 마저 누군가에게 허락받는 것 같은 검은 붓꽃은 그 안에 많은 말을 남기기 위해 열중하다가도 검은 칠을 하며 덮기에 바쁘다.
두 편의 단편 외에도 삶의 방향을 잃기 위해 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향해 출발했다는 의미에 의욕이 생겨 다시 살 궁리를 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언인가 흡수되거나 빠져버렸을 때 뒤틀림이 살맛 나게 한다. 이 책의 단편들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요소가 짙지만 그렇다고 무엇 하나 건져 올리는데 애쓰지도 않는다.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고 순리에 따르다가도 이를 거스르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다. 인생은 다양한 기회를 준다. 물이 바다가 되고, 강이 되고, 파도가 되고, 폭풍이 되듯이 인간 또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단지 잔잔한 삶을 사느냐, 폭풍처럼 인생 한번 시원하게 흔들며 사느냐의 문제는 각자 본인에게 달려있다. 답답한 밤의 망루에서, 거울에 비친 붓꽃이나 구경하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다소 파격적인 소재도 있지만 우리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는 단편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