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60년 이상을 한동네 이웃으로 지낸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두 분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각자의 집에서 지내지만,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잠이 오면 그 자리에 드러누워도 깨우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저녁까지 놀다가 드라마보다 또 잠든다. 촬영하던 PD에게 갈 때 불 끄고 가라는 말까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두 할머니는 함께 한다. 오늘날의 이웃들은 어떤가? 연락 없이 불쑥 찾아가면 실례고, 음식을 나누면 부담이 되고, 굳이 이웃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웃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해졌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사는 근처에 사는 사람으로 지내는 게 더 편하다. ‘이웃들’은 60년 이상을 함께 해온 할머니 이웃처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좋은 이웃으로 보이고 싶은 거품을 만들어 내는 소설집이다. 차라리 비눗방울처럼 터져버리면 속이라도 후련할 텐데 열심히 거품을 만드느라 보글보글하다가도 때로는 부글부글 속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학년 성민은 바지에 똥을 싼 게 부끄러워 화장실에 숨었다가 늦은 밤 발견되었다. 경찰이 동네 안팎을 수색하는 동안 단톡방으로 촘촘히 연결된 이웃들은 성민의 신상과 사진을 공유했다. 그러다 누군가의 한마디 때문에 실종은 가출로 왜곡되었다가 성민을 찾은 뒤엔 한 가지 사실만이 또렷이 남았다. 성민 엄마가 계모라는.” “희주의 농담에 테미가 웃음을 터트렸고 와인리스트를 넘기던 수연이 따라 웃었다. 그녀들은 유쾌했고 자연스러웠으며 편안해 보였다. 한나가 보기에 그녀들은 평온해 보였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런 것 같았다. 그 이면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는 말이 있다. 집을 정할 때는 집 자체보다도 주위의 이웃을 더 신중히 가려서 정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왜곡, 시기, 질투, 갈등을 보기 좋게 포장하느라 참 답답하게 사는 ‘이웃들’이다. 이웃을 고르는 일에 속내를 볼 수 없으니, 집값은 천 냥으로 치솟고 세 닢짜리 이웃들만 남은 현실로 정 없이 사는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의 모임 같은 소설집이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