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 김소월×천경자 시그림집
김소월 지음, 천경자 그림, 정재찬 해제 / 문예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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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인을 이해하는 일에 평소 나는 콘텍스트를 강조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이른바 신화적인 시인 가운데에는 시인의 생애에 관한 선입견 때문에 정작 작품 세계의 진면목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중략

이제 이 시집 속의 시 텍스트 하나하나는 독자 여러분의 손에 맡긴다. 더 새롭고 더 풍요로운 소월의 시들을 만나리라 확신한다. 그 과정에서 소월에 관한 애정과 관심이 늘어난다면, 그래서 그의 생애와 시대까지 찾아보며 더 깊이 그의 시들을 읽어본다면, 여러분도 기꺼이 "소월, 소월!" 하게 될 거라 믿고 기대한다.

<왜 소월인가에 대한 작은 답변 / 정재찬의 여는 글 中에서>





 







진달래꽃이 지고 봄도 져가는 5월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봄은 여름을 향해 달리는 중이고, 그 와중에 며칠째 봄과 여름을 잇는 비가 내렸습니다. 세상은 갈증이 좀 풀렸을까요. 내내 안개로 휘감긴 도시는 뿌옇기만 합니다.

 

 

시인 '김소월'의 시와 화가인 '천경자'의 그림이 만나 『진달래꽃』이 출판되었네요. 총 5장으로 나누어져 소월 시와 천경자의 그림이 실려있습니다. 두 분 다 너무나 유명한 분들이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어서 이 책을 신청했었습니다. 김소월의 시는 알려진 시들이 많지만 그분만의 시집을 읽어본 적이 없어 궁금했고, 천경자 화가의 작품도 눈도장으로 몇 번 본 게 다인지라 궁금했습니다. 두 분의 작품을 한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김소월의 생애는 짧고 말년은 빈곤했습니다. 그 시대가 주는 감성이 소월 시를 태어나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개인의 일도 시대 속에서 일어나고, 만들어지고, 만들어 나가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가 '지금' 속에서 살아가고 있듯이 말입니다. 내 나라지만 내 나라가 아닌 시대는 어떤 것도 온전히 내 것일 수가 없었을 겁니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코앞이지만 마음의 고뇌는 늘 따라붙었겠지요. 가만히 시를 들여다보면 이도 저도 아닌, 오도 가도 못하는 그의 심정이 절절히 묻어납니다. 마치 사거리 중앙에서 갈 곳 몰라 서성이며 서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찬란했던 봄의 진달래꽃이 뚝뚝 잎을 떨어뜨려 놓은 길 위에서, 잎마다 쌓인 눈물을 어찌할 줄 몰라 그저 바라보는 느낌 같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한 사거리는, 살면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어떤 길이, 어떤 곳이 맞는 길일까. 주저하는 발걸음. 그 시대는, 누구나 휘청거리는 거리였을 거라 생각됩니다. 시인이었던 소월은 그 길 위에서 뼈아프게 고뇌를 길어올렸겠죠. 한과 슬픔은 소월 자신과, 시대가 준 것들의 집합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은 끈질기게 달려있던 미련을 잎처럼 떨구고 어쩔 수 없이 순응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고요.

 

 

평안북도 태생인 시인 중에 소월 말고 '백석'이 있습니다. 평북 사투리와 토속어가 시 곳곳에 묻어있어요. 소월의 시 또한 그렇습니다. 낯설기도 하지만 어여쁘기도 한 우리말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거든요. 그리고 숱한 비유들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외롭고 그립고 쓸쓸한 느낌입니다. 마치 동양화를 글로 그려놓은 듯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그림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천경자 화가를 알게 된 것은 오래전 tv에서였습니다. 주로 여인이 등장하는 그림을 많이 그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 그림들이 왠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에 꾹 초인종을 누른 것처럼 닿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 책이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삶 또한 평탄한 것만은 아니라서 소월 시와 잘 어우러지는 듯합니다.

 

 

책에는 <진달래꽃>을 비롯해 잘 알려진 시들과 알려지지 않은 시들이 골고루 실려있습니다. 발췌해온 시는 제 기준으로, 덜 알려진 시들 중에서 가져왔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고 도시도 회색입니다. 그은 비대신 바람이 자리를 차지한 모양입니다. 5월이 가고 봄도 가고 있는 저녁. 두 분의 작품이 함께 담긴 『진달래꽃』을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게 되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소월 시, 천경자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이 책 『진달래꽃』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옛이야기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와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줍니다

p 40 ~ 41




 





두 사람

흰 눈은 한 잎

또 한 잎

영嶺 기슭을 덮을 때.

짚신에 감발하고 길심매고

우뚝 일어나면서 돌아서도······

다시금 또 보이는,

다시금 또 보이는.

p 79




첫 치마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 지고 잎 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이 쥐어 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p 128

 







고독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해만 또 저물었네

탄식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니

꼭 같은 열두 시만 늘 저무누나

바잼의 모래밭에

돋는 봄풀은

매일 붙는 벌불에 타도 나타나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은요

봄 와도 봄 온 줄을 모른다더라

잊음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면

오늘도 지는 해니 어서 져다오

아쉬움의 바닷가 모래밭이니

뚝 씻는 물소리나 들려나 다오.

p 196 ~ 197

 







담배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 시절에

났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

다만 타 붙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여.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p 224




 






꿈길

물구슬의 봄 새벽 아득한 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불긋한 잎 위의 길

실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밤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

흔들리는 다리 위 무지개 길

바람조차 가을봄 거치는 꿈

p 27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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