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평점 :

새해를 앞둔 12월의 마지막 날, 한 호텔 방에서 엽총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은 총 세 명, 모두 팔십 대 노인으로 '시노다 간지', '미야시타 치사코', '시게모리 츠토무'였다.
그들은 1950년대 말 출판사에서 일할 때 동료로 만난 사이로 60여 년을 모임을 하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초창기에는 '공부 모임'으로 회원들도 많았다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회원들도 줄어들고 나이를 먹어갔고 셋만 남음에 따라 그들은 '생존 모임'이라 불렀다.
사건이 알려지고 그들의 가족들은 경찰서에 모인다. 암을 앓고 있던 86세의 시노다 간지의 가족과 여성인 82세의 미야시타 치사코의 가족과, 그리고 가족이 없는 시게모리 츠토무가 남긴 유서에서 언급된 지인 '가와이 쥰이치'였다.
간지의 아들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와 다르지 않게 늙어가는 자신을 본다.
치사코의 가족은 가족이라기에는 가족 밖에 있던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치사코의 딸은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어린 자녀를 두고 집을 나갔었다. 손녀 또한 남겨진 친가에서 견디지 못하고 동생을 두고 집을 나갔었다. 손자에게는, 엄마도 할머니도 남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츠토무는 여러 직업을 거치며 살았지만 남은 것은 가난과 빚뿐이었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쥰이치는 츠토무가 출판사를 그만두고 무역회사를 경영했을 때 함께 일했던 사람으로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들은 세명 모두 같은 공원묘지에 묻히길 바랐다.
믿을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남은 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상실의 아픔을 겪어낸다. 충격, 슬픔, 자책, 반성, 그리움 등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의 일상들이 쭉 전개된다.
"하지만, 돈 따위."
말을 이으려던 치사코를 츠토무는 가로막는다.
"촌스러운 말은 하지 않기. 선택할 수 있는 건 '언제'냐는 것일 뿐, 그건 만인에게 공평하게 오는 거니까."
치사코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하고 속으로 말한다. 나는 돈은 있지만, 돈이 있어도 갖고 싶은 게 없어져 버렸어.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p 153
집을 처분하고 나서 느꼈던 뜻밖의 홀가분함을 간지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것은 거의 육체적인 쾌락에 가까워서 의식이 아니라 피부와 뼈와 내장이 해방된 듯한 느낌이었다.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일 뿐만 아니라 모든 과거로부터의 해방. 그때는 이미 죽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몇 가지 선택지 중에서 엽총을 선택한 건 츠토무였다. 고통을 오래 끌고 가고 싶지 않다며, 게다가 한 방 쾅 때리면 이 세상에는 노인도 살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이 떠올릴지도 모르고 말이지,라고 말하며 웃었다. p 155 ~ 156
산 자보다 죽은 자를 더 가깝게 느끼다니 이상하죠.
얼마 전 하즈키한테서 받은 메일에 그런 문장이 있었다. 분명 하즈키도 할아버지를 자주 떠올리겠지만 하즈키와 생전의 시노다 간지가 얼마만큼 만났었는지는 알 수 없다. 도우코가 느끼는 것과 같은 가책을 하즈키도 느낄 때가 있을까. p 240
가와이 쥰이치의 가게에 갔던 날, 미도리는 자신들 가족의 입장과 감정을 그에게(혹은 누구라도 좋으니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그때 달콤한 탄산수를 마시면서 깨달았다. 그게 아니라 미도리는 단지 용서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일도 자신의 일도. p 250
유리에 달라붙듯이 서 있는 치사코를 츠토무도 간지도 말없이 기다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소파에 앉지도 않고 하릴없이 서 있는 간지를 보고 츠토무는 문득 납득이 갔다. 현실감이 없는 건 이 공간이 아니라 자신들이다. 야경도 응접세트도 흔들림 없이 이곳에 있고, 내일도 모레도 그 후로도 계속(적어도 당분간은) 있다. p 269
-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는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입니다. 저는 냉정과 열정 사이뿐만 아니라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원체 유명 작가였기 때문에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소설로 처음 만났습니다.
제목을 보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제목입니다. '혼자서'. 삶도 죽음도 혼자서 가는 여정임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종이우산'. 종이우산은 안개비나 이슬비 정도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큰 비에는 찢어지고 쓸모가 없어지지요.
결국, 모든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작품은 자살한 세 명의 마지막 날과, 이후 남은 사람들의 일상들이 번갈아 진행되는 형식입니다.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흐름은 높낮이도 별로 없고 잔잔하기만 합니다. 자살 사건 외에 극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마치 흘러는 가고 있지만 그 모습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강물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도 저자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연속성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전반부는 독서가 더딥니다. 등장인물들이 많아서 그들을 알아가는데 시간이 소요됩니다. 더군다나 계속 남은 자들이 바뀌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헷갈리기도 합니다. 흐름이 뚝뚝 끊기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낯선 일본 한자, 너무나 빈번한 괄호들이 자꾸만 몰입을 방해해서 완독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내용과 문장들은 전혀 어렵지 않아서 금방 읽어낼 줄 알았는데 다른 면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인들의 삶. 칠십이 넘고 팔십이 넘으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살게 될까. 그때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빛이 날까. 솔직히 긍정적인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들의 자살이,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왠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굳이 이 소설을 만나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늙고 누구나 죽습니다.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울 때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삶을 대하고 있을까, 죽음을 맞이할 대비를 하고 있을까 뭐 이런 상념들은 이따금 떠오르고는 했으니까요.
남은 자들의 삶. 상실에 대한 대처나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 끝없이 밀려오는 자책들을 어떻게 견뎌낼까 싶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일상은 계속됩니다. 고통은 토해내든 묻어두든 힘들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시간이 많은 것들을 옅어지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그저 살아가다 보면 어디쯤에서는 기억을 추억할 수 있게 되지요.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의 남은 자들은 그들의 죽음으로, 소원했던 가족 관계가 다시 이어지기도 하고 전혀 몰랐던 세 사람의 가족, 지인들과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을 되돌아봅니다.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을 소회하고 그들을 추모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일상은, 잠시의 이벤트에 익숙지 않은 골목길을 잠시 헤맨 것일 뿐 계속됩니다. 그것이 '사는 것'이라고 이 작품은 말해 주는듯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