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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너에게 줄게
잰디 넬슨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8월
평점 :
빛과 어둠은 분리될 수 없듯이 지난 3년의 냉각기는 쌍둥이에게 불완전한 세계였고 진실과 진심을 짜 맞추며 비로소 온전한 세계를 되찾는다. 따라서 '태양을 너에게 줄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고자 하는, 사랑과 우애를 동시에 상징하는 말이 아닐까? 어쩌면 '사랑해'의 한껏 찬란하고 따사로운 표현이 아닐지.
- 옮긴이의 글 중에서 / 이민희

나는 인물화를 그릴 때 그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품은 영혼은 거대한 해바라기다. 너무 거대해서 장기들이 들어갈 공간이 없을 정도다. 주드와 나는 하나의 영혼을 나눠 가졌다. 잎사귀가 활활 타오르는 나무. 한편 아빠의 영혼은 구더기 한 접시다.
- p 23
"플라톤의 설화에 의하면 원래 인간은 머리 둘, 팔 넷, 다리 넷이었는데, 워낙 강하고 자아도취가 심해서 제우스가 모두 반으로 갈라 전 세계에 흩어놓았대. 결국 인간은 평생 자신의 다른 반쪽, 즉 영혼을 나눠 가진 이를 찾아 헤매는 운명이 되었지. 가장 운 좋은 인간들만이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내는 거야."
- p 445
그 몰아치는 색채의 향연 속에 ······ 모든 것이 있었다.
어깨를 나란히 한 '노아와주드'의 뒷모습부터 시작이었다. 우리의 머리카락이 한데 꼬여 빛과 어둠의 강물이 되어 벽화 전체를 에둘렀다. 하늘에서 브라이언이 여행 가방을 열어 별을 쏟아냈다. 우든 버드에서 엄마와 기예르모가 키스하며 색채의 토네이도가 되었다. 아빠가 태양신처럼 바다에서 떠올라 재로 만든 몸으로 변했다. 투명 인간 복장을 한 내가 벽과 한 몸이 되었다. 노아가 제 몸 안 작은 공간에 웅크리고 있었다. 엄마가 탄 차가 불길에 휩싸여 하늘로 치솟았다. 헤더와 노아가 기린을 타고 있었다. 노아와 브라이언이 끝없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웃통을 벗고 입 맞추는 두 소년 위로 빛이 양동이째 퍼부었다. 크고 새빨간 우산 아래 아빠와 노아가 함께 폭풍우를 기다렸다. 노아와 내가 태양이 해수면에 그린 길 위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노아가 상공에 떠있고 그 아래 거인 엄마의 손바닥이 받치고 있었다. 이미 내가 기예르모의 돌 거인들에 둘러싸여 '노아와주드'를 작업하는 모습도 있었다.
눈앞에 재창조된 세상이 있었다.
- p 469 ~ 470
노아가 내 두 손을 잡아 쥐었다. 우리의 시선이 만나 얽혔다. 그러자 세상이 물러나고 시간이 달아났다. 지난 세월이 러그처럼 돌돌 말렸다. 우리에게 벌어진 모든 일이 없던 일이 되었다. 잠시나마,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되었다. 둘보다 하나에 가까운.
- p 472
누가 알겠는가? 누가, 혹은 무엇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조종하는지? 어쩌면 운명이라는 것은 자기 인생 이야기를 스스로 써나가는 방법 아닐까?
- p 494
약 오백 페이지 가량의 장편 소설 <태양을 너에게 줄게>를 오래 읽었습니다. 약속한 기일이 촉박했음에도 '주드'와 '노아' 속에서 여유롭게, 진득하니, 마음 같아서는 계속 같이 놀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예술적 감각 속에, 그들의 상상 속에 나도 하나의 상상이 되어 파묻히고 싶었나 봅니다. '잰디 넬슨'이 창조한 세상 안에서 재창조를 목도했습니다.
소설은 노아의 열세 살부터 열네 살까지의 '보이지 않는 미술관'과 주드의 열여섯 살 '행운의 역사'로 구성되어 서로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됩니다. 세상의 중심이 '나'인 시절, 떨어지는 바람 한 줌에도 칼날같이 예민하게 그 바람을 받아들이는 시절, 어떤 것이라도 어떤 사람이라도 의미가 되어 각인되는 시절, 서툰 첫사랑과 심장보다 먼저 뛰는 질투와 현실이 주는 절망들이 몽땅 해일처럼 밀려드는 시절.
흔한 말로 폭풍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맨몸으로 들이받고 표류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용은 쌍둥이 남매인 누나 주드와 동생 노아의 아직 길이 되지 않은 무성한 풀을, 베고 뽑아나가면서 피 흘리고 상처 입으며 하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예요. '노아와주드'가 '노아와 주드'가 되었다가 나눠가진 영혼이면서도 단단하게 하나의 영혼을 가진 '노아와주드'가 되어가는 성장 소설입니다.
노아와 주드 둘은 예술적 감각을 타고난 아이들입니다. 의학자인 아버지 '벤저민', 미술사학자인 어머니 '다이애나'와 함께 삽니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질투하고 경쟁합니다. 둘 다 서로가 더 재능이 충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주드는 할머니의 경전을 무척이나 숭배합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주드는 엄마가 늘 말하던 '그런 애'를 벗어던지고 투명 인간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그녀 곁에는 할머니 유령이 늘 함께 하죠.
노아는 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입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미술관에 차곡차곡 모아두죠. 혼자 놀기를 좋아하고 자신만의 상상을 풍부하게 가진 아이죠. 그림 그리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었는데, 어떤 사건 이후 그림에 관한 모든 것을 놔 버립니다.
노아와 주드는 더 이상 노아가 없는 노아, 주드가 없는 주드가 되어버립니다. 하나였던 둘은 속으로는 서로를 걱정하지만 겉으로는 데면데면한 등과 등을 맞댄 사이가 되죠. 서로를 상처 주는 일에도 가차없고 서슴이 없습니다.
둘 모두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고 꽁꽁 숨겨놓았습니다.
사랑도 찾아옵니다. 노아에게도, 주드에게도. 서툰 사랑은 몇 번을 넘어지지만 결국 이어집니다.
상실의 고통을 겪습니다. 둘의 변화에 가장 큰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빠도 주드도 노아도 저마다 진짜 자신은 어디다 버려두고 가짜가 되어 아픔을 마주하고 겪어냅니다.
뭐하나 쉽게 되는 것이 없습니다. 좋았다 싶으면 금세 나쁜 일이 생기고 또다시 서로를 외면했다가 극적으로 화해하기를 반복합니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깨닫습니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요. 주드는 겁쟁이 투명 인간을 벗어버리고 노아도 혼자 간직했던 고통의 비밀의 자물쇠를 엽니다. 삐걱대던 각자의 사랑도 이어지죠. 그렇게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태양을 너에게 줄게>는 지나온 나의 십 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모든 것에 서툴고 어리숙했으면서도 되지도 않는 치기는 하늘을 찔렀던 그때. 가진 것은 자존심 하나뿐이라는 듯이 태양은 나를 위해 돌고 있다는 가당찮고 어쭙잖은 자만심이 폭발했던 시절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 빨개지는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하지만 세상 무서운 게 없었던 오롯이 저 잘난 맛에 살 수 있었던 착각이 주는 달콤함을 즐기는 어린아이였던 것 같아요. 사실 쥐뿔도 없었으면서 어느 하나 잘 하는 것도 없었으면서 말입니다.
저자 '잰디 넬슨'을 처음 만났습니다만, 정말 멋진 작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장마다 비유들이 독특하고 별같이 빛이 났습니다. 특히나 놀라운 것은 감정을 표현해 내는 부분이었어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생생할 수 있지 싶은 게 감탄사 백 개쯤 질러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감정이 너무나 선명하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거든요.
잰디 넬슨 자체가 곧 예술적 감각을 지닌 분인 듯합니다. 소설 속에 펼쳐진 이야기들은 노아처럼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도 꼭 주드나 노아가 된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아마도 다시 돌아간다면 더 멋지게 나의 그 시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룰 수 없는 기대감이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머뭇대기만 한 그 시절의 내가 안쓰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즐겁다가도 슬펐다가도 안타깝다가도 화가 났다가도 결국 환한 미소를 짓게 되는 이야기. 노아와 주드의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기를 바라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