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멜랑콜리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장문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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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 우리의 도시는 본성상 멜랑콜리하다.”

이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자신의 도시 ‘토리노’에 대해 한 말이다. <토리노 멜랑콜리>는 이탈리아의 산업 도시로 이름을 알렸던 도시 ‘토리노’가 어째서 멜랑콜리한 도시가 되었는지, 그 역사와 배경을 소개하는 책이다. ‘피아트’라는 자동차 회사의 광활한 무대가 되었던 토리노는 현재 도시를 가득 채우던 노동자들과 열기, 들끓던 것들은 사라진 채 김이 빠져버린 잿빛 도시가 되었다. 책에 따르면 토리노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불안정해졌으며,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가 아니게 되었다. 이는 결국 시대가 변하며 “급속하고도 완벽한 탈산업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임이라. 이와 더불어 토리노를 들썩이게 하던 ‘노동 운동’의 패배도 그 원인일 것이다.

아녤리의 피아트가 토리노를 성장시킨 것만큼은 분명하다. 책에도 나와있듯 당시의 ‘노스탤지어’를 갖고 있는 토리노 노동자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은 빛바랜 잿빛 도시 멜랑콜리한 토리노가 되어버렸지만, 당시의 토리노는 혁명의 불씨, 노동의 열기로 북적북적한 도시였다. 아녤리의 전략적인 포드주의로 발 빠르게 산업화의 길을 연 피아트는 토리노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경제에도 큰 힘이 되었다. 이는 얼핏, 전쟁 이후의 한국을 연상시킨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나라(토리노는 도시이지만)를 일으켜 세웠고, 거기에 노동자들의 노동이 큰 힘을 더했기에, 그에 대한 묘한 자부심이 있다. 토리노의 노동자들이 그 당시 긴 노동시간과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화상을 입곤 했음에도, 그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듯, 우리나라의 노동자들 또한 그럴까? 당시의 치열하고 지난했던 노동이 지난 지금, 현재의 노동이 향해가고 있는 길은 어디일까.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고 있을까.

“피아트가 승리했다.”와 “피아트 해고 노동자 중 300명 이상이 자살했다.”는 두 문장이 대조되며 배어나오는 짙은 비극성은 나를 마음 아프게 한다. 결국 가장 뜨겁게 노동 운동이 일어났던 도시도 자본에게는 질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어떠한 패배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시감 또한 느꼈다. 최근 한국에서의 파업 중 ‘승리의 성취감’을 느꼈던 파업이 있을까? 당장 머릿속을 스쳐가는 철도 노조 파업이나 화물연대 파업이 그려진다. 여타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할 권리’, ‘편할 권리’ 등에 못이기듯 협상을 마무리 짓던 그들. 나도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일 뿐인데, 그들의 파업에 진심으로 연대한 적이 있었던가?

“21세기의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자본의 힘에 비해 너무나도 약해 그 관계가 종종 시야에서 사라지곤 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 굉장히 공감했다. 정책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노동자의 권리보다는 노동자가 회사를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의무들이 좀 더 큰 위력을 가진다. 주52시간 제한과 최저시급으로 최악만을 막았던 노동조건들이 현재는 말장난 속에서 다른 양상을 띄어가는 것 같다. 그 당시보다는 나아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만 순응해야 하는 것일까. 피아트의 노동자들처럼 ‘행진’을 하고 파업을 주도할 용기가 없음에도 자유를 바라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피아트가 뜨거운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을 때도 모든 자유를 원한 노동자들이 그 혁명의 길에 뛰어들진 않았다. 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 위로를 받았다. “순응성이 자율성과 꼭 배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라는 문장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순응하여 살아가고 있는 듯한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각자의 자유와 덕을 좇고 있고, 이는 언젠가 반드시 터져나와 거리를 가득 채울 것만 같다는 믿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멜랑콜리한 토리노를, 당시의 영광을 상실한 듯한 토리노를, 여전히 열정있게 바라보는 저자처럼. 우리가 현재 이 사회와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 열정을 갖고 믿음을 갖는다면 잿빛 도시에서 다시 광채를 띈 도시로 변모할 수 있을 것 같다.

“혁명의 실패가 멜랑콜리를 낳지만, 멜랑콜리의 극복이 혁명의 시작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의 도시이자 파시즘의 덫에도 쉽게 걸리지 않은 독립성의 도시이며 혁명의 도시이기도 한 토리노는 그와 동시에 실패로 인해 자아난 멜랑콜리가 만연한 도시이기도 하다. 멜랑콜리는 결국 애도를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토리노를 비롯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들이 자아내는 멜랑콜리를 극복할만한 올바른 애도의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모습을 가진 20세기의 토리노를 톺아보며,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 유의미한 질문들을 던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혁명에 성공해서(잠깐의 달콤한 성공이었지만) 자유시간을 즐기고, 행진하며 자본에게 자신들을 드러내 보여주던 장면들에서 희열을 느꼈다. 어쩌면 나 요새 정말 힘든지도…

*혁명을 원하지 않고, 노동할 권리를 달라고 하는 노동자들의 입장도 있었다. 노동자들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고도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일 나라면 어느 스펙트럼에 존재하고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았다.

*뜨겁던 열기가 식어버린 토리노지만, 그 멜랑콜리마저도 궁금해서 언젠가 이탈리아에 간다면 꼭 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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