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는 계급조직은 인간 심리의 밑바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무의식으로 불리워지고, 혼동의 에너지가 연습의 반복에 의해 숨겨지고 정리되어 있다. 피아니스트는 연습을 통해, 의식적으로 주의하지 않고도 몇 분 안에 수천의 건반을 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거기에는 언제나 의식적인 주의가 있다. 나의 비평과 관련된 재능을 발휘하면서 자기 비평을 쉬지 않는 것처럼. 비평을 하면서 역사적 문맥에 대한 자의식을 계속해나간다. 교회·학교·법원은 관료제도가 확립되면, 그들의 기능이 언제나 미신 속으로 단순히 그들이 인수받은 바를전해주는 것으로 후퇴할 수 있다. 비평은 잠복한 에너지에서 새로운에너지를 일으키는 하나의 힘이다. 비평은 현재의 삶이나 관심거리와관계되는 방향으로 과거에 접근한다. 문학작품, 음악 그리고 다른 예술들은 확실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보하거나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나역사 속에서 그들의 의미, 중요성, 기능 등에 대한 이해는 개선될 수있고, 또 어느 정도 개선된다. 기독교에서 계시 자체는 진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반면, 그것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확실히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에 있어서 비평은 매우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과학에있어서는 모든 새로운 발견은 이미 알려진 것의 전체에 소속된다. 그래서 전체 지식의 모든 중요 분야가 진보하여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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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은 자유에 이르는 수단입니다. 편견 없이 탐구하려면,
흔히 하듯 정치적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거나, 영적 스승인 구루sau 을 찾아다니거나, 온갖 종류의 광적인 종교 모임에 빠져드는 식으로 감정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낭비는 머리와 가슴을 둔하게 만들어 통찰력을 앗아감으로써 주변 환경과 두려움에 자기를 내맡기게 합니다. 삶의 여러 면에대한 새로운 이해는 불타는 탐구심에서 오는 것이지, 다수를안이하게 따르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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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됨은 삶의 법칙이다. 살아가는 것은 삶을 ‘상황‘으로 경험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이 상황에서 저 상황으로 움직인다.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상황을 우리는 기회라부르며, 나쁜 사건으로 생각하는 상황은 거절하고 무시하려고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상황에서 같은 것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우리는 상호 작용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 자신과 양심사이에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최고의 계약은 정직한 성찬이며 우리는 계약의 한계를 존중하며 그 존중하는 만큼 삶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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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탐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스스로를 넓게 열어두라.
자신을 꽁꽁 싸매서 삶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분별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자기 자신과 인생에 대한 교훈을 스스로 내버리겠다는 태도나 다름없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얻어진 지식은전달될 수 없다. 그 지식은 고정된 정보가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빚어진 실수(또는 무지)까지 포함하는 복잡미묘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당신이 얻은 지식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마치 투명한 지도 위의한 점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기준점이 없기에 당신의 행위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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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타인에게 맡기지 마라. 설령 부모라 해도, 참고하는 건 좋지만 마지막에는 꼭 스스로납득이 가는 결정을 내린 뒤 살고 싶은 대로 살도록 스스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변명할 수 없잖아? 퇴로를 막는다는 건 거칠지만 성장을 위한 최고의방법이다. 큰소리를 치면서 자신의 일은 스스로 결정하고 퇴로를 막아라. 그후, 거기에 현실을 맞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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