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내가 일러두고 싶은 것은 오늘날의 기술에 대한 관심이 기술의 진보도 그 존속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은 ‘현대문화‘, 곧 물질적 이익을 주는 과학을 포괄하는 문화의주요 특징들 가운데 하나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19세기삶의 가장 새로운 특징을 자유민주주의와 기술 두 가지로 요약했던 것이다.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실험과학과 기술을 낳은 역사적조건이 무엇인지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가 명백히 밝혀졌다고 해서 대중이 그것을 이해하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대중은 이론에 주의를 기울이지않는다. 그는 자신의 육체적 경험을 통해서 배울 뿐이다.
대중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나 고통을 기적처럼 가라앉혀 주는 진통제 주사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어떤 이론이 가져다줄 수 있겠는가? 과학이 대중들에게 가져다주는 확실한 혜택과 그들이 보여주는 과학에 대한 관심간의 불균형은 너무커서, 환상적인 기대에 빠질 수도 없고 그렇게 처신하는 사람들에게 야만 이상을 기대할 수도 없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특히 이런 과학에 대한 무관심은 다른 어떤 부류보다도 의사와 기사 등의 기술자 대중에게서 더욱 명백히 나타난다. 이들은 과학이나 문명의 운명에 최소한의 연대도 보이지 않은 채자동차를 이용한다거나 아스피린 통을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사람들과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정신 상태로 자신의 직업을수행한다.
자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자연은 자급자족한다. 자연속에서나 밀림 속에서는 별다른 죄책감 없이 야만인으로 지낼 수 있다. 심지어 야만인이 아닌 인간들이 쳐들어올 위험만없다면 영원히 그런 상태로 있겠다고 결의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영원히 원시적인 민족이 있을 수 있다. 그 민족은실제로 존재한다. 그들은 부라이지히(Breyssig)가 ‘영원한 여명의 민족‘이라 부르듯이, 한번도 한낮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여명에 붙들려 얼어버린 사람이다.
지금까지 파시즘과 볼셰비즘에 관해 말했지만, 단지 간접적으로만 다루면서 그 시대착오적인 측면에 주목했을 뿐이다. 나는 이런 측면이 오늘날 활개를 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오늘날 대중이 활개를 치고 있으며, 대중이 기획한 원시적 양식의 계획만이 외견상의 승리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파시즘이나 볼셰비즘의 핵심은 다루지 않는 이유는, 혁명과진화 사이의 영원한 딜레마를 해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감히 바라는 것은 혁명이나 진화가 시대착오적이지 않은 역사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지에 대해 약간의 의문이나단순한 동요가 일어날 경우 모든 사람들이 -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에서 ㅡ 타락하기 시작한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것이 밝혀진 것은 벌써 오래 전이다. 따라서 혈연과 언이를 계속 국가의 토대로 고집하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나는 여기서 부적절함을 발견하는 만큼이나 배은망덕함을 발견한다. 왜냐면 프랑스인은 오늘날의 프랑스에 대해, 스페인인은 오늘날의 스페인에 대해 혈연과 언어의 협소한 공동체를 뛰어넘는 추진력을 지닌 원리의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프랑스와 스페인은 그 협소한 공동체를 가능하게 한 것과는 반대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개념을 과거 공동체에 근거하여 정의할 때, 단순히혈연과 언어와 공통의 전통에 ‘일상적 국민투표‘라는 새로운속성을 추가했다는 이유로 르낭(Renan)의 방식을 언제나 최상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잘 이해되고 있을까? 이제 우리는 르낭과는 반대되는, 하지만 훨씬 더 진실한 내용을 부여할 수는없을까?
바야흐로 유럽인들에게는 유럽이 국가 개념으로 전환될때에 이르렀다. 오늘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11세기에 스페인과 프랑스의 통일을 예언했던 것보다 훨씬 덜 유토피아적인 것이다. 서구의 국민국가는 그 진정한 본질에 충실하면할수록, 곧바로 하나의 거대한 대륙 국가로 정제되어갈 것이다.
그러나 국민화 과정에서 항상 그런 것처럼 보수 계급은 유럽 통합을 반대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유럽을 결정적으로 타락하게 하고 그 역사적 힘일체를 상실하게 만들 일반적인 위험에 매우 구체적이고 임박한 위험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가 승리하자 많은 사람들은 서구 전체가 적색의 물결로 넘쳐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예측에 동조하지 않았다. 오히려그와 반대로 나는 당시 러시아의 공산주의가 개인주의라는카드에 역사의 모든 노력과 열정을 바친 유럽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라고 썼다. 세월이 흘러 이전에 두려워 떨던사람들이 오늘날 평정을 회복했다. 평정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그것을 회복한 것이다. 왜냐하면지금이야말로 휘몰아치는 의기양양한 공산주의가 유럽으로확산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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