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식민지는 근대(성) 외부에 놓인 독특한 경험일까 아니면근대의 여러 기획들이 극단까지 실험된 공간일까. 식민지는 근대(성)의 예일까 아니면 예외일까.
역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던져 보았을 질문일 터이지만 실로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식민지와 전쟁 상태 사이에서 교착하는 이러한 인식. 이 노학자의 생각과는 반대로 남북한에서라면 그렇게 말해온 사람들이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공식 역사였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네 가지 힘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듯하다첫째,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법‘8)으로 삼는 대한민국의역사적 정통성론, 둘째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역사적 정통의로 삼아 이 시기 전체를 교전 상태로 보는 전쟁 상태론, 셋째 해방 후 남북한 양쪽의 국가 만들기 과제 및 ‘재일‘이라는 아이덴티티 속에서 수행된 저항민족주의의 작용, 넷째 제국 일본의 전시 동원 및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 문제를 염두에 둔 ‘전쟁‘
기간의 확대 규정이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이제 질문은 두 가지이다. 첫째, 왜 ‘점령‘
이라는 개념이 이 열독의 근원적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까? 두번째 질문은 매우 물리적인 상황으로부터 유발된다. 즉 이 기록은 조선 안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외부의 기록이다. 즉, 왜 외부의 기록이 후기식민지 postcolonial13) 국가 혹은 소위
‘국권회복의 결과태인 ‘대한민국의 공식 기억으로 채택되게 되었을까(혹은 될 수밖에 없었을까? 혹시 이 ‘점령‘이라는 규정은 매우 아이러니컬한 방식으로 일본 식민지주의의 모순과 서로 얽혀 있는 것은 아닐까?

‘점령‘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장소를 점거하는 것‘ 혹은 ‘무력을 사용해 다른 나라의 영토를 자국의 지배 아래 두는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점령에 관한 두 개의 관점이 있을 수있다. 첫째, 점령지를 식민지와 구별하는 관점이 하나이고, 두국가 간의 교전과 평화조약 사이의 과도기적 상태로서 보는 관점이 다른 하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