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18년의 대전쟁은 지구상의 모든 대양에 걸쳐서 벌어졌고 최종적으로는 교전국이 모든 대륙을 아울렀으니 마땅히
"세계대전"으로 불릴 만하다. 그러나 이 전쟁이 최초의 세계대전은 아니었다. 지난 300년 동안 유럽 열강은 지구 곳곳에서 서로 싸워왔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는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 속에서 전쟁이란 정부 정책과 군부의 행위들, 그리고 ‘민족들의 열정‘으로 이루어진 삼위일체라고 표현한 적이있다. 1차세계대전이 왜 일어났고 왜 그렇게 진행되었는지를이해하려면 이 세 가지 요소를 하나씩 따져보아야 한다.

몇몇 사소한 변화를 제외하면 유럽 열강(Great Powers) (여전히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의 모습은 지난 2세기 동안 달라지지 않았지만 세력균형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열강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는 이제 독일 제국으로, 1866년과 1870년에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랑스에 승리한 결과, 프로이센 왕국의주도로 탄생했다. 

프랑스는 이 패배로 인해 2등 국가로 전락했고 이러한 현실에 크게 분개했다.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의 영토로 구성된 오스트리아 제국은 1867년 이래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군주국(합스부르크 제국)으로 재편되었고, 독일의 동맹국이라는 종속적 지위를 받아들였다. 

이들 대륙 열강 좌우로는 이해관계가 부분적으로만 유럽에 걸쳐 있는 두 제국이 있었다. 하나는 광대한 반(半)아시아적 러시아 제국으로, 남동부 유럽에서 종종 간헐적이지만 주요 행위자로 활동해왔다. 다른 하나는 영국으로,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해외에서 자국의 영토를 확대하고 공고히 하는 동안 대륙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19세기 말에 러시아 정부의 시선은 아시아로의 팽창에 쏠있었지만 1904-05년 일본에 패배한 후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지배하던 유럽 남동부로 쏠렸다. 원래 그리스와 세르비아, 불가리아의 동방정교 공동체들에 기반을 둔 발칸의민족 저항 운동은 같은 기독교도로서, 나중에는 같은 슬라브족으로서 러시아인들의 후원을 기대해왔다. 

그리스와 세르비아, 불가리아는 19세기를 거치면서 모두 독립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도 슬라브족, 특히 세르비아인과 그들의 사촌 격인 크로아티아인이 다수 있었다. 그리고 신생 슬라브 국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굳히고 독립을굳건히 해갈수록, 합스부르크 제국은 제국 내 소수민족들 사이에 커져가는 동요와 이를 조장하는 러시아 때문에 갈수록근심이 깊어졌다.

그러나 합스부르크군주국은 전적으로 억눌린 민족들‘로 구성돼 있었다. 18세기에는 지배적인 독일계 엘리트 계층이 있었지만 심지어 이득일인들에게도 이제는 북쪽에 새로운 독일 제국이라는 인접한 조국이 생겼다. 

영국은 대일 동맹을 제외하면 아무런 공식 동맹도 체결하지 않았지만 독일은 영국이 자국을 포위하고 속박하는 그들을 짜고 있다고 불평했고 양국의 관계는 꾸준히 나빠졌다.
1911년 독일이 아가디르 앞바다에서 해군력 시위를 통해 모로코의 프랑스 세력에 도전하고 프랑스에 굴욕을 안기려고했을 때, 영국은 프랑스에 대한 지지를 공공연하게 표명했다.
영국과 독일의 많은 이들이 상대방을 자연스러운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고 이제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용이하게 지배하려고 제국에 공식 합병했다. 그러자 세르비아 정부는 세르비아 군부 내 요인들이 훈련시키고 지원한 비밀 테러리스트 단체 ‘흑수단(The Black Hand)‘을동원해 보스니아계 세르비아인들을 위한 공공연한 ‘해방 운동‘을 전개했다. 동시에 러시아의 부추김을 받아 발칸 반도에서 궁극적으로 오스만 투르크 세력을 몰아내고자 그리스, 불가리아, 몬테네그로와 함께 ‘발칸 동맹 (Balkan League)‘을 형성하는 데 앞장섰다. 기회는 1912년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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